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는 행복 세상에서 가장 긴 이별 최윤정


(1)
모처럼 아이를 맡기고 약속 장소가 있는 시내로 나가본다. 제목도 가사도 잘 모르는 최신가요의 쿵짝쿵짝 하는 리듬에 몸과 마음이 괜시리 설렌다.
동대문운동장에서였다. 그 분들을 본 것은…. 환승역이 얼마나 혼잡한지는 모두 다 알 것이다. 함께 한 동행도 순간적으로 놓치기가 쉬운 곳이 그런 곳이다.
정말 청학동에서 사실 것 같은 차림의 할아버지는 뛰는 것도 아니고 걷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보폭으로 지하철에 올라 탔다. 문이 막 닫히려는 순간, 한 할머니가 보따리를 머리에 인 채 걸어오고 있었다. 그제서야 할아버지는 빨리 오라고 손짓을 했지만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두 분의 표정은 차마 볼 수 없을만치 난색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전철을 처음 타 보신 듯했다. 흔들리는 전철 안에서 할아버지는 굳게 닫힌 문을 부여잡고 “아휴, 아휴” 하며 할머니쪽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 서 있던 사람들이 “할아버지 걱정마세요. 다음 차 금방 오니까 그 차 기다렸다 타시면 됩니다”라고 방법을 말씀드렸지만 할아버지는 꼭 아이 잃어버린 부모처럼 망연자실한 표정만 지을 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거의 듣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약속시간이 임박해서 그 다음 상황은 지켜볼 수 없었지만 내내 두 분의 해후가 궁금했다. 젊은 사람들은 일행이 못 타면 다음 역을 가리키며 기다리라는 입모양을 하고 웃는다. 하지만 그 노인 부부의 이별은 6.25 때 헤어진 가족의 표정이 저렇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2)
아버지의 병환은 3년 동안 열 번이 넘는 입퇴원을 할 정도로 나았다 싶으면 또 악화되기를 거듭했다. 처음에는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한 걸음에 달려 가던 가족이었지만 횟수가 거듭되면서 차츰 아버지의 상태보다 이번에는 병원비가 얼마나 나올까 하는 걱정이 앞서곤 했다.
아버지가 병원에 계실 때마다 자식들이 돌아가면서 가 본다고는 했지만 역시 제일 큰 간호는 엄마의 몫이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환부를 드러내기를 싫어하기도 하셨지만 엄마만 옆에 계시면 갓 태어난 어린 아가들이 엄마 품에서 안정이 되듯 아버지도 엄마 곁에서만 마음 편하게 수면을 취하셨다.
상태가 악화되면서 처음으로 장례 이야기도 나왔다. 엄마는 마음을 비웠다면서 “너무 아프지 말고 떠나는 게 모두에게 좋지 않겠냐”고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엄마가 많이 지치셨구나’ 생각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기라도 하신 것처럼 얼마 후 아버지는 조용히 세상을 떠나셨다. 옛날 말 하나 안 틀리게 ‘살아 계실 제 효도할 걸…’, 돌아가시고 나니 못해 드린 것이 가슴에 못처럼 박혔다.

(3)
우리 자식들은 우리들 생각만 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부재가 주는 슬픔만 깨닫고 있었다. 배우자와 이별하신 엄마의 속은 아무도 헤아리지 못했다. 엄마는 늘 강하고 힘세고 어디가서도 지고 울고 들어오는 분이 아니셨기에, 그리고 엄마보다 아버지의 연세가 많으셨기에 우리 자식들은 다 자기 못한 것만 후회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어느날 엄마가 집을 정리하고 싶다고 하셨다. 아직은 혼자 살고 싶지만 집이 너무 크니 작은 집으로 옮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사에 대한 말이 나오면서 그 집에 살던 시절 얘기를 꺼내게 되었다.
아버지가 가장 힘들게 구하신 집, 많은 대출을 언제 갚나 했더니 다 갚으신 뒤 이제는 발 뻗고 자도 된다라고 허허 웃으시던 모습, 아침이면 늘 7시 뉴스의 볼륨을 얼마나 크게 트시는지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고 항의를 하면 “이제 일어나야지, 이 잠꾸러기야.” 하시며 세상에서 가장 인자하신 얼굴로 바라보시던 그 모습…,
그때 엄마는 갑자기 일어서시며 집에 가겠다고 하셨다. 처음으로 엄마의 눈물을 보았다. 엄마는 소리도 못 내고 통곡하고 계셨다.
“내가 너무 아버지를 혼자 두었어. 혼자 두었어. 잘해 드려야 하는 건데….”
우리는 엄마와 끌어안고 정말 원없이 엉엉 울었다. 하루 종일 운다고 해도 다시 돌아올 아버지가 아니지만 아버지의 부재보다 배우자의 부재가 더 큰 아픔이라는 것을 엄마의 눈물을 보고 조금이나마, 아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미우나 고우나, 잘해 주든 못해 주든 한 가정의 안주인과 바깥주인으로 아이들을 함께 키워 나갔던 그 길고 긴 세월 동안 아버지와 어머니란 사람들은 사랑보다 더 강한,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끈끈하게 이어져 있는 것 같다.

(4)
나는 부부를 나의 반쪽이라고 표현하는 말이 참 마음에 든다.
너무 예쁜 자식도 좋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나 독립할 것이며, 부모도 귀하지만 내가 그분들보다 더 많이 사랑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영겁이란 길고 긴 세월을 지나 만나게 되는 것이 부부의 인연이란다. 엄마의 반쪽이 지금 옆에 없다고 엄마가 반쪽이 되어 전 같지 않은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시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이 세상에서야 제일 긴 이별이겠지만 살아온 긴 추억을 더듬으면서 곱게 웃으실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글쓴이 최윤정은 서울 강동구 둔촌2동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