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 단상 이라크에 꿈을 패스해 주자 정몽준



동아일보가 이라크에 ‘희망의 축구공’ 보내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 만국 공통어인 축구를 통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라크에 평화와 번영을 기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6·25전쟁 3년간 한반도에서 사용된 총탄과 화약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사용된 양보다 더 많았다고 한다. 온 나라가 잿더미가 되어 극심한 고통을 겪었을 때 우리는 축구를 통해 희망을 가꾸어 나간 경험이 있다.
6·25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예선전 당시 우리는 일본과 최종 예선을 홈 앤드 어웨이로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 사람은 한국 땅을 밟을 수 없다며 일본팀의 입국을 불허했다. 할 수 없이 우리 대표팀은 두 번 모두 일본에서 경기를 가져 각각 5대 1, 2대 2를 기록함으로써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기록했다. 불리한 여건에서 경기한 것이 오히려 우리 대표팀의 애국심을 자극해 투지를 불러일으킨 것이라고 하겠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에서 우리가 중국을 1 대 0으로 이겼던 3월 3일 이라크는 오만을 4대 0으로 눌러 전쟁에 지친 국민에게 기쁨을 안겨 주었다.
4월 6일에는 이라크 올림픽 대표팀이 우리나라를 방문해 올림픽 대표팀과 친선경기를 가졌다. 이 경기에는 양국 정부 관계자와 파병부대 장병과 가족도 초청돼 평화의 한마당을 열었다. 국군의 이라크 파병과 맞물려 한국과 이라크 국민이 더욱 친숙해진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5월 13일. 이라크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아시아 최종 예선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역전 끝에 3대 1로 꺾어 지난 88년 서울올림픽 이후 16년만에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게 된 것이다.
축구를 통한 꿈이 이라크 국민에게도 기쁨으로 되살아 난 것이다.

이라크는 한국의 축구 라이벌이면서도 좋은 추억을 갖고 있다. 이라크가 우리의 월드컵 진출을 도와 준 적이 있다. 1993년 카타르에서 벌어진 미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에서 우리나라는 일본에 밀려 본선 진출이 좌절될 위기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이라크가 예선 마지막 날 일본과의 경기에서 종료 직전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려 2대 2로 비기는 바람에 우리나라가 골 득실차에서 앞서 일본을 제치고 월드컵 진출 티켓을 따냈다.
그때 한국은 일본과 2002년 월드컵 유치 경쟁을 막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한국의 미국 월드컵 본선 진출은 일본보다 한발 늦었던 월드컵 유치 경쟁에서 우리에게 큰 힘이 되었다.
동아일보를 통해 보낸 축구공을 가지고 거친 운동장에서 축구를 즐길 이라크 어린이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6·25전쟁 당시 다 해어진 공을 차며 희망을 꿈꾸던 한국의 어린이들처럼 이라크 어린이들도 밝은 미래를 꿈꾸기를 기대한다. 동아일보의 ‘희망의 축구공’ 보내기 운동이 이라크의 평화 분위기 조성과 양국 국민간의 이해의 폭을 넓히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글쓴이 정몽준은 FIFA(국제축구연맹) 부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