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는 행복 따스한 추억을 만들어주신 어머니, 고맙습니다 박인자


어머니, 그 동안 별 일없이 잘 계시는 지요. 저희 가족은 어머니의 염려 덕에 별 탈 없이 잘 있답니다. 두 시간 정도면 찾아가 뵐 수 있는데도 살다보니 그게 그리 쉽지 않네요. 요즘은 둘째까지 가져 더 힘이 들고요.

어머니, 오늘 꽃밭 뒤쪽을 보니 옥수수가 한 뼘 정도 올라왔네요. 지난 번 아이랑 같이 심었는데 며칠 내린 비 탓인지 제법 키가 자랐어요. 저는 해마다 꽃밭 한 켠에 옥수수를 심는답니다. 왜냐하면 옥수수를 먹을 때마다 어머니가 생각나고, 그 시절 추억이 떠올라 더 없이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예전 옥수수수염이 붉게 나올 때나 거뭇거뭇 말라비틀어질 때면 솔방울이 인형이라며 옥수수 수염으로 머리를 만들어 놀았지요. 그리고 저녁 때 아버지께서 소죽을 끓이시고 나면 저는 긴 막대에 옥수수를 꽂아 옥수수를 구어 먹었죠.

여름밤이면 우리 가족은 멍석 위에 빙 둘러앉아 삶은 옥수수를 먹었지요. 따끈따끈한 옥수수를 후후 불어가며 먹는 맛은 참 맛있었습니다. 좀 식으면 쫀득쫀득한 맛이 참 담백했고요. 언니들과 저는 손으로 떼어 한입에 탁 털어 넣기도 하고, 오빠는 하늘을 향해 높이 던졌다가 받아먹기도 하고….

다 먹은 옥수수는 햇볕에 잘 말렸다가 긴 막대를 꽂아 등이 가려울 때 등 긁기로 사용하곤 했었죠. 옥수수 등 긁기로 가려운 곳을 쓱쓱 문지르면 아프지도 않고 얼마나 시원하던지. 그런데요 어머니, 아이한테 옥수수로 등을 긁었다고 하니까 까르르 웃으며 무지 아팠겠다고 하던데요. 아마도 믿을 수 없다는 눈치입니다.

지금도 눈에 선해요. 늦여름 굵은 알이 잘 여문 것으로 다음 해 씨앗을 남겼잖아요. 처마 밑이나 흙벽에 옥수수를 한 움큼 묶어 보관했는데, 가을비가 오거나 눈이 내릴 때 보이는 그 옥수수 묶음과 주변 풍경은 얼마나 운치 있어 보였는지 모릅니다.

먹거리가 별로 없었던 그 시절, 겨울날 옥수수 튀밥은 정말 맛있는 간식거리였지요. 빙글빙글 뻥튀기 기계를 돌리다 철사망에서 ‘뻥’ 하고 튀겨져 나오는 옥수수 튀밥은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습니다. ‘뻥!’ 소리가 나면 아이들은 일제히 귀를 막았던 손을 풀고 허연 연기 속으로 들어가 여기저기 흩어진 옥수수 튀밥 줍기에 바빴지요. 그러고 보니 참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시절 제 나이 정도 되시던 어머니는 이젠 틀니가 없으면 제대로 진지도 못 드시니 말예요. 항상 어머니께 잘해 드려야지 하면서도 그저 말뿐이네요. 어머니,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저에게 이렇게 따스한 추억을 만들어 주셔서 고마워요. 그 추억으로 인해 제 가슴은 언제나 풍요롭고 부자가 된 느낌이랍니다.

지금은 저희가 사는 것이 많이 힘들지만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 어머니가 주신 추억처럼 저희도 어머니께 노년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드리고 싶습니다. 어머니 그때까지 아주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어머니, 밤이 깊었어요. 항상 건강하세요.

여름이 익어 가는 날 막내 딸 인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