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클리닉 눈이 앞에 달린 이유 김종성


인간은 왜 눈이 옆에 달려 있지 않나?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앞만 보고 가는 사람, 뒤만 돌아보고 있는 사람, 그리고 앞을 보며 걷다가 가끔씩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이다. 첫번째 사람은 발전적, 진취적이겠지만 사는 동안 실수와 후회를 많이 할 것이고, 두 번째 사람은 실수는 안 하겠지만 도무지 발전이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세 번째 사람은 물론 가장 현명한 사람이다. 그러나 누구라도 앞을 보며 전진하면서 적절히 뒤를 바라보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우리 인간은 지구상의 어떤 동물에 비해서도 앞을 보면서 잘 달려 왔다. 우리가 이처럼 발전적으로 앞을 보고 달려온 이유는 우리의 특이한 모습과 관계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동물들은 눈이 양 옆에 달려 있는데 반해 우리 눈은 앞을 향해 있다. 물론 인간뿐 아니라 원숭이들도 이렇다. 즉 이런 모습은 현대인의 독특한 모습이라기보다는 오랜 진화의 산물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왜 영장류나 우리 인간은 물고기나 말처럼 눈이 옆에 달려 있지 않을까? 양 눈이 앞으로 향해 있으면 우리에게 어떤 이익이 있을까?

시각 사냥꾼과 적당한 가지 찾기
여기에 관해서 두 가지 의견이 있다. 첫번째 이론은 `‘시각 사냥꾼’ 설로, 매튜 카트밀(Matthew Cartmill) 같은 학자에 의해 주장되었다. 초기 영장류들이 나무 위를 기어 다니는 벌레를 정확히 잡으려면 눈이 앞쪽에 있는 편이 유리했다는 것이다. 눈이 앞쪽에 있으면 시야의 가운데 있는 물체가 망막에 명료하게 상이 맺히며 또한 입체적인 상을 더욱 뚜렷하게 함으로써 원근감을 향상시킨다. 따라서 자신과 먹이감과의 거리 측정이 정확해진다. 두 번째 이론은 로버트 마틴(Robert Martin) 같은 학자가 주장하는 `‘적당한 가지 찾기’ 설인데, 나뭇가지 위를 건너 다니는 영장류들은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 건너편 나뭇가지의 크기와 단단한 정도를 짐작해야 했고, 또한 나뭇가지 사이의 거리를 정확히 측정해야 했다. 이는 그들의 생과 사를 가늠할 만큼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눈이 머리의 앞쪽으로 왔다는 것이다. 이 두 이론은 서로 상충되는 것은 아니다. 상을 뚜렷하게 하고 정확한 거리를 측정하기 위해서라는 점에서 결국 비슷한 생각인 것이다.
아무튼 영장류의 경우 나뭇가지 위에서 살기에 적합하기 위해 눈이 앞쪽으로 와 붙은 것인데, 인간은 400~500만 년 전에 나뭇가지 위에 매달려 있는 동료들을 멀리하고 초원을 뛰어다니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들판을 뛰어다니는 동물치고는 어울리지 않게 눈이 앞으로 나온 모습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우리의 눈이 앞에 달린 사실은 우리 조상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들이 창을 던지거나 활을 쏘아 동물들을 사냥할 때 정확한 거리 측정이 매우 긴요했기 때문이다. 만일 영장류 시절 눈을 앞으로 옮겨 오지 않았더라면 조상들은 사냥을 잘 못했을 것이고, 초원의 다른 동물들과 경쟁하다가 모두 멸종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눈이 앞에 달려 있더라도
그런데 이처럼 얼굴의 앞으로 나와 버린 눈 역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두 눈이 모두 앞쪽만 바라보므로 시야가 현저히 좁아진다는 사실이다. 조나던 스위프트의 풍자소설 ‘걸리버 여행기’에서 말이 눈이 앞에 달린 인간을 비웃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즉 뒤로부터 살금살금 다가와 덮치는 표범이나 독수리를 피할 길이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영장류가 그리고 우리 조상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사회생활 덕택이었다. 여럿이 각자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야가 좁은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진화를 생각해 본다면 어쩔 수 없이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인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우리의 눈이 비록 앞에 달려 있더라도 혹 우리 자신이 게을렀거나 남에게 실수한 것은 없는지 가끔은 뒤를 바라보며 살자.

글쓴이 김종성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