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읽기 화가 제정자 윤형재


한 땀 한땀 버선을 지어가듯


제정자의 작품 세계에 대해 내려진 평자들의 견해는 대략 서양화의 형식에 동양의 정신을 결합시켰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평자들의 글을 인용해 보면 '버선이 한국 여성을 상징한다면, 제정자는 이러한 한국 여성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버선의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게 된다. 지난날 제정자는 자신의 숨결을 손에 쥔 붓으로 변주하는 흔적을 표현한다든가, 바느질로 버선을 지어나가는 인고의 프로세스를 연상케 하는 버선의 그림을 보여 주었다.

미술에서 동양과 서양의 차이는, 조형 능력보다는 환경에서 오는 특이성이라든지 성격, 또는 미학의 차이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즉, 동양에서는 유미적인 신비 사상을 바탕으로 해서 미술이 탄생되고, 서양에서는 합리적이며 구축적인 철학을 바탕으로 해서 독특한 미학이 형성되었다. 따라서 현대에 살고 있는 화자 제정자는 동양적인 것을 바탕으로, 새로 받아들인 서양의 미학을 조화시켜서 독특한 미의 세계를 실현시켜야 할 입장에 서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화가 제정자는 오래 전부터 자기 예술의 길을 닦아왔는데, 그것은 한마디로 얘기해서 한국적인 요약과 단순화 속에서 사변적인 것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그의 작품에는 서양의 회화에서 보는 것과 같은 다채로운 색채가 없고, 고담한 동양적인 아름다움이 서려 있다. 특히 입체나 평면 공간 설정에 있어서는 화면을 가득 메우기보다는 결정적인 선과 점으로 꼭 있어야 할 그곳에 흔적을 남기는 편이다.
그러기에 그의 작품에는 우주와 같은 시원스레 트인 공간이 마련되며, 그 공간 속에서는 최소한의 형태와 최소한의 색채가 형상을 이룬다.

초월하고 포용하는 아름다움

오랜 세월 시간의 향기가 묻어서 퇴색한 것과 같은 그의 화면은 어찌 보면 화가의 나이에 비해서 무르익어가는 노경의 아름다움에 도달하고 있다. 사실 서양의 아름다움이 생명력이 솟구치는 젊음에 있는 데 비하여 동양의 아름다움이란 모든 것을 초월하고 포용하는 노경의 아름다움에 있는 것이다. 화가 제정자는 용케도 그러한 동양 미술의 본질에 눈뜨고 그것을 바로 자기의 것으로 해서 작품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화면 전체를 구성하기 위해 줄지어 있는 버선 가운데 어떤 하나가 바로 화가 자신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제정자는 우리의 얼과 멋을 즐기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개성을 전체의 공통 분모를 구성하는 사회성에서 하나의 단위로 환원시킬 만큼 성숙되어 있다. 또한 색채에 있어서 작가마다 선호하는 색채 기호가 있겠지만, 제정자의 경우 청색에 대한 선호가 돋보인다. 이것은 상징적인 선비 의식을 차용한 듯 보여지며, 부분적이긴 하지만 서정적인 표현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이 또한 작가의 한국적인 의식의 발로라 보여진다.

글쓴이 윤형재는 서양화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