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편지 콩알만큼의 희망 .

아침 신문을 보니 어느 가장이 자동차 안에서 가스를 틀어놓고 가족과 함께 동반자살을 했다고 한다. 남긴 유서에는 “더 이상 살 길이 없어서, 이 세상살이가 너무나 버거워서, 이 무서운 세상에 아이들을 두고 갈 수 없어서 함께 간다”고 써 있었다.

퇴근길에 자주 듣는 라디오 프로에서는 어느 가난한 어머니에 대한 방송을 했다. 아이가 모계유전으로 불치의 병에 걸리자 아버지는 이혼을 요구했고, 양육비도 주지 않았다. 몸이 허약한 어머니는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날이 갈수록 이웃이나 친척의 도움도 사라져 가면서 살 길이 막막해지자 절망한 어머니는 마침내 아이를 데리고 죽을 결심을 했다.

마지막으로 아이와 함께 아이가 보고 싶어 하는 바다에 갔다. 어둑어둑한 바다에 오징어배가 환하게 불을 켠 채로 모여 있었다.
아이가 말했다. “엄마 저 불빛 참 예쁘지? 너무 예뻐.”
인터뷰에서 그 어머니는 말했다. “배를 보고 예쁘다고 감탄하는 아이의 그 마음을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 살 수 있는 권리를 내가 뺏을 수가 없어서 죽기를 포기했습니다.”

콩알 몇 개를 소중하게 품고 다니는 어머니가 있었다.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고 설상가상으로 가해자로 몰리자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그대로 길거리로 쫓겨났다. 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인 형제를 데리고 너무나도 힘겨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남의 집 헛간에 세 들어 살며 일을 찾았고, 자연히 살림은 초등학교 3학년 형이 맡았다. 그런 생활이 반 년. 그러나 아무런 직장경험이 없는 어머니는 죽도록 일해도 살림은 비참할 정도로 어려웠다. 사는 게 너무 힘들고 세상이 원망스러워서 어머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죽기로 했다. 아니,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일을 나가면서 어머니는 오늘은 집에 오는 길에 약을 사와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래도 죽는 날까지 아이들을 굶길 수가 없어서 냄비에 콩을 넣어 두고 집을 나서면서 맏이에게 메모를 써 놓았다.
“형일아, 냄비에 있는 콩을 조려서 오늘 저녁 반찬으로 하거라. 콩이 물러지면 간장을 넣어 간을 맞추면 된다. 엄마가”
생각대로 그 날 어머니는 남몰래 수면제를 사들고 돌아왔다. 두 아이는 나란히 잠들어 있었는데 맏이의 머리맡에 ‘엄마에게!’라고 쓰인 편지가 놓여 있었다.
“엄마, 엄마가 말한 대로 열심히 콩을 삶았어요. 그리고 콩이 물렁해졌을 때 간장을 부었는데 형민이가 ‘형! 짜서 못 먹겠어’하며 안 먹었어요. 그리고 반찬도 없이 거의 맨밥만 먹고 그냥 잠들어 버렸어요. 엄마, 내일 나가시기 전에 저 깨워서 콩 잘 삶는 법 꼭 가르쳐 주세요.”

어머니는 가슴이 뭉클했다. “아, 저 어린 것이 이토록 열심히 살려고 하고 있구나….” 콩 하나라도 열심히, 동생 입맛에 맞도록 삶아 보려는 아들의 의지가 너무나 기특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어머니는 사왔던 약봉지를 치웠다. 아들의 삶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게 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살아보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콩알 몇 개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힘들 때마다 꺼내 본다고 했다. “콩알만큼의 희망이라도 있으면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국 가난에 절망하고 세상에 지친 두 어머니는 아이들에 의해 삶에 대한 의지를 새로 깨달은 셈이다.
이 험한 세상 살아가며 이리 치대고 저리 부대끼며 문득 ‘아, 참 싫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자괴감에 빠질 때가 있다.
내 한 몸뚱이 없어지면 그만일 것을, 그러면 모든 것을 다 잊고 평화롭게 잠들 수 있을 것을 하는 강렬한 욕망에 휩싸이기도 한다. 세상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각박해짐에 따라 이런 욕망은 더욱 강해지는지, 작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자살한 사람의 수는 1만3,050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나뭇가지가 흔들려야 바람이 있는 줄 알고 절벽에서 떨어져야 인생이 절벽인 줄을 안다.’ 어디에선가 읽은 말이다. 무엇이든 뒤늦게 깨닫는 인간의 한계를 두고 한 말 같다. 석양에 예쁜 오징어배가 있는 아름다운 세상,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이 세상을 그들은 왜 버려야 했을까. 콩알만큼의 희망이 있어도 이 세상은 살만하지 않을까.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아마 그들은 콩알만큼의 희망도 이 세상에서 발견하지 못했나 보다. 우리가 그들에게 그만큼의 희망도 주지 못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