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사회복지 선진노인의료복지1, 미국 .


미국의 새로운 형태의 장기요양체계 ‘On Lok’과‘Guided Care’

베이비 붐 세대들의 노년층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미국은 노인 인구가 2000년 3,400만 명(전 인구의 12%)에서 2030년에는 6,800만 명(19.5%)으로 두 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재 미국은 GDP의 13%를 차지하는 의료비가 2011년 이후 17%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노인을 위한 효율적인 의료· 요양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분주하다.

미국 노인의료· 요양제도의 양대 축은 메디케어(Medicare)와 메디케이드(Medicaid)이다. 메디케어는 65세이상과 장애인을 위한 연방정부의 공공 의료보험이고, 메디케이드는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급여를 제공하는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공적 부조제도이다.

보험은 병원, 외래 등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뿐 아니라 메디케어에 의한 단기요양, 재가의료, 호스피스, 메디케이드의 요양시설, 재가의료서비스 등 장기요양(long-term care)에 대한 급여를 제공하고 있다. 특징적으로 장기요양서비스의 절반을 메디케이드 재정에서 충당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 제도가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장기요양의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노인이 많이 이용하는 장기 요양서비스에 따른 비용이 매우 크고 또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너싱홈(요양시설)에 장기 입원하게 될 경우 개인당 연간 4만 달러 이상이 소요된다. 요양시설 관련 비용은 1987년과 1996년 사이 280억 달러에서 700억 달러로 150% 증가했다. 이 중 48%가 메디케이드 재정에서 나가기 때문에 주정부에서는 비용절감에 혈안이 되어 있다.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소요되는 재가서비스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정간호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심한 중증장애 노인일지라도 연간 6천 달러 정도로 비교적 적게 든다.

미국에서는 지난 30여 년간 고비용의 요양시설 이용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는 대안으로 지역사회 중심의 재가노인을 위한 시범사업이 시행돼 왔다. 이중 대표적인 두 모델을 소개한다.

샌프란시스코 온락(On Lok): 지역주민이 자발적으로 일궈낸 요양원의 대안

샌프란시스코의 ‘온 락’(On Lok Senior Health Services)은 노인을 위한 종합 케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이다. 미국 최초로 보건의료와 복지의 통합서비스를 구축한, 노인케어의 대표적 성공모델로 꼽힌다. 지역사회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서비스가 열악한 지역의 소외된 노인을 위한 요양시스템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온 락’은 1970년대 초 차이나타운에서 시작했지요. 당시 이탈리아·중국 ·필리핀 등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는 너싱홈 같은 노인시설이 없어 장기요양서비스를 받으려면 거주지 밖으로, 멀리 나가야 했습니다. 이민자들은 익숙지 않은 언어, 음식, 관습에 당연히 고통스러워했고, 친구들이 그들을 찾기엔 너무 멀었죠.”에이미 신 온락 기획실장의 말이다.

이를 위해 샌프란시스코 지역주민이 자발적으로, 특히 중국 이민자들이 중심이 돼 차이나타운 노스비치 커뮤니티에 ‘온 락’을 설립했다. 온락은 광둥어로 ‘평화롭고 행복한 거처(安樂居)’라는 뜻이다.

노인은 가족과 함께 자기 집에 살면서 낮 동안만 주간보호센터(Adult Day Care Center)에서 보살핌을 받는다.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물리치료사, 영양사, 운전기사, 레크리에이션 도우미 등 여러 전문가들이 노인을 위한 종합서비스를 펼친다. 상근 의사만 15명이나 된다. 가정의학과, 노인의학, 치과, 이비인후과, 족부클리닉 전문의가 다양한 1차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건강플랜을 총괄하고 있는 에이미 신 기획실장은 “일단 온락에 가입하면 자신의 주치의를 이용할 수 없게 돼 의사 선택권을 갖지 못한다는 점에서 일부 노인들은 가입을 꺼리기도 한다”면서 “하지만 데이케어 센터엔 늘 의사와 간호사가 상주하므로 평소보다 훨씬 다양한 종류의 의료 서비스를 자주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이런 서비스를 통해 병원 입원율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 7~8개의 만성병을 동시에 앓고 있는 허약 노인이지만 병원 입원율은 미국 65세 이상 전체노인의 평균 입원율 수준이다.

온 락의 대상자 기준은 샌프란시스코나 인근 프리몬트에 거주하는 55세 이상 노약자. 혼자 힘으로 생활하기 어려워 지속적으로 케어 및 의료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노인들이다. 불결하게 사는 노숙자 노인은 감염이 우려돼 제외된다.

현재 온 락에 등록된 노인은 950명. 한국인도 12명 있다. 데이비드 베이커 온락 사업개발과장은 “평균 83~84세로 여자가 4분의 3을 차지한다”고 전했다. 이곳 노인의 40~45%만이 가족과 동거 중이고, 30%는 독거노인, 15%는 노인주택, 8%는 요양원에서 지내면서 온 락을 이용한다. 노인들은 주 1~5회 이곳을 이용한다. 건강상태, 개인적인 요구수준, 가족 여건에 따라 맞춤식 의료와 복지서비스가 제공된다. 이들이 지불하는 비용은 월 5천 달러 정도. 미국 요양원 이용료에 비하면 매우 낮은 비용이다. 대부분 노인은 메디케어(1,300 달러)와 메디케이드(3,600 달러)를 통해 급여를 받고 있다. 메디케어만 갖고 있는 일부 노인은 본인이 2,000 달러 이상 부담해야 한다. 따라서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를 둘 다 갖고 있지 않으면 사실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온 락의 목적은 요양원 입소를 최대한 막고 자신의 거주지에서 품위 있게 노후를 보내도록 하자는 것이다. 에이미 신 실장은 “늙고 병들어 독립적으로 생활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산다는 일은 정서적으로 한 인간을 수치스럽게 만들 수 있다”면서 “존엄성을 유지하며 늙어갈 수 있도록(Age with Dignity) 하자는 게 온 락의 목표”라고 말했다.

현재 ‘On Lok’모델은 ‘PACE’(Program of all inclusive care for the elderly)란 이름으로 미국 전역으로 확산돼 현재 40여 개가 운영 중이다.



볼티모어 가이디드 케어(Guided Care): 통합의료로 노인의료비 비용 낮춘다

‘Guided Care’는 지나치게 비용이 올라가고 있는 미국 장기 요양보장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내놓은 On Lok과 PACE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존스 홉킨스 블룸버그 보건대학원 통합의료연구소 소장 겸 보건정책과의 채드 볼트 교수는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지역 개원의사와 간호사, 중증 노인환자를 유기적으로 맺어주는 통합적 의료서비스 프로그램 ‘Guided Care’를 주관하고 있다.
“만성병을 앓고 있는 노인 환자에게는 통합치료가 필요합니다.” 볼트 교수가 주장하는 통합 치료란 4~5개의 만성병을 동시에 앓고 있는 노인에게 개원의, 병원, 재활센터, 응급실 등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서비스 기관들이 협력해 통합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노인은 크게 건강한 노인과 만성질환을 가진 허약한 노인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현재 미국 의료시스템의 문제점은 의료서비스를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 비교적 건강한 노인집단에 맞추어 조직, 운영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의 의료시스템은 급성의료 위주로, 노인이 암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는 등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즉시 대처할 수 있지만, 만성질환을 여러 개 앓고 있는 노인에게는 양질의 의료서비스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볼트 교수는 “현 시스템은 이런 환자의 복잡한 문제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개원의, 병원, 재활, 응급실 등은 사료 저장고(silo)처럼 독립적으로 잘 운영하고 있지만, 서로간의 조정이나 협력 시스템은 잘 갖추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만성병을 가진 80세 이상 할머니가 있다고 하자. 보통 이 정도 나이가 되면 고혈압, 심장병, 당뇨, 우울증, 치매 등을 앓고 있어 3명 이상의 주치의가 있지만, 주치의들은 서로 대화하지 않기 때문에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더라도 병원에서 어떤 치료를 받아왔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 가족들 역시 어떤 서비스가 행해졌는지 알 길이 없다. 복합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에게 단편적이고 분절된 서비스가 제공되고, 조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의료비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조기에 예방적인 모니터링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볼트 교수는 “예를 들면 수시로 악화와 호전이 반복되는 만성심부전 환자에게 가장 적절한 대책은 매일 환자의 체중을 측정하는 것”이라면서 “이런 환자에게 체중 2㎏ 증가는 몸에 수분이 축적됐다는 적신호로 곧 폐에 물이 차게 되는 응급상황을 맞을 수 있다. 이들을 위한 모니터링 시스템이 가동돼 조기에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면 고비용의 입원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Guided Care’ 대상으로 삼는 중증노인은 의료이용 예측모형(Ambulatory Care Groups)을 통해 차기년도에 고비용 의료비(상위 15%)를 지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65세 이상 노인이다. 대부분 다수의 만성질환을 갖고 있고, 중증장애를 지니고 있어 정상생활을 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이다. 치매나 우울병을 가진 정신질환자도 포함된다.

의료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노인들을 집중적으로 관리해 케어의 가치도 높이고, 이들의 입원에 따른 의료비도 절감해 보자는 것이다. 볼트 교수는 “이미 시범실시를 통해 10~15%의 비용이 절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올 경우 미국 전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볼트 교수는 “‘On Lok’과 ‘PACE’는 비싸고 확산이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 Guided Care는 더 많은 대상자에게 훨씬 덜 비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