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는 행복 눈썰매의 추억 고순자

경상도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나는 눈이 오면 제일 반가운 것이 눈썰매를 타는 일이었다. 기다리던 눈이 소복히 내리면 미리 준비해둔 비닐포대를 챙겨들고 뒷집의 옥희와 동네 뒤에 있는 언덕배기로 신나게 달려갔다. 손에 든 비닐포대에는‘요소비료’라는 큼지막한 글자에 누런 벼가 고개 숙인 그림이 선명했다.

마음 같아서는 제일 먼저 하얀 눈 위를 미끄러지고 싶었지만 언덕 곳곳에 매복해 있는 돌멩이들이 두려워 눈치만 보고 있을 즈음, 이장 집 아들이 비닐 장판 두툼한 것을 챙겨서 왔다. 그 애가 장판을 타고 엉거주춤 내려가면서 엉덩이에 걸리는 잔돌들을 치워주면 이윽고 우리는 신나게 눈썰매를 탔다. 가끔 미처 제거하지 못한 돌부리들이 엉덩이를 찔렀지만 오히려 친구들의 웃음소리만 커졌다.

해질 무렵까지 신나게 눈썰매를 타다 보니 또래들은 저녁 먹으러 가고 나와 이장 집 아들만 남아 있었다. 마지막이니만큼 멋지게 썰매를 타고 돌아가자는 생각에 양 발을 허공에 치켜들고 ‘이야호~’소리를 지르며 언덕을 내려갔다. 그런데 흥에 겨워 발을 너무 치켜든 걸까? 기우뚱하며 균형을 잃는가 싶더니 엉덩이에 뾰족한 아픔이 전해져 왔다. 비장의 돌부리가 숨어있다가 내게 최후의 일격을 날렸던가 보다.

데굴데굴 굴러 아래쪽 둔덕에 처박힌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잠시 후 정신이 들고 보니 이미 해는 졌고 추위가 엄습해왔다. 나중에 들으니 내가 죽은 걸로 착각한 그 애는 겁에 질려 집으로 돌아가서 아무 말도 못하고 혼자서 떨기만 했단다. 나는 어깨가 잘못되었는지 조금만 꿈틀해도 온몸에 통증이 불길처럼 번져왔다. 그래도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지만 왜 그리 늦었냐는 엄마의 꾸지람에 아프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밥상을 앞에 두고도 숟가락조차 제대로 들지 못한 채 끙끙대면서부터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다. 급히 자전거에 실려 면 소재지에 가서 닫힌 병원 문을 두드려 의사를 부르고 엑스레이를 찍은 결과, 어깨뼈에 금이 갔음을 알았다. 다른 부위와는 달리 어깨는 깁스를 할 수 없어서 양 어깨에 부목을 대고 붕대로 칭칭 둘러 고정시켰다. 마치 미라처럼 꼼짝 못하는 신세로 지낸 한 달 동안 ‘선 머슴아’로 행동한 나를 두고 식구들은 물론 또래들도 말이 많았다. 지금도 가끔 친정에 가면 어른들이 그 때 일을 끄집어내 추억에 잠기게 한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면 나는 TV를 통해 눈썰매 타는 아이들을 유심히 본다. 가게에서 파는 제대로 된 썰매를 타는 아이들은 엉덩이를 찌르는 돌부리의 고통을 모른다. 그리고 양 다리를 들고 타도 전복될 위험이 없다. 하지만 어릴 적 우리들이 추억하는 재미와 짜릿함을 알지는 못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