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는 행복 졸업식 황득실 外


학장님의 초콜릿

글쓴이 황득실은 경기도 군포시에 살고 있는 주부이다.
10년전 추운 겨울날 남편의 졸업식이 있었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나도 직장에 다니고 있었지만 남편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힘들고 어렵게 다녔던 야간 대학생활, 몹시도 추운 날에 야학을 한답시고 고생을 많이 했답니다. 드디어 영광의 졸업장을 받는다고 하기에 여동생과 함께 졸업식에 축하하러 갔었답니다.
그때 졸업식 날, 서울의 한복판에는 축하의 꽃다발 아저씨들이 줄을 서서 꽃을 팔며 졸업식의 분위기는 무르익었답니다. 남편의 대학교 드디어 시간이 다 되어서 참석을 했는데, 대학 강당에는 자리에 빽빽하게 앉아 있었고 학부형들도 강당 밖에까지 늘어져 있었답니다. 한참 졸업식이 진행될 때 학장님의 인사말이 있었어요. 대학교 학장님은 나이가 많으신데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동안 졸업의 축사를 하고 계셨어요. 사람들은 모두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따분했지만 그래도 한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계셨습니다.
“ 졸업생 여러분! 저는 오늘 올해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 줄 초콜릿을 준비해 두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졸업생 여러분! 왜 초콜릿이냐고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가벼운 이유는 여러분이 4년 동안 지냈던 이곳, 캠퍼스와의 이별, 그리고 정든 제자와 교수와의 이별, 이런 인연 중에서 달콤했던 것만 기억해 달라는 부탁에서입니다.
그럼 무거운 이유도 있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학창 시절처럼 그냥 이유 없이도 달콤했던 때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지막 달콤한 맛을 즐기시라는 뜻입니다. 이제부터는 여러분 스스로가 여러분의 인생을 달콤하게 만들지 않으면 어디에서도 달콤한 맛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시라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초콜릿처럼 달콤한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면 내 인생은 여러분 인생만큼이나 달콤한 것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학장님의 졸업식 인사말이 끝나자 식장 안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화답을 했고 졸업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학장님의 말씀을 뇌리에 새기고 있었지요.
인생에는 초콜릿처럼 달콤함도 있지만 언젠가는 어려운 세상도 있으니 잘 준비하라는 그 말씀, 지금도 그 졸업식장의 그 장면이 생각납니다. 평생 동안 초콜릿 같은 마음으로 즐긴다면 얼마나 기쁘고 좋겠습니까만, 나는 가끔씩 세상을 살아가는 어려움이 따르면 남편의 졸업식장에서 떠올린 학장님의 그 말씀을 되새겨 본답니다. 연인의 향기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그날까지 학장님의 의미있는 그 이야기를 자주 자주 느껴 봅니다. 정말 초콜릿의 그 달콤함처럼 살아야 하는데 세상 사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군요. 더욱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졸업장이 없는 이유

글쓴이 김정애는 부산 동래구에 살고 있다
졸업을 떠올리면 나는 참 유감이 많은 사람입니다. 최고 학부까지 참으로 여러 번의 졸업을 맞이했지만 남아 있는 졸업장이 하나도 없다면 믿으시겠어요? 전쟁을 치른 것도 아니고, 화재로 타서 없어진 것도 아니고, 졸업식에도 한번 빠짐이 없이 참석했지만 어찌하다 보니 졸업장이 하나도 없네요.
가만 생각해 보니 초등학교 때는 전학 문제로,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돈이 없어서 받지 못했다가 나중에 찾으러 가니 하나도 남은 것이 없어서구요. 대학교 때는 3학년 때 시집가는 바람에 졸업에 맞추어 만삭이 되어서 참석치 못했다가 그럭저럭 잃어버리고 말았지요. 조금은 가슴이 아픈 사연임에도 불구하고 우습기도 하고 별일도 다 있다 싶으네요.
또하나의 유감은, 가족들 중 누구도 그 여러 번의 졸업식에 한 번도 오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물론 다 먹고 살기 어려운 때였다는 것을 알기에 섭섭하지는 않습니다. 4남 3녀 중 여섯째인 내가 그랬으니 언니 오빠들 다 말할 것 없지요. 우리 때는 다들 어렵고 바빠서 나와 같은 이유로 졸업에 대한 유감을 가진 사람이 많을 거예요.
이제 나에게 하나의 졸업식이 남았네요. 50줄에 들어선 나에게 인생의 졸업식은 오겠지요. 그 졸업식에 누가 올까 안 올까 걱정은 않습니다. 틀림없이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오실 거구요. 조금은 울어도 주시겠지요.
그러나 마지막 졸업에도 해결할 수 없는 섭섭함이 남네요. 인생 졸업식에서도 역시 나는 졸업장은 받지 못한다는 것…. 조금은 슬퍼야 하는데 웃음이 입 밖으로 삐져 나오는 것을 보면 인생 졸업이 아직 멀어 실감이 안 나서인가 봐요. 후훗,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빛바랜 졸업앨범을 펼쳐들고

글쓴이 유재범은 대전 중구에 살고 있다
오늘 문득 책장서랍을 정리하다가 문득 빛바랜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발견했다. 1988년에 출간된 너덜너덜한 노란 마분지의 겉표지는 15년의 세월이 결코 짧지 않았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졸업앨범은 마치 유행 지난 월간 잡지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졸업후 얼마간은 유심히 정독하다가 이내 책장 서랍 한켠에 쳐박혀 뽀얀 먼지만 쌓이게 되는 비극적인 운명…. 그리고 한참의 세월이 지난 후에 다시 한번 사람의 손길을 반길 수밖에 없는 그런 신세 말이다. 오늘의 내가 초등학교 앨범을 펴 보고 지난날을 회상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와서 보니 선생님이나 아이들이나 촌스럽기 짝이 없는 게 절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지금도 간혹 길거리를 지나가다 만나는 얼굴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같은 하늘아래 어디서 무얼 하는지도 모르는 그저 내 인생에 잠시 스쳐지나가는 영화 속 엑스트라와 같은 운명이라 생각하니 삶이 서글퍼지기도 한다.
아련한 추억 속에 빠질 낭만도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 보지도 못할 정도로 도대체 내 인생에 있어 무엇이 그리도 나에게 삶의 분주함을 재촉한 것인지, 그리고 그런 마음의 여유조차 주지 못한 것인지 후회스러울 따름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학창시절 참으로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그저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 앞에 무상하게 지나쳐버린 순간순간들이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찰나이나마 수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가졌고 좋은 시간을 보냈었기에 헛된 시절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젠 직장인으로서 하루하루 힘겨운 인생 항로를 향해가고 있는 내 자신에게 학창 시절은 그리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고, 그 시절을 반추해볼 때 그때만큼 즐거운 시간이 내 앞으로의 인생에서 찾아올 수 있을지도 간절할 뿐이다.
학창 시절 수많은 친구들과 웃으며 만나고 울며 헤어지기를 반복했듯이 앞으로 인생의 운명 속에 또 얼마나 많은 만남과 이별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지….
이제 다시는 겪어보고 싶어도 겪을 수 없는 학창 시절의 졸업식을 다시금 그리워해 본다. 빛바래진 15년 전 초등학교 앨범을 접으면서 말이다.



아버지와 졸업식

글쓴이 홍희자는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살고 있다
사각모를 쓰고 찡그린 얼굴로 서 있는 내 양옆에 남편과 부모님이 들러리 해 준 졸업사진을 보면 지금도 만감이 교차한다. 그 사진은 방송통신대학 학사과정을 마치고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에서 가졌던 졸업식 사진이다. 축하해 주기 위해 상경하신 부모님과 그때에는 애인 사이이던 지금의 남편이 후레지아 꽃다발을 건네 주어 그것을 안고서 찍은 사진인데, 왜 그리 분위기가 우울한지…. 지금 생각해 보면 괴롭고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내 나이 열여덟에 친정엄마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지셨다. 마지막으로 내 이름을 힘겹게 몇번인가 부르시다간 그대로 아무런 유언도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나셨는데, 올망졸망한 동생 세 명이 있었고 막내는 겨우 네 살밖에 안 되었다.
갑작스런 엄마의 죽음으로 졸지에 큰딸인 나는 엄마 역할을 하게 되었고, 대학 진학의 꿈도 자동적으로 무산되었다. 한창 예민한 시절에 엄마를 잃어버리고 아무것도 모르던 철없던 내가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며 아버지의 출근 준비를 해 주어야 하는 나날에다가 엄마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으로 내 심장은 조금씩 타들어 가고 있었다. 군수 사모님께서 고급 스웨터를 선물로 사 가지고 와서 내 손을 잡고 동생들을 잘 돌봐야 한다고 하실 때에 나도 모르게 굵은 눈물방울을 흘려 찾아온 분들을 민망하게 한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버지는 직장생활을 해 보면 어떻겠느냐며 공무원 시험 원서를 내놓으셨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시기에 공무원은 싫다 하며 보기를 꺼려했지만 시험이라도 한번 보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시험은 보았는데 결과는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이었다.
아버지의 원에 의하여 들어간 직장에 다니면서 배움에 대한 허전함은 늘 나의 가슴 한곁에 자리하고 있어 당시에 주경야독을 하기에 적당한 방송대학이 있어 입학하였다.
오로지 직장 생활과 대학 생활에만 전념하여 괜찮은 성적으로 졸업을 하게 되었기에 졸업식장에 아버지께서 상경하셔서 기념사진을 찍은 것이다.
동생들 셋은 모두 아버지께서 명문 정규대학을 보내 주셔서 학비 걱정없이 자신들의 젊음을 마음껏 발산하면서 대학 생활을 하였고, 본인들 나름대로 공부도 열심히 하여 사회에 무난히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는 큰딸인 나에게는 늘 미안해 하면서 스스로 혼자 공부하여 대학 졸업을 한 나를 대견스러워 하였던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생각과는 다르게 늘 젊은 날의 나의 소중한 추억과 꿈을 내 의지와는 다르게 빼앗겼다는 생각에 때로는 동생들을 부러워하며 심통을 부리기도 하였던 기억이 있는데, 동생들도 그때마다 미안해 하는 눈치인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더욱이 그 동안에 아버지는 재혼하셨고 그 문제 때문에 아버지와의 사이가 멀어지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아버지께서는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객지에서 직장 생활하는 내가 걱정이 되어 간간이 올라오셔서 생활을 살펴보시고 전화로 안부를 묻곤 하셨다. 무엇보다도 큰딸인 내가 마음에 걸려 노심초사하였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지만 모른 척 외면하였던 나 때문에 속상해 하셨던 것도 알고 있다.
그런 아버지이기에 방송대학을 졸업한다니까 가장 기뻐해 주셨다. 그리고 아침 일찍 올라와 커다란 꽃다발을 안겨주면서 고생했다고 등을 두드려 주시는데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지금은 공직에서 은퇴하시어 노년을 행복하게 지내고 계시는 아버지에게 그 당시 부족한 딸이라서 무던히도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던 여러가지 기억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온다. 아버지께서 재혼하신 어머니와 부디 건강하고 화목하게 살아가시도록 못다한 효도를 하리라 다짐한다.


그리운 졸업식

글쓴이 우정렬은 부산 혜광고등학교 교사이다
교직에 몸담은 지 어언 24년째. ‘인간은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만난다’는 말처럼 스승과 제자 간에도 회자정리의 운명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지난 2월에도 아쉬움과 섭섭함을 남긴 채 400여 명의 학생들이 정든 교정을 떠났다. 엊그저께 밤송이 머리의 앳된 모습으로 입학했던 그들이 어느새 여드름이 생기고 콧수염이 자라 제법 어른스럽고 의젓한 모습으로 졸업을 하게 되었으니 새삼 세월의 덧없음을 느끼게 된다.
예전에는 교정을 떠나는 학생들이 못내 아쉬워하며 울음바다를 이루었고 마지막 떠나는 교정을 뒤돌아보곤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또 담임 선생님과 헤어지기가 아쉬워 사진 한 장이라도 더 찍으려고 우르르 몰려들었다. 식장에서 재학생의 송사와 답사가 오갈 때는 울음의 절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요즘은 졸업식의 간소화 때문인지 송사와 답사조차 없고 수상식이 졸업식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교장 선생님의 회고사 때도 귀담아 듣기보다는 옆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며 장난을 치기도 한다. 졸업식 노래에도 별로 석별의 정이 담기지 않는다.
사회분위기나 가치관이 물질만능주의와 극도의 이기주의에 젖어버린 탓일까? 고교 생활이 그저 지나가는 학업의 한 단계에 불과하다는 인상만 남겨줄 뿐이었다. 하기야 요즘 졸업생들에게 고교 졸업이란 학업의 마침이 아니라 다음 단계로의 출발을 의미하니 고교 생활의 마침이 크게 아쉽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선생님과 사진 한 장 찍어 기념으로 남기려는 학생도 드물고, 감사의 말 한 마디조차 없이 식이 끝나자마자 휑하니 돌아서는 학부모들을 볼 때 안타깝기 그지없으며 교직에 대한 회의와 서글픔마저 든다.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인사 한 마디라도 하고 갔더라면 덜 서운했을 텐데….
하지만 학생과 학부모만 탓할 수도 없다. 교사들은 과연 최선을 다해 제자를 가르치고 지도해 왔는지 곰곰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교사가 진정한 사표로서 학생을 가르치고 이끌었다면 3년 동안 보살피고 인도해 주신 스승께 감사의 표시와 함께 아쉬움의 정을 나누지 않았을까? 사제간에 뜨거운 정이 흐르고 이별의 눈물이 물바다를 이루었던 옛 졸업식 광경을 되찾았으면 한다.

그동안 많은 독자들께서 ‘나누는 행복’의 주제를 자유롭게 해 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따라 다음 호부터는 주제를 따로 드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나누는 행복’ 지면에서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보내 주십시오. 더욱 다양한 독자 여러분의 행복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