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병원이 있는 풍경 정읍과 정읍아산병원 류인호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웃녘 새야 아랫녘 새야/ 전주 고부 녹두새야/ 녹두꽃이 떨어지면/ 녹두장수 울고 간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통해 정읍시에 들어서기 전에 먼저 만나게 되는 고부면. 너른 들판이 이어지는 들길을 지나친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한 민요 한 자락. 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견디다 못해 들고 일어난 농민들, 죽창보다 더 날카로웠던 그들의 분노는 갑오년 동학혁명의 불씨가 된다. 하지만 혁명은 실패로 끝나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들판에는 그들이 그렇게 지키고자 했던 벼의 낱알들만 가을 햇살에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지금은 정읍시에 딸린 면이지만 동학혁명이 일어날 적만 해도 고부지역은 정읍보다 더 번성했던 곳으로 인근 지역 쌀의 집산지였고, 상업의 중심지였다. 주위에 줄포, 염포, 동진, 사포와 같은 나루들이 있어서 이 나루를 통하여 어선과 상선이 활발하게 오가며 주변에서 나는 농산물과 수산물이 이곳에 모였다. 하지만 농민들은 갖가지 세금과 잦은 부역에 시달려 수확하는 것보다 빼앗기는 것이 더 많았다. 하여 밥이 곧 하늘이었던 농민들은 그 몰염치한 수탈에 저항해 우리 역사상 최대의 민중봉기로 기록되는 동학혁명, 즉 밥의 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밥의 전쟁을 통해 우리는 한 사내를 만나게 된다.

이평면 조소리 작은 마을에서 훈장 노릇을 하며 조용한 삶을 살던 촌부 전봉준. ‘때를 만나서는 천하가 내 뜻과 같더니/ 운이 다하니 영웅도 어쩔 수가 없구나/ 백성사랑 정의사랑에 무슨 허물이 있으랴/ 나라 위한 일편단심 그 누가 알랴’ 라는 시와 함께 1895년 마흔 한 살의 나이에 처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난세의 영웅, 녹두장군. 어지러운 세상은 그렇게 일개 촌부로 하여금 죽창과 횃불을 들고 황토현의 들불이 되게 하였다. 하지만 영웅의 죽음과 함께 혁명은 실패하고 강산은 열한 번이 바뀌었다. 그리고 강산이 열한 번 바뀌는 세월 속에서 다행스럽게도 전봉준이 살았던 초가집은 아직도 이평면 조소리 그 자리에 터를 지키고 있다. 세상의 개벽을 꿈꾸며 야음을 틈타 무수한 민초들이 드나들었던 그 집이 지금은 텅 비어 있다. 민초들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뜨겁게 달아올랐을 부엌의 아궁이도 차갑게 식어 있고, 새 세상에 대한 꿈이 설계되던 방의 창호문도 안쪽으로 단단하게 잠겨 있다. 해서 가을 한낮 텅 비어 있는 그 곳을 찾은 이들은 초가집 담 너머로 보이는 너른 들판에서 추수한 햇곡식으로 그 집 아궁이에 불을 지펴 따뜻한 밥 한 사발 올리고 싶어진다. 세상의 짐을 지고 비스듬히 기울어가고 있는, 옛적의 주인을 닮은 그 초가집에게.



섬기는 사람들이 사는 법
1978년 7월, 정읍이 시로 승격되기 삼년 전에 이미 개원한 정읍아산병원은 변변한 병원 하나 없이 그 초가집들에 살던 사람들을 섬기고자 했던 아산재단 설립자 고 정주영 초대 이사장의 마음의 선물이었다. 이러한 설립자의 뜻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정읍아산병원 임직원들은 그래서 병원에 찾아오는 환자들을 자기 가족처럼 따뜻하게 맞이하려고 노력한다. 30년 넘는 세월을 외과전문의로 의술을 펼쳐온 정을삼 원장(66)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도움이 필요해서 찾아 온 환자들을 따뜻하게 인간적으로 대접해 주는 것만큼 좋은 치료가 없다고 늘 동료의사들에게 이야기 한다. 그는 또 동료의사는 물론 직원들에게 환자를 고객이라고 칭하도록 권한다. 사람이란 참 이상해서 호칭이 달라지면 대하는 것도 달라진다. 환자가 아니라 섬겨야 하는 고객으로 대접 받고 있는 정읍아산병원 고객들이 몸이 불편하면서도 언제나 밝은 표정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정읍아산병원의 그러한 섬기는 마음은 병원을 찾아오는 고객들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지난 4월 발대식을 가진 봉사단이 정읍 내 저소득계층, 독거노인, 장애우, 소년소녀가장 등을 대상으로 방문간호사업을 펼치고 있는 것.

“건강 따로, 질병 따로, 복지 따로가 아니듯이 병원 따로, 지역 따로가 아니지요. 늘 함께 하나로 어울려 갈 때 건강한 몸과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을삼 원장의 말처럼 지당하지만 실천하기는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을 봉사단은 정읍지역 주민들과 함께 그들 속에서 꾸준히 실천해 오고 있다.

정읍시 망제동 부암마을 어귀 왕버드나무 아래 정자에는 열예닐곱 명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이미 정읍아산병원에서 방문 간호를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모여든 채다.



20호가 채 안될 듯한 마을 규모로 보아 마을 어른들이 모두 나와 계신 듯 했다. 10년 넘게 방문간호사업을 진행했다는 원무과 직원 김현섭 씨가 안성댁 할머니, 양촌댁 할머니 등등 하며 막힘없이 노인들에게 몸 상태를 묻는다. 그리고 한 쪽의 할머니들이 동행한 박용녀 간호사에게 혈압과 당뇨 수치를 체크하는 동안 한 쪽에서는 다른 할머니들이 김현섭 씨에게 스스럼없이 웃옷을 훌떡 걷어 올리고 등을 내민다. 그는 마치 자신의 노모에게 그렇게 하듯이 가지고 간 파스를 할머니들의 허리며 어깨며 등에 정성스럽게 붙여준다. “자 이자 예쁜 처녀들 다 마쳤응께 거기 총각들 어서 오시쇼 잉.” 김현섭 씨의 장난스런 말이 떨어지자 정자 한 쪽에서 나름대로 내외를 하고 있던 할아버지들이 주섬주섬 일어선다.

할아버지들이 할머니들과 똑같이 진료를 받는 동안 젊은 우체부가 와서 노인들의 공과금을 대신 납부해주기 위해 걷어간다. 글자에 어둡고 숫자에 어두운 노인들의 살림살이는 그렇게 돌보아주는 이가 없으면 힘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김현섭 씨는 이야기 한다. 젊은이들이 모두 떠나 버린 농촌. 그래도 정자 옆 왕버드나무 그늘 아래 할머니 한 분은 도시의 아들네, 딸네 집에 보내기 위해 올 여름 수확한 빨간 고추의 꼭지를 열심히 따고 계신다. 파스 붙인 허리를 오래 숙인 채. 시큰시큰 아프고 병든 몸으로도 자식 생각하기를 우선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그곳에 있었다.



추위가 찾아온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름을 안다고 했던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정읍은 물론 전북 서남단지역 주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30년 가까운 세월을 그들과 함께 지내 온 정읍아산병원. 정읍아산병원이 경영상의 여러 과제들 속에서도 늘 그 푸름을 유지하며 이곳 사람들의 수호천사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 있었던 힘을 다시 본 것은 정읍에 인접한 고창 선운사에서였다.

20년 가까이 정읍아산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중렬 외과과장의 안내로 선운사에서 만난 이상화 씨(62)는 오랜만에 만난 김중렬 과장의 손을 꼭 잡으며 부끄러운 듯 하늘색 보자기에 싸인 상자 하나를 내민다. 선운사 뒷산에서 자란 야생차. 이상화 씨는 10여 년 전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고 삶의 희망과 의지마저 잃은 채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자신의 몸을 학대하며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전북 부안 내소사 주지스님과의 인연으로 그곳에 머무르던 중 끝내 몸에 사단이 나고 말았다. 결국 그는 정읍아산병원에서 김중렬 과장에게 외과수술을 받게 된다.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보니 체중이 10kg 넘게 갑자기 빠지고,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지요.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삶에 아무런 미련도 없는 줄만 알았던 제가 막상 죽는구나 싶으니까 정신이 퍼뜩 드는 거예요. 살아야 되겠단 생각이 비로소 들더라구요. 그리고 과장님 덕분에 이렇게 새 삶을 찾았지요.” 선운사에서 절의 일을 보며 지내고 있는 이상화 씨는 수술 후로는 단 한번도 병원에 간 적이 없다며 김 과장에게 자꾸만 허리를 숙였다. 김 과장도 그럴 때마다 어디 몸 둘 바를 모르며 같이 허리를 숙인다.



선운사가 고창의 자랑이라면, 내장산 내장사는 정읍의 자랑. 정읍을 돌아나오는 길에 내장사 일주문 앞에 선다. 모든 절의 입구에는 일주문이 있다. 그런데 내장사에는 일주문 뒤 붉은 단풍으로 터널을 만들어 별유천지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주는 108그루 단풍나무가 또 하나의 일주문을 만들어 놓고 있다. 그 단풍나무들이 일체만유(一體萬有)가 본래 무일물(無一物)이므로 대상에 차별을 두지 말아야 우주의 진정한 주인이 된다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하여 단풍나무 터널을 지나고 천왕문을 지나 만나게 되는 작은 연못에 서면, 수표면에 거꾸로 선 단풍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비단잉어도 전혀 낯설지가 않다. 오래 그 풍경 속에 시선을 담그고 있노라면 문득 알게 된다. 지금 자신이, 모든 생명 앞에 차별을 두지 않고 공평하게 나누고자 했던 여러 마음들이 결진 땅 정읍에 서 있다는 것을.

글·류인호(자유기고가) 사진·이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