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방랑자의 매력 김종성



참 모를 일
여자의 행동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얼마 전 개봉한 일본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아오이(진혜림 역)의 동거자 마빈은 돈 많고 체격 좋고 참 잘생겼다. 빈틈없고 멋지고, 게다가 여성에 대한 매너도 끝내준다. 그런데도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끝내 어리숙한 청년 준세이(다케노우치 유타카 역)다.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가을의 전설’에서 몬태나의 한적한 삼형제의 집에 들어온 여자 수잔나(줄리아 오몬드 역)는 삼형제 모두와 관계를 맺지만 결국 교양 있는 상원 위원인 장남 알프레드(에디단 퀸 역)와 결혼한다. 하지만 실제 속 깊은 마음은 마땅한 직업도 없이 떠도는 둘째 트리스탄(브래드 피트 역)에게 가 있다.
로제 바딤 감독의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하였다’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줄리엣(브리지드 바르도 역)은 수줍고 착실한 미셸(장 루이 트레티냥 분)과 결혼하지만 난봉꾼인 앙뜨완(크리스티앙 마르깡 분)에게 마음이 끌린다. 다만 여기서 방랑자가 맏형이고 착실파가 동생인 점이 다를 뿐이다.

홀린 여인들
이런 방랑자 역에 랄프 파인즈는 특히 잘 어울리는가 보다. 특유의 시니컬한 표정을 지으며 남의 부인을 유혹하는 역에 심심찮게 등장한다. 닐 조단 감독의 ‘애수’에서 그는 소설가로 분해 점잖은 공무원 남편을 둔 사라(줄리언 무어 역)를 유혹하며, ‘잉글리쉬 페이션트’에서도 영국 귀족의 아내 캐서린(줄리엣 비노쉬)과 사랑을 나눈다. 내가 보기에 그저 그런 친구에게 왜 이런 훌륭한 여인들이 끌리는지 도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녀들은 무엇엔가 홀린 듯 그를 따라간다.
이런 영화들을 통해 우리는 결혼은 돈 많고 지위가 높은 남자와 할지 몰라도 여성들이 실제로 끌리는 것은 방랑자임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유전자가 심어 둔 싹
일반적으로 동물의 세계에서는 가장 힘센 수컷이 여러 암컷을 얻는 것이 법칙이다. 따라서 일부 다처제 사회에서는 대장 이외의 수컷들은 암컷과 교미하기 어렵다. 침팬지는 난교상태로 지내므로 졸병들도 교미할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임신 가능성이 높은 시점에는 암컷들은 언제나 대장을 찾는다. 인간은 물론 일부일처제를 택하고 있지만 이런 원칙이 어느 정도는 적용된다고 본다.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재벌 집 아들과 농촌 총각 사이의 매력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예외도 있다. 암컷들은 지위가 높지 않더라도 방랑자에 관심이 많다는 증거가 있다. 최근 일본 다카하타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일본원숭이 집단에 새로 들어온 수컷은 그 사회에서 지위가 낮더라도 암컷에게는 성적 매력이 있어 무리의 어느 수컷보다도 더 많은 암컷과 짝짓기를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 무리의 동물 집단은 대개 서로 친척 관계이다. 즉 그 집단 내에서의 교미는 근친 교배인 셈이다. 근친 교배는 유전병의 전파 등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 유전자는 암컷의 뇌에 방랑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두었을 것이다.
동물 세계의 일을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물론 무리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정숙한 여인일지라도 마음 속 깊은 한 귀퉁이에는 방랑자에 대한 사랑의 싹 하나씩을 키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글쓴이 김종성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