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사회복지 선진노인의료복지 르포 끝 - 미국 이윤환



핵가족화와 개인주의가 팽배한 미국 사회에서도 만성질환과 장애를 지닌 노인에 대한 간병과 수발은 주로 가족이 담당하고 있다. 노인의 60%가 가족의 돌봄을 받는데, 심지어 40%는 전적으로 가족이 돌본다. 문제는 가족이 모든 케어를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노인을 수발하는 가족원의 60%가 여성이며 29%는 자신도 65세 이상인 노인이다. 저출산 핵가족 여성취업증가 등으로 가족의 노인 케어 부담은 벅찬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노인을 전문으로 돌보는 인력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노인케어에는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사회복지사 같은 전문직도 필요하지만, 간호조무사 가정봉사원 개인보조원 등 다양한 보조인력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이들은 노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손이 가는’ 서비스를 직접 제공함으로써 활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의사가 가정으로 찾아가는 맞춤식 노인케어
이미 100년 넘게 요양원을 운영해온 미국의 전문가들은 노인 전문병원과 요양원 등 시설에서의 돌봄보다는 가정이나 지역사회에서 노인 케어를 제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국가나 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폭발적으로 노인 의료비가 증가하고 있고, 노인 입장에서도 시설 보다는 자기 집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워싱턴 대학병원은 1999년부터 가정진료 ‘메디컬 하우스 콜 프로그램’(Medical House Call Program: MHCP)을 워싱턴 DC 지역 중증 만성병 노인 4만여 명 중 1,100명에게 실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프로그램 책임자인 노인병 전문의 에릭 디 용 박사는 1주 50시간의 근무시간 가운데 20시간을 가정방문에 할애하고 15시간은 병원진료, 나머지 15시간은 병원 행정에 쏟는다. “미국 노인인구의 5%가 노인 의료비의 절반(52%)을 사용합니다. 그 중에서도 32%가 96%를 쓰지요.” 중한 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들에게 의료비가 집중되고 있다는 말이다.

이 프로그램의 또 다른 의사인 조지 탈러 박사는 “중증 노인들의 간호 및 요양을 위해 지불됐던 비용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정진료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될 전망”이라고 말한다. 중증 노인환자의 경우 1주에 1회 이상 병원을 찾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MHCP를 이용할 경우 환자 상태에 따라 주기적 혹은 수시로 의사나 간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탈러 박사는 “환자들의 주요 입원 원인은 심장병, 천식, 당뇨병의 악화”라면서 가정에서 적절한 케어가 사전에 이루어진다면 많은 입원을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물론 환자 상태가 나빠져 가정에서 대처가 불가능해질 경우 신속하게 병원으로 후송할 수도 있다.

일일이 의료진이 가정을 방문하기에 진료비가 높을 것이라고 여기겠지만 1회 가정진료비는 105달러로 입원비에 비하면 저렴하다. 가정진료비 70회가 1회 입원비 7,000달러와 맞먹는다.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메디 케이드’는 주정부가 부담하므로 노인 환자의 입원비는 결국 사회가 부담하는 몫이다.

하우스콜의 또 다른 축, 간호사
‘가정진료 프로그램에서 간호사는 의사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NP(Nurse Practitioner)라고 불리는 가정방문 간호사는 1주에 45시간을 가정방문에 집중하며 하루 평균 7명의 환자를 돌본다. NP는 기존의 간호사(RN) 자격 취득 후 다시 노인간호를 위한 2년의 별도 교육과정을 이수한 간호사에게 주어지는 타이틀이다.

간호사는 노트북을 갖고 다니면서 인터넷을 통해 병원 진료기록과 현재 환자상태를 수시로 평가하고 입력한다. 약이나 주사 처방 등 어느 정도 의사 역할까지도 할 수 있다.

가정진료는 병원에서도 환영받는 시스템이다. 시설비가 따로 들지 않아서다. 의사의 왕진 가방에는 휴대폰 전자의료차트 혈압계 체온계 옥시미터(혈중산소농도 측정기)와 10여 종류의 의약품이 들어있을 뿐이다. 의사는 자동차도 손수 운전한다.

“일반적으로 만성병 환자의 75%는 병원에서 사망하지요. 하지만 MHCP에선 75%가 집에서 사망합니다. 따라서 입원으로 인한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지요. 그러면서도 호스피스까지 제공해 환자와 가족들의 신뢰가 대단합니다.”

MHCP는 전문 의료진에 의한 병원 수준에 버금가는 진료, 정기적인 건강관리, 상담 및 복지서비스 연계 등을 통해 병원이나 너싱홈같은 시설 및 응급실 이용률 감소와 재원일수 감소 등의 효과를 보였다. 진료가 가정에서 이뤄지므로 시설 공간 등의 경상비가 적게 드는 것도 큰 장점이다. MHCP 같은 가정진료 프로그램은 워싱턴 DC와 뉴욕시 등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 가정진료는 현대의료의 표상인 병원중심 즉 공급자 중심의 각박한 시설서비스로부터 환자중심의 편안한 재가서비스로 전환하기 위한 시도로 해석된다. 다학제간 전문팀에 의한 통합적이고 효과적인 양질의 케어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노인의료의 대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간호조무사와 개인 보조원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재가지원서비스(In-Home Supportive Services: IHSS) 프로그램을 통해 20만 명의 독립적인 보조인력을 활용하고 있다. IHSS는 노인케어 가정봉사원들의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단체다.

이 중 간호조무사는 주로 너싱홈 같은 장기 요양시설에서 노인 간호업무를 보조한다. 가정봉사원은 간호 인력의 감독 아래 병원에서 퇴원한 환자의 집을 방문해 가사를 돕는다. 개인보조원은 병원이나 너싱홈에서 노인의 수발을 든다.

이러한 전문직 보조인력은 전체 장기 요양인력의 3분의 2를 차지하며 현재 간호조무사와 가정봉사원만 해도 각각 75만 명이나 된다. 개인적으로 구하는 서비스인력까지 포함한다면 실제 케어인력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낮은 임금과 격무, 열악한 업무환경과 사회적 편견 등으로 인해 인력확보에 어려움이 크다. 간호조무사 이직률이 45% 이상으로 전체적인 이직률도 매우 높은 편이다. 수급의 차질은 서비스 저하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기에 정부는 처우개선 재교육 이민정책 등 각종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노인케어의 최전선에 있는 전문직 보조인력이야말로 고령사회의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가정봉사원
샌프란시스코 IHSS는 도움이 필요한 허약한 노인들을 위해 비영리 민간조직 7개 단체가 컨소시엄을 만들어 홈케어 서비스를 펼치고 있다. IHSS는 대상이 될 노인 선정에서부터 이들을 돌볼 전문가들을 선발하고 교육 훈련시켜 노인 가정에 연결시키고 서비스를 평가하는 역할까지 맡는다. 샌프란시스코 시와 연방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 만큼 주로 저소득층이 서비스 대상이다.

“의료서비스가 필요하지 않은데 단지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요양원에 들어갈 필요는 없지요. 요양원은 쾌적하지 못하고 개인생활이 보장되지 않아 노인들은 되도록 집에서 살고 싶어 합니다. 코로 음식을 삽입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면, 가정도우미나 봉사원의 도움을 받을 수만 있다면, 요양원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잘 지낼 수 있습니다.” 마가렛 베런 IHSS 사무총장은 샌프란시스코 일대 1,200여 명의 환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모두 500명의 가정봉사원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정봉사원 한 명이 두 명의 노인을 돌보는 셈이다.

현재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모두 12,000여 명의 가정봉사원이 활동 중이다. 노인의 집을 방문해 청소와 목욕, 옷 입히기와 식사준비 심부름 등을 도와준다. 가정봉사원 한 명 당 관리해야 하는 환자 수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만약 환자가 하루 8시간 돌봄이 필요하다면 한 명의 가정봉사원이 케어할 수 있다. 서너 시간만 돌보면 되는 환자들은 한명이 3~4명씩을 관리할 수도 있다.

가정봉사원들이 노인의 집을 방문하면 집 전화기를 통해 IHSS 본부에 케어정보를 입력하게 된다. 봉사원들이 제시간에 도착해 제대로 서비스를 하고 갔는지 확인하는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가정봉사원을 관리할 뿐 아니라 실시간 수시로 변할 수 있는 노인 환자의 건강을 케어하고 분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은 사회복지사인 ‘사례관리자’(Case Manager)들이 노인의 집을 방문해 모니터링하고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