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돗둘 당신의 마음에 창을 달아 드립니다 정호승


그는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주로 무슨 말을 가장 많이 하나 하고 주의 깊게 귀를 기울여보았다.
사람들은 먹는 이야기에서부터 돈 버는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말을 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쓰이는 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죽고 싶다’는 말이었다. 죽고 싶다는 말이 들어가지 않으면 도대체 말이 되지 않았다.
“내가 왜 사는지 모르겠어. 하루하루 사는 게 정말 지겨워 죽겠어. 난 정말 죽고 싶어.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다들 어둡고 침침했다. 간혹 죽음의 그림자도 어른거렸다.
그는 그런 사람들을 모두 위로해 주고 싶었다. 기쁨의 환한 미소를 안겨 주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고민해도 별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고민 고민하다가 어느 날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났다.
기차가 다다른 곳은 어느 바닷가 마을이었다. 그는 바다가 보이는 한 호텔 방에 들어서자마자 창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열어 젖혔다. 바다가 한눈에 다 들어왔다. 답답하던 가슴이 한순간에 탁 트였다.
다음날 새벽에도 일찍 일어나 그는 커튼을 열어 젖혔다. 찬란한 아침해가 수평선 위로 막 솟아오르고 있었다.
‘아, 맞아! 사람들의 마음에 창을 달아 주면 되는 거야. 아침해가 떠오르는 창문을 열면 사람들은 모두 기쁨에 차 오를 거야!’
그는 즉시 여행에서 돌아와 사람들의 마음에 창을 달아주는 회사를 차렸다. ‘당신의 마음에 창을 달아드립니다’라는 카피를 써서 신문에 광고를 내자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그는 그들의 마음에 일일이 창을 달아주었다. 가능하면 햇빛이 잘 들도록 남향받이로 크고 넓은 창을 달아주었다.
마음에 창을 단 사람들은 이제 죽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들 자기 마음에 달린 창을 열고 시원하게 바람을 쐬거나 햇살에 몸을 맡기며 싱글벙글 웃는 일이 잦아졌다.

그런 어느 날, 한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데리고 와 창을 달아달라고 말했다.
“삭막한 내 아들의 마음에 창을 좀 달아주십시오. 부탁입니다.”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은 무척 따뜻했다.
“그러면 아버님부터 먼저 창을 달도록 하세요. 아버지의 마음에 창이 달려 있어야 아들의 마음에도 창을 달 수 있답니다.”
그는 먼저 아버지의 마음에 창을 달 것을 권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저는 마음에 창이 있는 사람입니다. 제 아들이 창이 없어서 데려왔을 뿐입니다.”
그는 급히 아버지의 마음을 열어보았다. 정말 아버지의 마음속에는 맑고 튼튼한 창이 달려 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열 개나 달려 있었다.
“다른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아버님께서는 창이 열 개나 달려 있습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자 아버지가 말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마음에 창을 열 개씩 달고 태어난답니다. 하느님이 사람의 마음을 만들면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 개의 창을 만들어주었지요. 열 개 중에서 하나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쓰고, 나머지 아홉 개는 남을 위해서 쓰라고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만을 위해 창을 쓰다가 그만 다 망가뜨리고 말았답니다.”

글쓴이 정호승은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