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는 행복 노점상 아줌마의 선행 유재범


몇 해 전 겨울, 잦은 출장으로 서울과 대전을 오고가야 될 일이 있었다. 아침 일찍 대전을 출발하여 저녁 늦게 다시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고행의 연속이었다.

대전역 광장을 오고갈 때마다 나의 눈에 비쳐지는 것은 초점 흐린 눈빛과 취기에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던 노숙자 아저씨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유독 연신 무어라 중얼대면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붙잡고 말을 걸려고 했던 아저씨는 꽤나 유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느날, 저녁 늦게 역에 도착하여 광장 플랫폼에서 잠시 지친 몸을 쉬고자 벤치에 앉아 음료수 한 캔과 담배 한 개비를 물고자 하는 찰나, 바로 그 문제의 아저씨가 나한테 접근했다. 담배 좀 빌릴 수 없겠냐고 해서 선뜻 담배 한 개비를 건네 주긴 했지만, 또 그 특유의 횡설수설을 나한테 늘어놓는 것이었다.

며칠 동안 씻지 않았는지 몸에선 온통 악취가 풍기고, 술 냄새까지 풍기는 통에 안그래도 피곤한 나는 도저히 옆에서 말상대가 되어 주긴 힘들겠다 싶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딴곳으로 옮겨 앉았다. 그 아저씨는 다시 주변의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접근하며 말을 걸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또 내가 있는 곳까지 접근하고 있었다.
서둘러 자리를 뜨려는데, 근처 노점의 한 아주머니께서 그 아저씨께 군밤과 구운 어포를 한 봉지 주시더니 몇 분 정도 말상대까지 되어 주는 것이 아닌가?

그 날 이후로도, 몇번 더 그 노점상 아주머니의 모습은 내 눈에 비쳐졌다. 비단 그 문제의 아저씨 말고도 다른 노숙자 아저씨들에게도 요기할 것을 갖다 주면서 말상대를 해 주는 모습이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자신의 처지도 넉넉치 못하면서 더 불행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선행을 베푸는 모습에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만 했다. 사회의 음지에서 고통받고 슬퍼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한번이라도 경청하고, 그들의 모습을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는지 후회스럽기만 했다.

몇년이 지난 지금, 나는 또 다시 그때처럼 잦은 출장으로 역 주변을 지나쳐가게 된다. 주변 환경 개선 작업이 이루어져서 그때의 그 노숙자 아저씨도, 그리고 나한테 소중한 교훈을 주셨던 노점상 아주머니의 모습도 이제는 찾아볼래야 볼 수가 없다.

스산한 겨울바람이 불 때면 그 분들의 모습이 간절히 생각날 것 같다.

글쓴이 유재범은 대전 유성구 문지동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