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모기와 인간: 나는 왜 모기를 잡는가 김종성


모기 잘 잡는 의사
나는 모기를 잡는다. 그것도 아주 잘 잡는다. 한밤중에 모기가 앵앵 소리를 내며 공중을 날아 다녀도 두터운 안경을 쓴 아내나 아이들은 좀처럼 이 날쌘 곤충을 잡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매일 아침 운동을 하기 때문에 몸이 빠르다. 게다가 의사치고는 희귀하게 눈이 좋아 두 눈 모두 시력이 1.5에 달한다. 나는 벌떡 일어나 공중을 날아다니는 모기를 잠시 노려 본 후 힘차게 후려친다.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모기의 시체---- 여자의 힘으로는 절대 열 수 없는 병 뚜껑을 내가 쉽게 열어줄 때를 제외한다면, 아내가 이때만큼 나를 존경스런 모습으로 쳐다보는 경우는 없다. 그렇다. 나는 모기를 잘 잡는 동물이다.

대단한 곤충들
하지만 내가 벌레를 잘 죽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나는 다른 벌레는 절대 죽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을 보호한다. 개미들이 맨 땅을 줄을 서서 지나가면 밟지 않으려 피해가며, 집안에 들어온 작은 벌레들도 죽을세라 살살 휴지에 싸서 창 밖에 내보내준다. 나는 이 조그마한 곤충들을 경외한다. 이들은 대단하다. 러시아의 아시모프 박사에 의하면 지구상의 생물 가운데 97%는 곤충이다. 게다가 아직까지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생물의 대부분 역시 곤충이다. 인간은 자신들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 발 밑을 기어가는 곤충들은 지구의 주인은 자기들이라고 믿고 있다. 실제로 그들은 인류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지구상에서 진화하기 시작했고 훌륭히 살아 남았다. 개미는 이미 우리보다 수천만 년 앞서 그들의 가축인 진드기를 사육했고 식량인 버섯을 재배했다. 그때부터 그들은 노예를 잡아다 힘든 일을 시키곤 했는데 인간들이 이 방법을 알아낸 것은 불과 수천 년 전이다. 곤충들은 진정으로 멋있게, 그리고 현명하게 진화된 동물이다.

왜 잡느냐 하면
그런데 나는 왜 모기를 잡는가. 주관적인 감정을 떨치고 생각해 보면, 모기 역시 아름답게 진화한 생명이다. 유럽영화 ‘마이크로 코스모스’를 본 사람들은 모기의 탄생이 얼마나 예술적인가를 알고 있을 것이다. 모기 새끼인 장구벌레는 어느 날 소리 없이 물 위에 뜬다. 동터 오는 새벽 그의 등은 서서히 갈라지고, 어느새 팔등신 날씬한 몸매로 변신한 모기는 가볍게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런데 하필 모기는 동물의 피를 빨아 먹도록 진화했고, 이것이 우리와의 악연의 시작이었다. 모기의 공격에 대비하여 우리는 이를 방어하면서 살아왔다. 동물들은 꼬리나 팔로 자신의 피를 빨려는 모기를 공격했고, 이런 공격을 피하기 위해 모기는 소리 없이 다가와 몰래 피부에 앉은 후 순식간에 피를 빨고 달아나는 방법을 터득했다. 즉 모기를 쫓는 동물과 이들을 물어야 살아갈 수 있는 모기는 서로 공격과 방어 기술을 터득하면서 경쟁적으로 진화해 왔던 것이다. 내 생각에 모기의 기술은 아직 완벽하지 못하다. 전혀 느낌도 없이 살갗에 내려앉는 기술은 훌륭하지만 간혹 날아다닐 때 앵- 소리를 냄으로써 김종성 같은 동물에게 자신의 위치를 들켜버리고 만다.

진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신을 공격하는 모기를 잡는 것은 바깥 들에 나가 메뚜기나 무당벌레를 잡아 죽이는 것과는 전혀 의미가 다르다. 우리는 모기를 계속 잡아야 한다. 그래야만 모기도 우리에게 안 잡혀 죽으려고 열심히 발전적인 진화를 수행할 것이다. 결국 내가 모기를 잡는 것은 모기가 미워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이 훌륭한 곤충과 함께 진화해 살아가자는 몸짓인 것이다.

여름이 일찍 시작한 탓인지 올해는 모기가 유난히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자주 모기를 잡는다. 모두들 잠든 고요한 밤중에 모기를 잡겠다고 두 손을 내두르는 내 모습은 마치 귀찮은 벌레를 쫓아내려는 고릴라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글쓴이 김종성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