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고 물 건너 “사랑하는 사람하고는 백년도 모자란 거여” 박현숙



“아버님 어머님~~, 계세요?”
“어여 와, 어여! 이게 누구여? 김제동이가 맞구먼. 여기는 윤석이고! 어디 보자 이 사람은 영화 ‘댄서의 순정’에서 내가 좋아하는 문근영이 하고 같이 나온 사람인데 이름이 뭐여? 암튼 반가워. 이 땡볕에 어떻게 왔어. 귀한 사람들이 우리 동네를 다 찾아왔네. 허허!”

마당에 고추를 널고 툇마루에서 한숨 돌리는 참이었다는 전재욱(62) 이순희(59) 이장님 내외는 반색을 하며 개그맨 김제동 씨와 이윤석 씨, 연기자 박건형 씨를 맞으신다. 충북 영동군 용산면 천작리, 천 가지 곡식이 두루 잘 된다(千作)는 마을 이름처럼 예로부터 땅 좋고 물 맑은 곳이다.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산물인 담배를 비롯해서 벼농사와 온갖 밭농사가 잘 되고 가을걷이가 끝나면 집집마다 곳간이 풍성했다.

하지만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는 옛 시조처럼 세월 따라 그 많던 마을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하나 둘 고향을 떠나 지금은 30가구 70분의 어르신들이 적적한 마을을 지키고 있다. 이 마을에 사는 아이들은 단 세 명. 마을을 오가는 교통편도 하루 세 번 오가는 버스가 전부다. 그 버스를 타려면 마을 어귀까지 반시간을 족히 걸어가야 한다. 그런 까닭에 어르신들은 웬만한 통증이 아니고서는 민간요법에 의지하거나, 그저 밥 한 술 뜨고 한 숨 푹 자거나, 태어나 늙고 병드는 것은 자연의 순리려니 생각하며 지내오셨다.

“병원에 검진 받으러 가면 그러잖어. 술 먹지 말어라, 맵고 짜게 먹지 말어라! 또 밥 굶어야지, 술 굶어야지. 부아가 나고 이제껏 술 먹은 게 있으니 겁도 나고 그려서 잘 안 갔어. 아 그런데 이렇게 외진 마을까지 찾아왔으니 이참에 한 번 해야지!”

술이 좋아 코가 빨갛게 익어가는 것도 몰랐다는 이장님은 마당의 고추를 가리키며 저것보단 덜 빨갛지 않느냐며 너털웃음을 짓고, 속 좋은 남편을 곱게 흘기던 아내도 이내 빙그레 웃으신다.

“저 양반들은 백의의 천사인 게지!”
“저런 양반들 같으면 병원에 만날 다니고 싶겄어. 정이 철철 넘치시네! 말하자면 저 양반들은 백의의 천사인 게지!”

서울아산병원 순회봉사팀의 외과전문의 김형태 교수로부터 건강상담을 받고 CT를 찍으러 나온 강유숙 아주머니(55)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었다. 아주머니의 일상을 점검하며 작은 부분에서부터 실천할 수 있는 건강 지침을 일러주는 의사들, 딸 같고 며느리 같은 간호사들의 다정함은 가슴까지 환하게 밝혀주는 힘이 있다. 심한 백내장으로 왼쪽 눈을 잃으신 최석준 할아버지(82)는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건강비결을 또박또박 일러주신다.

“물을 많이 먹고, 마늘을 하루 한 두 쪽씩 구워먹고, 영양제도 챙겨 먹고, 운동도 꾸준히 해야 한디야.”

70여 명의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차려진 진료실과 검사실에서 건강검진을 받는 동안 김제동, 이윤석, 박건형 삼총사는 마을 곳곳을 찾아다니며 어르신들 살아오신 얘기도 듣고 건강도 살펴드린다. 백내장인 아내와 청력이 떨어진 남편이 서로의 눈과 귀가 되어주며 살아가고 있는 전재기(80) 정희수(80) 내외분 댁을 방문한 삼총사는 깜짝 이벤트를 열어 할아버지의 고장 난 보청기를 수리해 드렸다. 멀리 울산으로 시집을 간데다 미장원을 해서 바쁜 막내딸 김희정 씨(38)를 5년 동안 보지 못해 오매불망 그리워해온 이백분 할머니(84)는 삼총사의 도움으로 막내딸을 만났다. 헛헛했던 마음자리를 훈훈한 정으로 가득 채운 어르신들의 환한 웃음은 내리쬐는 햇빛 속에서 온종일 일한 방송국 스태프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한 없이 들어가는 할머니표 올뱅이국
진료가 이뤄지고 있는 마을회관 앞은 잔치가 한창이다. 들기름 냄새가 야무지고 갓 지은 밥에 구수한 된장국 냄새도 어우러진다.

“이게 이게, 보통 아욱국이 아니여. 올뱅이가 그득혀. 올뱅이 알어? 이놈 이름이 많지. 다슬기라고도 허고 고둥이라고도 허고 올갱이라고도 허고. 여기서는 올뱅이라고 허지, 한 번 맛 봐. 이 올뱅이가 요즘은 귀하디야. 1급수 맑은 물에서만 난다니. 우리 마을엔 아직 올뱅이가 많어. 재 너머 강에서 그제 어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잡았지. 오늘 오신 손님들 대접하려고!”

마을회관 앞 대청마루에 앉아 여남은 명의 할머니들과 함께 이쑤시개로 올뱅이를 하나하나 까던 박정순 할머니(74)는 지나가는 방송국 스태프들 입에 올뱅이를 넣어 주신다. 커봐야 어른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인 올뱅이를 하나씩 손질하시는 할머니들의 손톱 밑이 까맣고 손끝은 퉁퉁 불었다. 아들 딸 같고 손자 손녀 같은 마을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이틀 전부터 강가에서 올뱅이를 잡고 돼지도 한 마리 잡았다. 구수한 할머니표 된장을 풀어 넣고 끓인 올뱅이 아욱국과 부추전, 돼지고기 수육과 겉절이는 하나같이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이다.

아침 촬영을 마친 문화방송 느낌표 팀 스태프들과 서울아산병원 순회봉사팀이 밥상에 앉자 할머니들이 힘이 났다. 냉면대접 그득 국을 담고 고봉밥을 눌러 담고 김 서리서리 나는 수육을 썰어내며 피붙이 대하듯 많이 먹으라 하신다. 김제동 씨는 앉은 자리에서 올뱅이국 두 그릇을 뚝딱 비웠고, 연기자 박건형 씨는 수육 두 접시를 게 눈 감추듯 먹어 할머니들을 흐뭇하게 했다.

“허리 띠 풀러놓고 많이들 들어. 여기 옥수수도 맛 좀 봐. 이게 그 유명한 영동 학사옥수수여. 이거 못 먹으면 집에 가서 눈물 나와.”

정점애 할머니(75)의 한 마디에 좌중은 웃음바다에 빠졌다. 할머니 말씀은 빈말이 아니었다. 찹쌀떡처럼 쫀득하고 달콤한 옥수수는 금세 동이 났고, 옥수수를 더 가지러 가마솥으로 향하는 할머니 걸음이 나는 듯이 가볍다.

사랑하는 사람하고는 백년도 모자란 거여
저녁 무렵, 백내장을 앓는 정희수 할머니(80)는 무료 수술을 해드리겠다는 서울아산병원 순회봉사팀의 얘기를 듣고 고마워 어쩔 줄 모르신다. 오래 썼으니 고장 나는 게 당연하다 여기며 침침한 눈 걱정을 잠재웠는데 이렇게 마음을 써 주다니 여간 고마운 게 아니라고 하신다. 서울 아산병원에서 백내장 수술을 받은 날, 할머니는 건강한 모습이시다.



“한 5년 전에 오른쪽 눈 백내장 수술을 했어.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왼쪽 눈도 말을 안 듣는 거여. 침침하니 잘 안보였지만 그냥 저냥 살았지. 그런데 이렇게 고마울 데가. 정말 감사하고 감사해!”

할머니를 간병하느라 며느리와 딸들도 왔지만 할머니의 가장 든든한 간병인은 동갑나기 남편이다. 며칠 전 서울아산병원과 문화방송 느낌표 제작팀의 도움으로 고장 난 보청기를 고친 전재기 할아버지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살뜰하게 할머니 곁을 지키며 이것저것 심부름을 하신다.

“우리가 열여덟에 결혼해서 이제까지 살아왔어. 이 사람이 6남매 낳고 살림하느라 고생이 많았어. 6.25 때는 내가 군대 가서 한 삼년 나 없이 자식 키우며 살기도 했어. 난 지금까지 밥 한 번 해본 적 없어. 이 사람이 그런 사람이야. 그런데 이걸 못하겠어? 이 사람 눈 고치니까 내 속이 다 후련해!”

간식으로 떡과 음료를 차려내는 할아버지를 보며 할머니는 새색시처럼 수줍게 웃으며 한 마디 하신다.

“나는 울퉁불퉁 목석같은데 저 양반은 참 다정해. 부부란 그런 거여. 사랑하는 사람하고는 백년도 모자란 거여!”

두 손을 맞잡고 서로 온기를 전하는 노부부의 예순 두해 사랑이 깊고 넓으며 향기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