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는 행복 교문도 운동장도 없는 학교 장미숙



교문도 없고, 운동장도 없는 학교. 아이들의 파릇파릇한 모습이 아니라 얼굴에 주름이 지기 시작한 주부들이 커다란 가방을 들고 들어서는 곳, 그곳은 바로 ‘주부학교’입니다. 그러나 배움의 열기만은 일반학교 못지않은 곳이죠. 어렸을 적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버린 주부들이 뒤늦게나마 공부를 해보겠다는 열정으로 모였기 때문입니다.

저도 아버지의 병으로 인해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고등학교 진학에 대한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중학교를 갓 졸업하고 학교 대신 제가 다녀야 했던 곳은 공장이었습니다. 공부에 대한 미련을 접어가며 하루 종일 일을 하다보면 눈물이 앞을 가리는 날이 많았지만, 아버지의 병원비와 어린 동생들의 학비를 벌어야했기에 이를 악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결코 놓을 수 없었던 배움에 대한 미련은 세월이 흘러도 고스란히 가슴에 남아 마흔이 넘은 나이에 학교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자식들 앞에서, 친구들 앞에서 떳떳하지 못했던 학력 때문에 주눅이 들고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던 만큼,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주부들의 얼굴에는 진지함이 가득합니다. 수업시간은 쥐 죽은 듯 고요하고 눈빛은 초롱초롱하지요.

저는 고등학교 과정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갔지만 그곳에는 초등학교, 중학교 과정을 배우러 온 분들도 많더군요. 저처럼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분들이 많다는 걸 알고 처음에는 무척 놀랐습니다. 며칠 전 중학교 과정을 마친 분들이 졸업식을 했는데, 얼마나 울었는지 모두 눈이 발갛게 충혈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건망증도 심해지고 기억력도 퇴화하다보니 학생들도 힘이 들지만 무엇보다 선생님들의 노고가 큽니다. 이해를 시키기 위해 똑같은 설명을 수도 없이 해야 하니까요. 그러나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고 농담도 잘하는 선생님들 덕분에 공부하는 게 정말 재미있습니다. 학교에 앉아 있으면 세상사 고단함도 잊어버릴 만큼 늦은 공부를 하는 재미에 푹 빠져버렸거든요. 영어와 수학은 문법이며 공식을 다 잊어버려 헷갈리기 일쑤고 머리에 쥐가 나려고 하지만, 부족한 건 인터넷을 뒤져 보충해가며 하나하나 배워가는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쉬는 시간이면 왁자지껄한 아이들처럼 주부학생들도 시댁 이야기며 남편 이야기, 자식들 이야기로 수다를 떨기도 하지요.

학교에 다니기까지는 가족들의 동의와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살림도 해야 하고, 가족들도 돌봐야 하고, 각종 경조사 등 주부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만큼 바쁘지만 보람은 큽니다. 잠도 줄이고, 놀러가는 것도 자제하면서 못다 이룬 공부에 대한 꿈을 마음껏 펼쳐볼 생각으로 오늘도 힘차게 학교에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