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여문가을 김선규


가을 들녘에는 풍성함과 넉넉함이 있습니다.
누렇게 익은 벼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밤나무 가지마다 아람이 벌어진 밤송이가 수줍게 얼굴을 내밉니다.

뜨겁던 여름도 모질던 태풍도 다 이겨내고
탐스런 결실을 맺으며 서서히 겨울을 준비하는 들녘의 가을은
욕심 부리지 않고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삶의 넉넉함을 일러주는 것만 같습니다.

마을 돌담 위에도, 뒷간 지붕 위에도 늙은 호박들이 걸터앉아 햇살을 즐깁니다.
호박을 따러 나온 할머니의 둥글둥글한 미소에 마음마저 푸근해지고,
풍요로운 햇살에 들녘의 가을은 영글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