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는 행복 거리의 늙은 악사 김기용



그날도 늙은 악사는 아코디언을 메고 종로로 갔다. 수많은 인파로 넘실대는 거리의 한 모퉁이에서 세월에 묻혀 있던 처량한 노래를 한 장 한 장 들춰내어 들려 준다.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은 무심히 그 늙은 악사 앞을 지나친다. 어떤 이는 때묻은 동전 몇 개를 던져놓고 가고, 어떤 이는 지폐 한 장을 놓고 가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인파에 쓸려 가고 쓸려 온다.
늙은 악사는 돈벌이나 구걸을 위해 길에서 흘러간 노래를 연주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늙은 악사는 아코디언 연주가 좋고 사람들이 좋아서 도시의 거리로 나간다. 그는 관악산 근처에 있는 낡은 집에서 살고 있다. 그는 아침마다 산에 올라 아코디언 연습을 한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오래 전 신림동에 살 때, 이른 아침에 집 근처 산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약수터 앞 바위에 앉아 아코디언 연주를 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면서부터였다. 며칠 후 나는 인사동에 가기 위해 종로에서 버스를 내려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었다. 길을 건너 무심히 인사동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향해 걸어가다가 어느 옷가게 앞에서 아코디언 연주를 하는 노인을 보게 되었다. 혼잡스러운 가운데 가슴을 파고드는 구슬픈 아코디언 선율이 나의 귀를 잡아끌었다. 순간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그 늙은 악사는 내가 며칠 전에 집 근처 산에서 아침마다 보았던 그 아코디언 연주자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인사동에 들렀다가 햇살이 저물어갈 무렵,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에 그 옷가게 앞을 지나다보니 그는 어디론가 떠나고 없었다.

다음날 동네 뒷산에 올라갔다가 약수터 쪽으로 내려오는데 아코디언 연주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약수터로 내려가 그 늙은 악사에게 인사를 건네며 어제 종로에서의 일을 이야기하였다. 그날 이후로 늙은 악사와 약수터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고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노인이 길거리에 나가 아코디언 연주를 하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돈이 들어오면 빵과 우유를 사서 해질 무렵에 서울역 지하도의 노숙자들에게 나눠 주고 귀가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신림동을 떠나 몇 번에 걸쳐 이사를 하면서 몇 년의 세월이 아코디언 선율처럼 아련하게 지나갔다. 그리고 아직도 도시에서는 노숙자들이 끊임없이 늘어가는 어둡고 어려운 시대 속에서, 나는 그 늙은 악사의 이야기를 좀더 오랫동안 마음 속에 담아두고 기억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