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정보마당 '대한민국국가석학' 울산대 고재영, 권병세 교수 김학찬



2006년 새해가 열리고 2주일 만인 지난 1월 13일. 교육인적자원부(부총리 겸 장관 김진표)와 한국학술진흥재단(이사장 허상만)은 ‘대한민국 국가석학’(Star Faculty) 11명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한국 과학계의 새로운 희망”이라는 평가와 함께 “머지않아 노벨상을 탈 가능성이 높은 한국 최고의 과학자들”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에 대해 전 세계 과학계가 주목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모두 SCI(Science Citation Index : 세계적인 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 피인용 횟수가 최소 1,000회 이상이며, 이 중 4명은 이미 4,000회를 넘어섰다. “앞선 노벨상 수상자들의 SCI 피인용 횟수가 통상 5,000회 가량인 점을 비춰볼 때 이들도 거의 노벨상 수준에 근접해 있다”는 게 교육부의 평가다.

교육부는 이들 국가석학들에 대한 범국가적 지원을 약속했다. 개인 연구비로 향후 5년간 매년 2억원(이론분야는 1억원)씩 10억원을 지원한다고 밝혔다.“필요하면 지원기간을 5년간 더 연장하겠다”고 약속했다. 10년에 걸쳐 국가석학 1인당 최대 20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이 같은 전폭적인 국가석학 지원의 목적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 국가적 위상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젊은 과학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도록 해 우수 연구자를 양성하겠다”고도 했다. 이들 국가석학을 통해 ‘과학한국의 희망’을 이뤄보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국가석학 가운데 난치병 환자와 그 가족들의 눈길을 끄는 두 사람이 포함돼 있다. 치매 치료제를 개발 중인 고재영 박사(49·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와 부작용 없는 난치성 질환 치료제를 개발 중인 권병세 박사(58·울산대 생명과학부 교수)다.

치매와 뇌혈관질환의 치료제 개발 연구
고재영 박사는 치매와 뇌혈관 질환의 원인을 규명하는 연구에 몰두해왔고, 이를 바탕으로 치료제 개발에도 심혈을 쏟고 있다.

지금까지 치매의 원인은 베타 - 아밀로이드 효소가 뇌 속에 과다 축적되는 것이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뇌 속에 너무 많이 쌓인 베타 - 아밀로이드 효소가 뇌세포를 죽여 기억력 감퇴, 지능저하 등을 일으켜 치매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고 박사는 그 같은 뇌세포 죽음에 뇌세포 속의 아연(Zn) 성분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역할을 규명하는데 몰두해왔다. 고 박사의 연구는 과학기술부의 창의적 연구진흥사업 과제로도 선정돼 집중적인 지원을 받았다. 고 박사는 마침내 뇌 속에 베타 - 아밀로이드 효소가 과다 축적되는 과정에 아연이 촉매제 역할을 하며, 이로 인해 과다 축적된 베타 - 아밀로이드 효소가 뇌세포를 죽게 만든다는 것을 세계 처음으로 발견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가 ‘아연 박사’라고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동안의 연구성과를 담은 ‘분자신경생물학에서 아연이 건강과 질병발생에 미치는 영향’이란 논문을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전문저널인 ‘네이처 리뷰 뉴로 사이언스’ 2005년 6월호에 게재했고, 세계 신경과학계는 그의 후속 연구에 주목하고 있다. 고 박사는 앞서 1999년 ‘사이언스’에도 논문을 게재해 한국 의학자로는 유일하게 세계 과학계의 양대 최고 저널에 논문을 모두 실은 기록을 갖고 있기도 하다.

고 박사의 논문은 지금까지 세계 신경과학자들의 각종 SCI급 논문에 집중적으로 피인용 돼, 지난해 말까지 노벨상 수상자들 수준에 근접하는 4,565회를 기록하고 있다. 이번에 선정된 11명의 국가석학 가운데서도 두 번째로 많은 피인용 횟수다. 고 박사는 그 동안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치매치료약 개발에도 몰두해 현재 호주의 한 제약회사에서 임상시험 중이다. “임상시험이 차질 없이 진행되면 빠르면 3년쯤 뒤부터 초기 치매 치료약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고 박사는 예상하고 있다.

교육부는 그 동안 고 박사의 연구성과를 종합해 발전시키는 ‘뇌에서 아연의 향상성: 신경질환에서 아연의 역할’이란 연구과제를 국가석학 연구과제로 선정해 집중적으로 지원키로 했다.

난치성 질환과 암 면역치료제 개발 목표
권병세 박사는 세포의 면역조절기능을 이용해 부작용 없이 각종 난치성 질환과 암을 치료하는 방법을 규명해 낸 세포면역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인체는 외부로부터 유해한 균이 침입하면 T면역세포라는 항체를 만들어 싸운다. 그러나 T면역세포 중 일부 특이세포는 종종 자기 몸 속 세포를 외부의 유해한 균으로 오해해 공격한다. 이 때 인체는 스스로 치료가 어려운 난치성 질환에 시달리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류머티스 관절염과 재생불량성 빈혈 등이다.

권 박사는 이처럼 자기 몸 속 세포를 공격하는 특이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죽일 수 있는 특수한 면역조절 물질을 분화·증식시키는 방법을 세계 최초로 규명해냈다. 난치성 질환인 류머티스 관절염과 재생불량성 빈혈 등의 원인을 제거·치료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또한 이 특수 면역조절물질 자극을 통해 T면역세포의 암세포 살해 능력도 200배 가량 높아진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그 동안의 실험 결과를 종합해보면 모든 종류의 암 치료에 상당한 효과를 기대 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권 박사의 연구성과는 특히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세계 과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수 면역조절물질만을 선택적으로 증식시키기 때문에 전체적인 면역기능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권 박사의 설명이다. 또한 “기존의 외과적 수술이나 항암제 투여, 방사선 치료 등의 암 치료 방법을 대체할 차세대 항암치료법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권 박사는 현재 미국 제약사와 치료제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이미 대장암에 걸린 쥐와 류머티스 관절염에 걸린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동물 실험에서 상당한 치료효과를 확인했다”고 한다. 현재 인체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는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대장암과 유방암 등에 대한 시험은 국내에서 국내 환자를 대상으로, 흑색종은 미국에서 미국 환자를 상대로 앞으로 3년간 실시할 예정이다. 교육부는 난치성 질환과 암 면역치료제 개발을 목표로 한 권 박사의 ‘4-1BB에 의한 자가반응 CD4-T 세포의 선택적 제거기작’을 국가석학 연구과제로 선정해 집중적으로 지원한다.

고재영, 권병세 박사는 모두 울산대 교수다. 울산대는 지방대로서는 유일하게 국가석학을 배출해 주목받았다. 특히 국가석학을 배출한 5개 대학 가운데 서울대(6명)를 제외하고 2명 이상의 국가석학을 배출한 유일한 대학으로 유명세를 탔다. 나머지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연세대, 성균관대가 각각 1명씩을 배출했다.

울산대는 지난해 SCI급 생명과학분야 학술지 게재 건수에서 KAIST와 같은 5.5건으로 국내 4위를 차지했다. 정정길 울산대 총장은 “노벨상 수상 경쟁에서 국내 최고의 대학들과 당당하게 어깨를 겨루고 있다”고 말했다. 오래지 않아 울산대에서 노벨상 수상 과학자가 배출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