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여의사 김종성


같은 망치를 들어도…
“뾰족한 송곳, 날카로운 칼, 딱딱한 망치… 마치 고문 도구 같아, 보기만 해도 등에 식은 땀이 나.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어”
얼마 전 내게 이렇게 말한 친구 녀석의 직업은 다름아닌 치과 의사였다. 자신은 매일같이 이런 도구를 사용해 환자를 치료하면서, 실제로 환자가 되어 치과 의자에 앉아 보니 그제서야 환자가 느끼는 공포를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도 얼마 전 잇몸 치료 하러 치과 병원에 들렀던 나의 경우는 훨씬 나았다. 담당 치과 의사가 여의사였기 때문이다. 다정한 목소리, 부드러운 미소, 잇몸이 상해 참 안됐다는 동정적 어조, 게다가 “입을 사알짝 열어 보세요~”, “이가 시리면 손을 들어 주세요~” 초등학교 선생님의 단조로운 말투가 귀속을 간지럽힐 때는 나도 갑자기 초등학생으로 돌아가 “난 여기가 아픈데요”라고 어리광 부리고 싶었다. 이런 점에서 의사든 치과 의사든, 의료업에는 여성이 유리한 점이 있다. 물론 벌써부터 간호사는 여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말이다.

“선생님은 언제 오시죠?”
미국에서 조사된 바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여의사들은 환자에게 말을 걸고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남자 의사에 비해 길다고 한다. 따라서 일 주일 동안 보는 환자의 수는 여의사가 남자 의사보다 적다. 어느 것이 원인이고 어느 것이 결과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몸이 불편해 한 마디라도 위로의 말을 더 듣고 싶은 환자 입장에서는 여의사 쪽이 더 낫다.
하지만 여의사가 불리한 점도 없지는 않다. 간혹 여자 전공의가 환자를 진찰하고 돌아간 후, 의사 선생님은 언제 오시냐고 묻는 환자들이 있다. 간호사가 들른 줄 안 것이다. 아무래도 전문적, 권위적으로 보이는 것은 남자 의사 쪽인 것 같다. 그러나 얼마 전 서울아산병원에서의 설문 조사에 의하면 의사의 전문 실력보다는 충분한 시간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 해 주는 편이 환자의 만족도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
내가 보기에 의학은 여성에게 유리한 학문이다. 첫째로 외우는 것이 많은 학문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외우기를 잘한다. 실제로 길을 찾을 때 남성들은 공간적 감각을 동원하지만 여성은 골목길에서 본 가게의 이름을 외우는 식으로 찾는 경향이 있다.
둘째로 의학이란 단순한 뼈 이름부터 복잡한 생리 공식까지 여러 과목이 융합되는 종합 학문이다. 환자의 진료 역시 환자가 나타내는 수많은 징후를 종합해서 판단하는 행위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좌우의 뇌를 동시에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일종의 짬뽕 기술인 의술에는 뇌가 한꺼번에 작동하는 여성이 유리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미 위에서 말했듯 여성은 환자를 따뜻한 인간으로 본다. 따라서 환자의 기분 상태를 파악하고, 이를 다스려 주는 심리 치료를 더 잘 할 수 있다. 즉 남자 의사는 병을 치료하지만 여자 의사는 환자를 치료한다는 점에서 더 훌륭한 의사일 수 있다.

현장으로
의료 행위란 언제나 스트레스가 따르기 마련이다. 혹 난폭한 환자라도 만나면 대적하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여성들은 예부터 임상병리나 방사선과 같은 ‘조용한’, ‘서비스 과’를 택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실험실 시약이나 방사선 필름만 쳐다봐서는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는 섬세한 여성 의료인의 이점을 살릴 수 없다. 따라서 여성은 좀더 과감히 의료의 현장, 진료의 중심으로 진출해야 한다.
하긴 그렇지 않아도 요즘 의과대학 학생 중에는 남녀가 반반이다. 여의사가 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이제 얼마 후에는 내과, 소아과, 정신과 같은 곳에서는 남자 의사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정형외과, 흉부외과 같은 막노동 과에서 그나마 남자 의사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글쓴이 김종성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