봄의 향기를 찾아서 봄맞이 놀이 장양선



이젠 정말 봄인가 싶다. 문을 열고 나가면 불어오는 바람 냄새가 하루가 다르다. 이렇게 햇빛 좋은 날은 집에서 뭔가 일을 하겠다고 버티고 앉아있기 정말 힘들다. 물론 봄이라지만 아직도 봄과 겨울이 고무줄 하듯 아침저녁으로 쌀쌀하기도 하고 며칠 건너 꽃샘추위가 간간이 놀자고 덤비기도 한다. 그래도 지난 겨울 유례없는 이 지역의 폭설로 20일을 오롯이 집안에만 갇혀 지낸 터라 무척 지루해 하던 나는, 이제부터 무조건 봄이라고 작정해 버렸다.

봄맞이 놀이는 씨앗뿌리기 놀이부터 시작한다. 한 해 동안 열심히 갈무리해 놓은 씨앗상자에서 꽃씨와 텃밭에 뿌릴 종자들을 옆구리에 끼고 마당 한 켠 자리 잡은 서너 평 남짓 하우스로 들어간다. 하우스 안엔 이미 따뜻한 온기와 적당한 물기로 기분 좋은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지난 해 쓰다 남은 배양토와 파종상자가 나의 놀이도구다. 바닥에 배양토를 붓고 약간의 거름을 섞어서 파종상자에 붓고 아주 조심스럽게 씨앗을 그 위에 올린다. ‘이 정도 집중력이면 공중부양도 하겠다’어쩌고 하면서 희희낙락 파종을 끝내곤 본격적으로 마당을 나선다.

벌써부터 앞 뒷산의 나무는 물기가 오르고 있다. 늘 푸른 상록수조차 작년 잎과 올해 잎의 색깔이 다르다. 봄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초록을 만나볼 수 있을 때가 아닌가. 한참을 넋을 빼고 있다가 집 앞을 지나시던 이웃 할매에게 들키곤 머쓱해질 때쯤 그제야 집 마당 안 나무들의 대대적인 이사를 시작한다. 새롭게 만든 화단자리로 작년 한해 열심히 자라준 나무들을 제대로 옮겨주고 새로 심을 나무들을 위해 자리를 마련한다. 웃자란 나무들은 가지치기를 해서 모양을 잡아준다. 쳐낸 나뭇가지에서 상큼한 냄새가 난다. 생살을 잘리고도 이리 좋은 향이 나는 건 오직 식물뿐이다.

이러다보면 벌써 시간이 언제 흘렀나 싶다. 갑자기 허기가 몰려오면 때늦은 식사를 하기 위해 호미랑 바구니 들고 옆집 밭에 주저앉아 냉이랑 쑥 같은 나물을 캐어들곤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와 한상 가득히 봄 냄새 물씬한 밥상을 차린다.

이제 씨앗 파종이 끝났으니 앞으론 더 많은 봄맞이 놀이가 시작될듯싶어 마음은 더욱 분주하다. 매번 반복되지만 맡을 때마다 새롭고 전혀 지루하지 않은 것이 봄의 향내, 봄의 놀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