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따라 꼭꼭 숨겨진 꽃잎의 진실 현진오


꼭꼭 숨겨진 꽃잎의 진실 - 백양사의 변산바람꽃

착각 속에 살다 가는 것이 인생이라던가?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존재인가 보다. 무엇을 한 번 머릿속에 각인하면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잘 난 체하며 살다 가니 말이다.
‘꽃은 아름답다’라는 것도 도무지 맞지 않는 말이다. 종족 번식을 위해 곤충을 유인해야 하니 아름다운 생식기관을 가진 식물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그렇지 않은 식물이 더욱 많다는 것을 모른다. 꽃 한 송이에 암술과 수술이 있어 스스로 꽃가루받이를 하는 것도 있고, 바람이 꽃가루받이를 도와주는 것도 있으며, ‘예쁨’과는 상관없이 냄새-그것도 인간 기준의 향긋한 냄새가 아닌-에 유혹되어 모이는 곤충들이 꽃가루받이를 도와주는 식물도 있다. 이런 식물의 꽃은 아름다움을 뽐낼 까닭이 없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은 예쁜 것’이라는 생각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게 우리들이다.
겨울을 보내고 찾아오는 이른 봄, 아직은 쌀쌀하기만 한 숲 속에서 부지런히 꽃을 피우는 변산바람꽃이라는 여러해살이풀이 있다. 백양사 숲 속에서 2월 중순에 첫 꽃망울을 터뜨리는 것을 보면 어떤 봄꽃보다도 부지런한 녀석이다. 이렇게 부지런을 떨다 보니 학자들 눈에 띄지 못하고 말았는데, 이 식물이 이름을 얻고 세상에 제대로 알려진 것은 1993년이 되어서였다. 전북대학 선병윤 교수 등이 변산반도에서 채집하여 세계 어디에도 없는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발표한 것이다.
변산바람꽃은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이 풀꽃 앞에서 ‘아름다운 꽃은 아름다운 꽃잎을 가졌다’라는 또 하나의 잘못된 믿음을 버려야 한다. 꽃은 대개가 꽃잎, 꽃받침, 암술, 수술로 이루어져 있고, 네 기관(器官) 중에서 꽃잎이 가장 화려한 게 보통이다. 하지만, 변산바람꽃을 화려하게 하는 기관 사진에서 꽃의 맨 가장자리에 있는 다섯 장의 하얀 것은 꽃잎이 아니라 꽃받침잎들인 것이다. 보통 다섯 장이지만 여섯 또는 일곱 장인 것도 있다.
꽃잎은 어디에 있을까? 꽃받침 안쪽에, 수술들에 섞여 솟아 있다. 깔때기 모양이고 끝이 노란빛 도는 녹색이어서 수술과는 구분되는데, 숫자는 넷에서 열한 개쯤이다. 다른 아름다운 꽃들이 가진 크고 뚜렷한 꽃잎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꽃잎처럼 보이지 않는 이 꽃잎에 변산바람꽃의 정체성을 증거하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모양이 Y자 형태로 갈라지지 않고 깔때기처럼 생겼기 때문에 일본에서 자라는 유사한 식물과 구분되는 것이다.

변산바람꽃은 제주도와 남부 지방에 주로 살지만 산과 강을 뚝 뛰어넘어 설악산 동쪽 자락에서도 발견된다. 동해안의 따뜻한 해양성 기후 덕분일 것이라 추측하더라도 설악산 남쪽 동해안에서는 경주 부근까지 내려가서야 발견되므로 이 또한 신기한 일이다.

글쓴이 현진오는 멸종위기식물에 관심 많은 식물분류학자이자 보전생물학자로 현재 동북아식물연구소 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