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따라 갯마을 여름 정취 더해 주는 토종 '노란무궁화' 현진오


무궁화는 오래 전에 중국에서 건너온 식물이다. 무궁화가 속하는 아욱과의 식물들은 대부분 외국에서 들어온 것들이다. 접시꽃, 닥풀, 어저귀, 부용은 중국에서 들어왔고, 아욱은 유럽 원산으로 심어 기르며, 수박풀은 아프리카 원산의 귀화식물이다.

이 나라에 들어온 지 아무리 오래되었던들 외국에서 들어온 식물이 어찌하여 우리의 나라꽃이 되었는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단일 민족국가로서 옛것, 우리 것을 좋아하는 우리네 정서를 감안할 때 외국 원산의 식물을 국화로 지정한 것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근대까지 남아 있던 사대사상의 잔재거나 식물에 대한 무지 때문에 그렇게 되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통일국가의 나라꽃은 무궁화도, 현재 북한의 국화인 함박꽃나무도 아니어야 할 것이므로 한겨레의 민족성을 대표하는 국화의 선정은 그때의 숙제로 일단 남겨두자.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13종류의 아욱과 식물 가운데 자생식물, 즉 이 땅에서 원래부터 살던 토종식물은 오직 한 종류만이 있다. 제주도에 드물게 자라는 황근(黃槿)이다. 바닷가에 자라므로 ‘갯아욱’이라 하기도 하고, 한자 이름의 뜻을 풀어서 ‘노란무궁화’라 부르기도 한다. 키 1~2미터에 이르는 나무로서 무궁화보다 조금 작다. 꽃은 무궁화와 같은 시기에 피지만 꽃 색깔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연노랑색이다. 잎이 갈라지지 않고, 잎을 비롯하여 어린 줄기에 별 모양으로 생긴 털이 많은 것도 무궁화와 다른 점이다.
황근이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도에도 자생한다 하여 어느 해 여름 일부러 찾아간 적이 있다. 해무 낀 바다를 건너 찾아간 소안도의 북쪽에 자리 잡은 월항리. 이 조그만 바닷가 마을에는 집집마다 노란 무궁화가 피어 있었다. 마을회관 앞에는 수백 송이가 한꺼번에 꽃을 피운 큰 나무가 심겨져 있었고, 돌담을 두른 집집마다에도 뜰에는 어김없이 노란 무궁화가 꽃을 피워 남도 바닷가 마을의 정겨운 풍경을 한껏 느끼게 해주었다. 아쉬운 게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생 상태로 자라는 나무가 오직 한 그루밖에 없었고, 그것도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7월 이맘때가 되면 소안도에서 만났던 황근이 문득문득 생각난다. 우리의 토종 ‘노란무궁화’로 치장하여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취를 선물한 갯마을 월항리 풍경과 함께 줄기가 부러진 채 방치되어 있었던 마지막 남은 자생 그루가 저편에서 더욱 생생한 모습으로 떠올랐다 사라지곤 하는 것은 왜일까?

글쓴이 현진오는 멸종 위기 식물에 관심 많은 식물분류학자이자 보전생물학자로 현재 동북아식물연구소 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