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따라 함백산의 분홍바늘꽃 현진오


자신이 살기에 알맞은 환경을 찾아내어 그곳에 정착하려는 본능을 가진 게 생물이다. 튼튼한 다리나 날개를 가져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동물은 그런 경향이 더욱 뚜렷하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환경이 알맞지 않게 되더라도 떠나지 못하는 수가 있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 같은 고립된 환경에서는 제아무리 날쌘 동물이라 하더라도 이동에 제한을 받게 된다. 이럴 때 생물은 그 환경에 맞게 자신을 변화시키게 되고, 그게 생물 진화의 한 출발점이 된다.

뿌리로 고정되어 움직일 수 없는 성질, 즉 고착성은 식물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식물도 살기 좋은 환경을 찾아가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 ‘씨앗 퍼뜨리기’를 통해서인데, 그 방법은 식물에 따라서 각양각색이다. 맛있는 열매를 만들어서 동물이 먹게 하여 씨앗을 멀리 퍼뜨리는 것, 씨앗에 우산털이나 날개를 달아서 바람에 멀리 날아가도록 하는 것, 열매에 갈고리 같은 털이나 가시가 있어서 동물의 몸에 붙어 먼 곳까지 이동하는 것 등이 있다. 새로 도착한 곳의 환경이 적당하면 새싹을 틔우고, 그곳에 정착하게 된다.

동물에 비해 어려운 과정을 거쳐 새로운 터전을 찾아가는 식물들이기에, 어떤 식물종의 분포지역 가운데 가장자리에 해당하는 곳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곳까지 씨앗 퍼뜨리기를 통해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며, 또한 사는 지역이 축소되는 과정에서 그곳을 경계로 겨우 버티고 있는 것이라면 더욱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게 마련이다.

추운 지방을 고향으로 둔 북방계 식물은 따뜻한 기후에서는 살 수 없다. 북방계 식물이 살 수 있는 가장 남쪽 가장자리 즉, 남방한계선은 이 식물이 버틸 수 있는 가장 따뜻한 기후를 가진 지역이라 할 수 있다.
북방계 식물 가운데 하나인 분홍바늘꽃이 가장 남쪽까지 내려와 자라는 지역은 태백시에 있는 함백산으로 추정된다. 백두대간을 따라 이곳보다 북쪽에 있는 대관령, 오대산, 설악산에도 자라고 있지만 숫자는 어디서나 많지 않다. 하지만 이 식물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북반구의 고위도 지방인 북유럽, 러시아, 중국, 몽골 등지에서는 매우 흔하게 자란다. 마을 근처의 공터에서도 잡초처럼 자라고 있는 이 식물의 군락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꽃은 7월부터 8월까지 볼 수 있으며, 꽃이 지고 나서 달리는 길쭉한 열매가 바늘을 닮아서 ‘바늘꽃’이라 한다.

고향에서는 잡초처럼 많지만 분포의 경계선인 한반도에서는 희귀식물에 해당하므로 분홍바늘꽃의 보전가치가 우리나라에서 더욱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글쓴이 현진오는 멸종 위기 식물에 관심 많은 식물분류학자이자 보전생물학자로 현재 동북아식물연구소 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