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는 행복 편의점 아저씨 권보영



그해 가을, 이삿짐을 풀자마자 제 눈에 띈 것은 마을 안길에 늘어서 있는 은행나무였습니다. 공짜로 딸 수 있는 은행이라는 말을 듣고 저는 친구와 욕심스럽게 엄청난 은행을 털었습니다. 그리고 돼지갈비를 사먹었는데, 갑자기 온몸이 퉁퉁 부으며 옻이 오르고 말았지요.

제 얼굴은 평소보다 3배나 커져 떡판처럼 된 것도 모자라, 눈꺼풀이 덮여 앞을 보려면 손으로 눈꺼풀을 강제로 올려야 했습니다. 온몸이 가려운 증세까지 심해져 병원 응급실로 쫓아갔지만 마땅한 방법도 없이 연고만을 받아왔습니다.

남편은 사흘간 직장교육을 가게 되어 이삿짐은 풀지도 못한 채 저 혼자 낯선 집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사를 하느라 냉장고를 텅 비워버린 탓에 먹을 것은 없는데 배는 고파왔습니다. 별수 없이 밥을 시켜야 했지만, 당시 저희들이 이사한 곳은 시골의 단독주택이라 음식 배달도 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궁여지책으로 114로 전화해 가장 가까운 슈퍼를 물어보았습니다. 편의점 번호라며 가르쳐 준 번호로 전화를 하여 사정을 얘기했지요. 이후 편의점 아저씨가 초코파이를 한 통 들고 오셨는데, 제 얼굴을 보더니 기겁을 하셨습니다. 저는 대충의 사정을 떠듬떠듬 얘기하고 돈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20여 분 뒤에 편의점 아저씨가 우유를 가지고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삿짐을 풀지 않아 끓인 물도 없을 텐데 우유라도 먹으라고 하더군요. 자기네 편의점에는 생수는 팔지 않아 우유밖에 줄 것이 없어 미안하다면서요. 이튿날 다시 편의점 아저씨가 호빵을 쪄서 우유와 같이 가지고 오셨습니다. 얼굴 때문에 밖으로 나가지 못하니 얼마나 답답하냐며 부탁할 것이 있으면 하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염치불구하고 연고만으로는 옻이 낫질 않으니 먹는 약을 좀 지어다 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저녁에 편의점 아저씨는 약을 지어다 주시며 이튿날 먹을 빵과 우유, 그리고 생수도 한 병 가져다 주셨습니다. 약은 생수로 먹어야 한다면서 약국에 가는 길에 사 가지고 오셨대요. 병원에서 사람들은 제 얼굴을 동물원 원숭이 보듯 했는데, 아저씨는 전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아플 때 혼자 있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서럽답니다”면서 빨리 나으라는 말씀까지 해주셨지요. 교육중인 남편이 단 한번의 안부 전화 밖에 걸어오지 않아 무척 서러울 때 그 말씀을 하셔서 더욱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저녁에 남편이 교육을 마치고 오게 되어 편의점 아저씨의 방문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옻이 낫고 나서 저는 동네로 나가 그 편의점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말이 편의점이지 2평 남짓한 구멍가게였습니다. 도시에서 하던 편의점 간판을 그대로 가지고 와서 걸어놓으셨다는 말씀 끝에 아저씨의 상처를 알게 되었습니다. 망해버린 가게, 이혼, 뿔뿔이 흩어진 가족…. 그런 아픔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남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보태준 아저씨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아저씨 덕분에 사흘간 굶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제 흉한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도 지냈으니 정말 제 삶의 은인인 분이죠.

다행히 가족들과 합치며 이사를 하셨다는 좋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따뜻한 가슴으로 사시는 분이라, 지금 이 시간에도 분명 다른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나눠주고 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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