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사회복지 선진 노인의료복지_일본 남상요



일본인의 평균 수명은 2003년 현재 남성 78세, 여성 85세. 세계 최장수국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를 경험하고 있는 일본은 어떻게 노인 케어문제를 해결하고 있는가. 2007년 도입 예정인 우리나라 ‘장기 요양 보장제도’의 모델로 알려진 일본의 노인케어 현장 두 곳을 찾아간다.

보건· 의료· 복지 통합 / 히로시마 미츠기쵸

히로시마(廣島)현 미츠기쵸(御調町). 인구 9,000명의 작은 산골마을이지만 이곳 노인들은 노후를 불안해하지 않는다. 보건, 의료, 복지가 완벽히 통합된 공립 미츠기 병원을 중심으로 한 지역포괄 케어시스템 덕분이다.

일본이 2000년 개호(介護ㆍ노인케어 및 간병) 보험을 도입하기 오래 전, 미츠기쵸는 지역포괄 케어시스템을 도입해 일본은 물론 전 세계 노인케어의 모델이 됐다. 복지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스웨덴과 핀란드를 포함해 매년 500~1,000명의 각국 전문가들이 이 곳의 보건의료복지 통합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방문하고 있을 정도다.
산골마을이 이처럼 지역의료의 세계적 명소가 된 것은 미츠기 병원 야마구치 노보루 원장(72) 덕분이다. 1966년 이 병원에 부임했을 당시 미츠기 병원은 40병상의 소규모 병원에 불과했다. “당시 뇌졸중 노인환자가 특히 많았는데 밤새워 개두 수술을 해 생명을 구했다고 뿌듯해 했지만, 결국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란 걸 깨달았다. 재활치료를 거쳐 지팡이를 짚고 퇴원하게 된 노인이 1년도 채 안돼 등창이 나서 재입원한 것이다. 퇴원 후의 케어가 충분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깨달았다.”

야마구치 원장은 전화 한 통이면 자장면이 배달되듯, 의사도 가만히 앉아 병원을 찾는 환자만 볼 것이 아니라 ‘의료 배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퇴원하는 노인 환자들을 위해 우선 방문간호를 시작했다. 물리치료사, 약사, 영양사들이 노인환자의 집을 방문해 종합적인 케어를 ‘배달’했다. 방문간호나 재가(在家)케어란 개념이 없던 시대에 미츠기쵸는 이런 사후 케어를 통해 와상 노인 비율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전국의 와상 노인 비율이 5.7%인데 미츠기쵸는 0.8% 밖에 안 된다.

야마구치 원장은 노인케어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선 보건복지 서비스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미츠기병원은 공립병원이므로 노인들은 보건ㆍ복지ㆍ개호서비스를 받기 위해 보건소나 행정기관을 찾아야 한다. 당연히 절차를 밟고 실제 서비스를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많았다. 야마구치 원장은 이래선 시의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 행정기관을 아예 병원 내로 이관시키자는 아이디어를 미츠기쵸 자치단체장에게 냈다. 그 결과 보건ㆍ복지ㆍ의료보험 및 노인케어에 관한 담당 행정기관인 ‘보건복지센터’를 병원 내에 설치할 수 있었다.

이후 미츠기쵸에는 통합된 보건의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여러 시설들이 들어서 명실상부한 보건의료 복지타운이 됐다. 보건복지타운은 크게 병원과 보건복지 종합시설로 나뉜다. 40병상의 미츠기 병원은 40년이 지난 지금 200병상의 종합병원으로 발전했고, 노인들을 위한 가정방문 간호서비스를 병행하고 있다.

10명의 노인 전문 간호사와 작업치료사, 물리치료사 등이 가정방문 간호를 한다. 목욕 등 신체 청결, 욕창 처치, 방광 세정, 재택 산소기기 관리나 기관 절개에서부터 개호보험의 인정신청 대행, 케어플랜 작성 등까지 다양한 방문 케어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의료기능을 강화한 새로운 타입의 특별양호 노인홈/ 도쿄 특별양호 노인홈

일본에는 미국이나 캐나다의 요양원(너싱 홈)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개호보험이 실시되지만 노인케어에서 의료와 개호를 분리하기 때문에 특별 양호노인홈(우리나라의 노인전문 요양시설에 해당)에서는 의료행위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쿄도 코토구 소재의 ‘특별 양호 노인 홈’은 의료와 간호를 병행한 서비스로 고령자 복지 의료시설의 선구적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도쿄도 코토(江東)구에 위치한 고령자 복지 및 의료 복합시설은 노인병원, 보건시설, 요양시설이 이웃하고 있어 ‘3점 세트’로 불린다. 도쿄도에서 건축하고 민간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3점 세트는 크게 ‘동경도 코토 고령자 의료센터’ ‘특별양호 노인홈인 미츠이 요코엔(三井陽光苑:)’‘개호 노인보건시설’로 구성돼 있다.

2003년에 설립된 미츠이 요코엔(이하 특별양호 노인홈)은 의료적으로 큰 문제는 없으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생활이 가능한 고령자를 위한 시설이다. 특별양호노인홈은 만성 환자를 주로 돌본다는 점에서, 급성기 환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미츠이 병원과 서로 보완 관계이다.

병원에서는 장기 입원환자를 특별양호 노인홈에 입원시킴으로써 퇴원 후 갈 곳이 없어 계속 입원하는 소위 ‘사회적 입원’ 환자 수를 크게 줄일 수 있게 됐다. 일본의 평균 재원일 수는 30일이 넘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사회적 입원 때문이다.

또 특별양호 노인홈은 훌륭한 의료진과 시설을 갖춘 미츠이 기념병원이 의료부문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실제 미츠이 병원이 의료를 맡는다는 사실만으로 입소 요구가 급증, 최근 들어선 10대 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을 정도다.

일반적으로 일본의 특별양호 노인홈은 생활만을 위한 시설로, 노인 환자를 입소시키기는 불가능했다. 중증 케어를 필요로 할 경우에는 병원에 가야 했다. 따라서 입으로 식사를 할 수 없어 튜브를 통해 유동식을 주입받는 경우나 질병이 발생한 경우는 병원에 입원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런 환자는 병원에 가서도 문제다. 장기입원 시 입원비 부담이 커 오래 있을 수도 없다.

그러나 미츠이 특별양호 노인홈은 어느 정도 중증의 노인들도 입소가 가능하며 또 충분히 케어를 받고 있다. 미츠이 병원의 내과의사 한 명과 신경과의사 두 명이 번갈아 가며 진료를 담당, 실제 의사가 1인 상주하고 있는 셈이다.

동경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미츠이 병원의 부원장을 역임하기도 한 특별양호 노인홈 시설장 다가와(多川齊) 원장은 “일반적으로 특별양호 노인홈에서는 중증환자를 받지 못하나 우리는 충분히 케어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일본의 개호 전문인력은 일본의 개호역사가 짧기 때문에 아직 완전한 전문인으로 보기 어렵다. 게다가 수용자는 대부분 의료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열이 난다든지 낙상한다든지 숨이 가쁘다든지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경우 사회복지사나 개호복지사(노인의 일상생활 지원과 간병을 전문으로 하는 인력으로 국가자격)의 역할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시설에는 간호사가 8명이나 근무해 유사시 전문가 입장에서 개호복지사의 힘이 돼 주고 올바른 처치를 할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했다. 노인 중에는 입으로 식사를 못해 튜브로 영양을 주입하는 경관영양도 많은데, 다른 특별양호 노인홈에서는 수용이 불가능한 이런 환자들도 충분히 케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간호사, 의사의 상주는 개호뿐 아니라 노인의 건강상태가 갑자기 악화됐을 때 즉각 대응할 수 있어 보다 완벽한 케어를 제공할 수 있다.

이 곳의 또 다른 특징은 개인의 취향과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개인실 위주의 유니트(Unit) 단위 운영 방식이다. 이미 일본에서는 2002년부터 모든 요양원의 1인실화와 유니트화를 도입했다. 미츠이 특별양호 노인 홈은 150실중 120실이 1인실일 정도다. 하나의 유니트는 10~13명 내외로 구성되며, 각 유니트는 전용 공간과 3~4명의 전임 케어스태프를 배치해 일률적인 기준에 따라 단체 생활하는 일반 요양원과는 크게 다르다. 유니트 단위의 운영방식은 거주의 편리성, 쾌적성을 추구하는 새로운 형태의 개념으로 식당도 화장실도 목욕시설도 모두 유니트별로 운영하고 있다. 대규모 시설에 입소하더라도 보다 인간적인 환경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본의 개호보험, 본인부담액 10%

2000년 4월에 시작된 일본의 개호(介護)보험은 노인의 일상 및 사회활동 능력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독일, 오스트리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도입된 사회보험 방식에 의한 노인요양 보장제도다. 개호보험 시행은 고령화 진전과 더불어 급격히 늘어가는 국민의료비의 일시적인 절감 효과를 가져 왔다. 예산규모는 시행 초기 3조 6,000억엔에서 매년 10%씩 증가해 2005년에는 6조 8,000억엔으로 늘어났다. 개호보험 서비스의 요체는 서비스 대상자의 케어등급 결정과 그에 따른 보험급여의 방식, 그리고 서비스의 내용이다. 이용자가 어떤 종류의 서비스를 어느 정도 받을 것인지는 케어 매니저에 의해 작성되는 케어플랜에 따라 정해진다. 개호보험 서비스는 케어 관련 전문인이 집을 방문하거나 당사자가 시설을 방문하는 재가 서비스와 시설입소 서비스의 두 가지로 나뉜다. 어떠한 서비스를 받든지 이용자가 부담하는 액수는 총비용의 10%에 지나지 않아 상당히 저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