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여름 식도락 김종성



유기농 신선한 야채에
참기름 한 수저
매큰한 풋고추
뚝뚝 잘라 넣고
가진 양념 산채 뚝배기 우렁 된장에
바글바글 끓인 순두부 한 그릇


‘여름 식도락’이란 시에서 시인 이양우는 독자의 미각을 한껏 좌우하는 맛깔스런 귀절을 쓰고 있다.
우리의 뇌에서 맛 중추는 ‘도피질’이란 곳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도피질보다 더욱 앞쪽에 있는 안전두엽이란 곳 역시 맛과 관련된 일을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도피질은 미각을 전달시키면 항상 활성화되는 데에 반해 안전두엽은 우리가 배가 고플 때만 활성화된다. 그리고 맛 이외에 음식의 냄새, 모양 등에 의해서도 활성화된다. 즉 맛 중추는 도피질이지만 뇌에서 진짜 근사한 식당은 도피질이 아니라 안전두엽인 것 같다.

미식가는 창조적이다?! 그런데 미각이란 생각보다 복잡해서 아직도 우리는 미각에 관련된 뇌의 구조와 생리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안전두엽 이외의 대뇌의 여러 곳이 미각과 관계한다는 증거가 나오고 있다. 예컨대 도호쿠 대학교의 카와시마 교수는 소금물과 맹물을 각각 맛보게 하면서 피검자들의 뇌혈류를 검사해 보니 소금물을 맛볼 때 도피질 이외에 대상회, 해마 주변, 미상핵 등 뇌의 여러 부위가 활성화되었다고 하였다.
뿐만 아니다. 38명의 피검자에게 여러 가지 맛 자극을 주면서 실험했던 옥스포드 대학교의 롤즈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맛 자극은 앞에서 말한 뇌 부위 이외에 지적인 판단 및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담당한다고 생각되는 부위인 외측 전두엽까지도 활성화시킨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음식을 유난히 밝히는 미식가는 아마도 뇌의 여러 부위가 발달한 사람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미식가는 전두엽이 발달한 창조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사실 음식 문화가 발달한 지방, 예컨대 이태리, 프랑스, 중국 같은 나라는 독창적인 문화와 화려한 문명을 이룬 곳이기도 하다.

사자는 과일 맛을 모르지만 그러나 밥과 김치만 먹고 사는 사람일지라도 우리들은 다른 동물에 비한다면 어느 정도는 식도락가라 할 수 있다. 개미핥기는 개미만 먹고, 코알라는 유칼리 나무의 잎만 먹고 산다. 사슴은 여러 가지 풀을 먹지만 고기 맛을 모르고, 사자는 얼룩말과 물소를 먹지만 과일 맛은 모른다.
이에 반해 세상의 거의 모든 동물과 식물을 즐겁게 먹는 인간은 어쩌면 그 다양한 음식의 종류 때문에 뇌가 발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혹은 식사 대접을 하나의 사교 행위로 간주하는 우리들인 것을 생각하면 맛 중추의 다변화는 사교 문화의 발전과 연관된 것일 수도 있다.
이처럼 인간의 미각 중추가 발달한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요즈음 비만 환자가 늘어나는 것이 문제다. ‘맛있는 것을 먹되, 배부르기 전에 그쳐야’하는데, 이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글쓴이 김종성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