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기울이면 니콜로 파가니니 박종호


전설의 명인, 파가니니 다시듣기

예술가와 기인

흔히 예술가를 기인(奇人)으로 간주할 때가 있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좀 꺼려지는 행동들-머리나 수염을 많이 길렀다거나 특이한 모자나 옷을 입는다거나 아이 같은 행동을 한다거나 하는 것들-이라도 그 사람이 예술가라면 "아, 예술가니까 그런가 보다." 아니면 "그 사람 예술간데 뭐." 이런 식이다. 확실히 예술가들은 기인적인 풍모가 있고, 그런 것들이 그들의 예술적 창조와 연관이 있는 것도 같다.
그런 기인들은 주로 문학가나 미술가들에게 많은 것 같고, 상대적으로 음악가들에게는 적은 것 같다. 도리어 음악가들 중에는 아주 반듯하고 신사적인 외모와 절도 있는 일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음악가들 중에서도 기인적인 면 때문에 유명해졌지만, 이제는 도리어 그런 점이 그의 예술을 제대로 알고자 하는 데 큰 방해가 되는 사람이 있다.

영혼을 팔고 얻은 악마의 기교?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 아직까지도 많은 음악 애호가들은 그를 손재주가 뛰어난 거리의 재주꾼 정도로만 생각할 뿐, 독특한 음악적 세계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평가하지 않으려고 한다.
파가니니는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을 배워 이미 7세 때 공개 연주를 했고, 10대에는 전유럽으로 연주 여행을 다녔다. 그는 놀라운 바이올린 연주 기교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믿기 어려운 기교는 자꾸 풍문을 만들어 냈는데,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고 그 대가로 기교를 얻었다는 소문까지 생겼다. 유명해지고 싶었던 파가니니 자신이 그 소문을 만들어 내었다는 얘기도 있다. 실제로 연주 도중에 바이올린의 현이 끊어졌는데도 나머지 현으로 연주를 계속했으며, 심지어 일부러 현을 하나씩 끊어가며 연주했다고도 한다. 줄 하나를 발가락에 매고 다른 쪽은 입에 문 채 연주하는 그림이 그려질 정도였다.
어쨌든 초인적인 그의 연주는 경탄할 만한 것이었다. 리스트나 베를리오즈 같은 후배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으며, 개성을 중시하고 명인(名人)적인 연주가를 중시하는 낭만주의의 태동에 큰 기여를 했다.
파가니니의 사생활에 대한 소문은 더욱 특이했다. 개런티로 받은 엄청난 금화를 바이올린 케이스 속에 넣고 다녔다고 하며, 별난 복장과 괴팍한 행동, 끊임없는 여자 관계에 대한 소문들이 항상 그를 따라다녔다. 파가니니는 자신의 연주곡들을 스스로 작곡했는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생전에 악보를 거의 공개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결국 사람들은 그를 예술가로 여기기보다는 기인으로만 취급하였으며, 여성 편력에서도 그를 진정으로 아꼈던 이는 별로 없었다. 심지어 그가 인후암으로 58년의 불우했던 생애를 마감했을 때, 고향에서는 악마라며 그의 매장을 거부하기까지 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율

파가니니는 지금도 음악계의 이단아이며 기인이며 기교만 뛰어났던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전 6개의 바이올린 협주곡들이 모두 출판되고 음반도 모두 완성된 것이 벌써 28년 전이다.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을 들어 보라. 거기에는 악마적인 요소가 아니라, 사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율과 낭만성이 숨쉬고 있다. 그의 멋진 곡들은 그에 대한 많은 비판처럼 심오한 깊이는 부족할지언정, 인간에게 꼭 필요한 '로망스'라는 영원한 에너지를 공급해 준다. 설탕이 몸에 나쁘다지만, 우리 몸에 꼭 필요한 것도 당분이다.
최근에 파가니니의 실내악곡들이 새로이 녹음되어 음반으로 출시되고 있다. 바이올린, 기타, 비올라, 첼로의 독특한 악기 구성으로 된 그의 일련의 현악 4중주들-꾸밈없고 진솔하고 청아한 이 곡들에서 우리는 진정한 애정을 그리워 했던 한 인간의 따뜻한 가슴을 느낄 수 있다.
이 가을에 더할 나위 없이 맑은 파가니니의 4중주 선율을 들어 보자. 푸른 하늘과 한 잔의 차가 있다면 더욱 행복할 것이다.

글쓴이 박종호는 신경정신과 전문의이며, 현재 음악 전문 칼럼니스트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