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클리닉 여성의 날씬한 허리에 대해서 김종성


아름다운 여성의 기준

병원 1층에 내려가면 유방과 히프가 풍만한 세 명의 여인이 언제나 나를 반긴다. 물론 실물은 아니고, 고정수 씨의 조각이다. 이러한 예술 작품에서 강조되듯, 얼굴이나 교양을 제외한다면 여성의 아름다움의 기준은 단연 유방과 히프이다.
여성에게 유방과 히프가 중요하게 된 것은 원시시대로 거슬러간다. 생존하기 힘든 시대에 남자들은 배우자로서 육아를 잘하고 아이를 잘 낳는 여성을 택하고 싶었고, 여성은 유방과 히프를 크게 함으로써 자신이 적임자임을 증명하려 애썼다.
결국 이런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인간 여성은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유방과 히프가 큰 모습을 갖게 된 것이다. 다른 동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인간만이 일부다처제를 버리고 일부일처제를 택한 결과이다. 아내가 여러 명 있다면 상관없겠으나 단 한 명밖에 가질 수 없다면 이런 선택적 압력이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속이는 남성과 여성

그런데 유방과 히프가 육아를 잘 한다는 징표로 발달한 것이라면, 왜 여성의 허리는 날씬해야 좋은 것일까? 허리가 두텁다는 점은 오히려 그녀의 영양 상태가 좋으며, 따라서 육아나 생존에 유리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여기에 대한 미시간 대학의 보비 로우(Bobbi Low) 교수의 생각은 이렇다.
여성의 유방이 크다고 젖이 많이 나오는 것은 아니며, 히프가 크다고 골반이 큰 것도 아니다. 즉 큰 유방, 큰 히프는 단지 비만한 여성의 쓸모없는 ‘비계 덩어리’에 불과할 수도 있는데, 여성들은 마치 이것이 육아를 잘 하는 징표인 것처럼 남성들을 속여왔다는 것이다.
여기에 넘어가지 않으려는 남성들은 어떤 여성의 유방과 히프가 지방질 덩어리가 아니라는 증거를 지방질이 전혀 안 붙은 그녀의 허리에서 찾기 시작했고, 이에 반응하여 여성은 자신의 허리만은 날씬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즉 현재 우리가 바라보는 여성의 몸의 굴곡은 속고 속이는 남성과 여성의 긴 역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기발한 생각이지만 나는 여성의 날씬한 허리는 단순히 유방이나 히프의 발달을 강조하기 위한 방법인 것으로 생각한다. 텍사스 대학의 디벤드라 싱(Devendra Singh)에 의하면, ‘플레이 보이’지 모델이 아무리 변해도 엉덩이 둘레에 대한 허리의 상대적 비율은 0.7 정도로 늘 일정하다고 한다. 즉 허리의 둘레는 히프를 강조할 수 있는 상대적 수치라면 충분한 것이다. 실제로 르노와르나 루벤스의 그림 모델은 뚱뚱한 여인이지만, 그녀들의 히프가 워낙 크기 때문에 허리/엉덩이 비율은 0.7에 가깝다. 따라서 허리/히프 비율을 낮추려면 코르셋을 조이는 방법이 있겠지만, 반대로 중세 유럽 여인들처럼 히프를 크게 보이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이런 점에서 만일 다이어트가 너무 어려운 여성이라면 차라리 히프를 늘리는 방법을 고려해 봄직도 하다.

우리 안에 갖힌 쥐?

그렇다면 요즘 미스 코리아나 패션 모델 대회에 르노와르의 통통한 여인이 아닌 젓가락 같은 여자들만 비척비척 걸어 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생각에는 다산이 중요했던 예전과는 달리 인구 밀도가 갑작스레 높아진 지금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실험에 의하면 평소 짝짓기를 잘 하던 쥐들도 밀도가 높은 곳에 가두어 키우면 교미를 중지한다. 즉 쥐들도 산아 제한을 하는 것이다.
아마도 쥐 사회에 미스 쥐 콘테스트가 있다면 한적한 곳에 사는 야생 쥐는 글래머를, 복잡한 우리 안에 갇힌 쥐는 빼빼 마른 쥐를 선택할 것이다. 사람들이 지나치게 바글거리는 곳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바로 우리 안에 갇힌 쥐 신세인 것이다.

글쓴이 김종성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