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는 행복 양보의 미덕을 가르쳐주신 할머니 이승현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제법 세차게 내리던 지난 달 말일, 은행에 가게 되었습니다. 비도 오고 은행 업무가 특히 바쁜 월말이었지만 꼭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부득이하게 가게 되었던 거지요. 은행창구에서 번호표를 뽑아드니 대기인수가 35명이나 되더군요. 게다가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창구에는 여직원 두 명만이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내 차례가 오려면 언제가 될지 모를 일이었지요.

‘그래 이왕 기다리는 거 느긋하게 있어야지’ 생각하고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좀 전에 나와 함께 은행으로 들어온 아기 엄마가 눈에 띄었습니다. 한 아이는 업고, 한 아이는 걸리고. 나도 아이 둘을 키우는 입장에서 이 비에 집을 나서기가 얼마나 막막했을까 생각하니 젊은 엄마가 안쓰러웠습니다. 이렇게 아이와 엄마의 행동을 보며 20여 분쯤을 기다렸을까?

갑갑해진 아이는 은행 안을 마구 뛰어다니며 우산대에 꽂힌 우산을 이것저것 뽑아들고 다니다 야단맞기를 여러 차례, 결국은 엄마에게 엉덩이를 몇 대 맞고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형이 울자 등에 있던 작은 아이도 덩달아 울고…. 아기 엄마는 아이들을 달래느라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나와 함께 들어왔기 때문에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할 텐데 아기 엄마보다 내 마음이 더 급해졌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새댁, 다음이 내 번호야. 먼저 하고 가”하면서 번호표를 내미는 분이 계셨습니다. 일흔이 가까워 보이는 할머니. 아기 엄마가 괜찮다며 사양하자 “애가 갑갑해서 그러는 모양이니 어서 하고 나가봐”하시는 거였습니다.

아기 엄마는 일을 마치고 할머니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은행 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꼬마를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러고도 30분을 더 기다려서야 볼 일을 마친 할머니는 우산을 쓰고 지팡이를 짚고 은행 문을 나서셨습니다.

나는 그날 한 시간이 넘게 내 순서를 기다렸지만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집에 가봐야 할 일도 없는 걸”하시며 건넨 할머니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무엇인가를 잊고 살아가는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