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돗둘 모정 정호승

산불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봄 가뭄이 심한 탓에 한번 일기 시작한 불길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더구나 어둠이 곧 산을 덮쳐버리고 바람까지 부는 바람에 마을 사람들은 벌겋게 치솟아 오르는 불길을 망연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왜 누가 잘못해서 산불이 났는지 따질 기력조차 없었다. 다들 불길이 더 이상 번지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산불은 이튿날 오후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뒤늦게나마 소방서에서 출동하지 않았다면 산불은 사나흘이나 더 계속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튿날, 마을 사람들 몇몇은 산불이 지나간 산을 올랐다. 새까맣게 타버린 산 곳곳에서 아직 채 꺼지지 않은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늘 맑고 깨끗하던 햇살마저도 시꺼멓게 타올라 매캐한 냄새를 피워 올렸다. 산을 온통 붉게 물들이던 진달래와 푸른 하늘을 자유로이 날던 새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타다 남은 나무들의 모습 또한 처참했다. 인간의 죽음인들 저토록 처참할 수 있을까 싶었다.
산을 오르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은 참담했다. 다들 조상들 뵐 낯이 없었다. 풀 한 포기 없이 새까맣게 타버린 산도 산이지만 조상들을 모신 무덤마저 타 버렸을까 걱정이었다.

그런데 물 한 방울 없이 바싹 마른 골짜기를 지날 때였다. 까투리 한 마리가 불에 탄 채 앉아서 죽어 있는 모습이 마을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어허, 이 까투리 좀 보게.”
“제 짝은 어디 두고….”
“정말 애처로우이.”
마을 사람들은 가슴이 저민 나머지 다들 한 마디씩 입을 열었다.

너무 마음이 저린 탓이었을까. 누군가가 들고 있던 지겟작대기로 조심스럽게 까투리를 툭 건드려 눕혀 주었다.
그러자 까투리 품속에서 새끼들이 나와 뿔뿔이 흩어졌다. 그 죽음의 불길 속에서도 까투리 새끼들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놀라다 못해 숙연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까투리가 새끼들을 살리기 위해 불에 타죽으면서까지 새끼들을 품속에 품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글쓴이 정호승은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