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사람들 스물보다 서른 外 이선화 外


여름의 한가운데, 2003년의 가운데, 그리고 내 삶의 한가운데. 가끔씩 한숨을 쉬거나 주변을 돌이켜보고 스스로 위안하고 싶을 때가 있다. 연말이라든가 지금처럼 20대의 마지막이라는 시점이거나 그리고 오늘처럼 아주 더디고 습한 무더위와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이 많은 하루가 겨우겨우 끝났을 때.
영원히 생기 넘치는 20대일 것만 같았던 스무 살에는 30대의 사람들을 보면 정말 사는 게 지루하고 재미없어 보였다. 그런데 어느새 그 나이가 되어버린 지금, 난 내가 20대 초반이었을 때만큼이나 아직도 활기차고 삶이 흥미롭고 보다 더 여유로워졌다고 생각한다. 의문이 생기는 건 내가 40대, 50대가 되어서도 삶이 흥미롭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99년 처음 병원 생활을 시작했던 중환자실에서의 6개월은 짧지만 너무도 길었던 터널 같은 암울한 기억들이 있다. 새로 시작한 병원 생활은 기대와는 달리 간경화 아니면 간암 환자 등 항상 중환자들로 넘쳐났다. 처음 겪은 환자의 심폐소생술은 손쓸 수 없을 정도의 식도정맥류출혈로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아직도 생생한, 피비린내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 밤이었다. 나는 이 일로 인해 내가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피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질 때까지 버텨보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아직도 여기는 출혈이 일상적이다. 난 아직도 피가 두렵지만 예전의 공포심 자리엔 익숙함이 대신한다. 4년이 지난 오늘도 나는 끊임없이 인내심의 실험대에 올려져 있다.
진통제나 어떤 처방으로도 해결이 안되는 시간이 3시간 이상 지속되자 정말 나도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숨을 고르고 환자가 사랑하는 내 남편이라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얼마 전 사이버교육에서 배운 고객감동에 대해서 제일 기억이 났던 부분인 까탈스러운 고객대하기와 인간적으로 대하기를 떠올린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예민하고 까탈스럽지만 사랑하는 내 가족을 간호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스트레스의 강도가 조금은 낮아지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환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4년 동안 나는 동료와 병원사람들과 환자들을 통해서 강해지고 여유로워졌고,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법을 배웠다. 배고파 죽을 것 같다고 애원하는 환자와 금식을 해야 하는 절대적인 처방 사이에, 배 터져 죽을 것 같아 이뇨제를 원하는 환자와 신독성으로 인해 절대 처방불가의 딜레마의 한가운데 두 달전 신혼 여행지였던 피지섬의 초록빛 바다로 당장 달려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많다. 하지만 내게 피지섬이 평화로운 안식처가 될 수 있는 것은 지금의 현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꿀맛 같은 휴일은 바쁘고 정신없는 일의 선물이 아닐는지.
가끔 우리 병동 식구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퇴근할 수 있게 출근해 줘서 정말 고맙고, 일 못한다고 혼냈는데 그 다음날 밝은 얼굴로 인사해 줘서 정말 고맙다고. 내가 스무 살일 때만큼 여전히 삶이 지루하지 않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글쓴이 이선화는 서울아산병원 간호사이다.


맑은 하늘에 높게 솟아있는 전나무 숲길이 있어 좋은 내소사 입구. 나무의 향기와 고요한 산사의 적막함이 어우러진 그곳 작은 암자에서 우리 모두는 선한 마음의 소유자가 됩니다. 내가 추구하는 모든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고집멸도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순간부터일 것입니다.
절 앞 사천왕의 부릅뜬 눈에서 사람이기에 느끼는 나약함과 원죄에 대한 두려움이 네 탓이 아닌 나의 잘못에 대한 상념으로 나를 위축시킵니다. 마당에 있는 보리수나무와 대웅전 안 부처님의 잔잔한 미소는 현세에 직면한 고통과 잡념을 한순간 떨쳐 버리는 무아의 세계로 나를 이끕니다. 철학적 사고를 모르는 촌부의 머리 속에서도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떠오를 듯 싶은 순간입니다.
산사의 적막함을 안고 내려와 해변길 따라 굽이쳐 가다 보면 추억이 어릴 만한 서해안의 붉은 낙조와 아름다운 카페가 눈앞에 나타납니다. 자아의 내면에 있는 부드러움과 붉은 색조의 사랑이 마음 속 가득할 때 나는 그곳에서 여유와 아늑함을 느껴봅니다. 갑자기 불러보고 싶은 나의 아버지, 어머니…. 나의 내면에 있는 그런 세계에 영영 안주하고 싶어집니다.
돌아오는 길, 열린 차창 사이로 바닷내음 한 움큼 맡으면서 ‘아! 이것이 아름다운 삶이구나’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이제, 공동체의 가치관을 적립하고 현실세계에 있어야 할 때입니다.

글쓴이 김중렬은 정읍아산병원 교육수련부장 겸 외과 과장이다.


우리 모두
통일의 계단에 올라가 보아요.

왼쪽에는 남한이
오른쪽에는 북한이

우리 모두가
한발 한발 올라간다면

영광의 손을
맞잡을 수 있어요.

빨리
올라가요.

휴전선을 자를 큰 가위가
우리 땅을 붙일 큰 풀이
우리를
부르고 있어요.

빨리 와서 잘라달라고 붙여달라고
가위와 풀이 우리를 불러요.

아아,
조금만 힘을 내요.

정상이 보여요.
통일을 이루어낼 우리가 보여요.

최강의 코리아,
우리는 해낼 수 있어요.

조금만 더 빨리 올라가면
7천만이 하나 될 수 있어요.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우리, 힘차게 올라가 보아요

시를 쓴 초등학교 5학년 김하은은 서울아산병원 원무팀 최순덕 과장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