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사람들 재단 사람들 이지훈 外


아름다운 착각

불과 1년밖에 지나지 않은 고등학교 시절, 여고 시절 누구나 한번쯤 꿈꿔 보았을 법한 이야기를 짧게나마 해볼까 한다. 아마도 이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게 된다면, 당신 역시 아름다운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이 아닐까 감히 예상해 본다.

노래 가사에서처럼, ‘네모난 교실에, 네모난 책상, 네모난 칠판에 네모난 태극기’, 거기에 얼굴마저 네모난 선생님이 침 튀겨가며 얘기하는 학교만 벗어나면 나에겐 지금보다 훨씬 멋지고 화려한 미래가 펼쳐져 있을 것만 같았다.

아침 6시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짧은 거리나마 앉아서 가 보겠다는 일념으로 한 덩치 하는 덩치발로 아이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자리잡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교문 앞에서 오늘은 뭐 또 걸릴 것 없나 싶어 명찰에 넥타이며 머리끈까지 일일이 재점검하는 것도 안녕이겠지?

거울을 볼 때마다 기분을 삭막하게 하는 새까만 머리카락, 오늘 아침 내 앞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의 윤기 흐르는 황금색 머릿결이 될 날도 머지 않았다. 쉬는 시간, 줄기차게 뛰어나가 까만 봉지에 한가득 사들고 온 간식거리에 나날이 늘어가는 뱃살과 허리살은 온데간데없이 미끈한 개미허리가 될 수 있을 거야.

고작 입어봐야 교복 빼고는 새파랗고 겨울이면 뼛속까지 시릴 만큼 얇고 촌스러운 체육복을 벗어 던지고, 5cm는 족히 커 보이는 명품 구두에, 다리 선 쭉 빠진 스커트 정장을 입고 거리를 활보해 볼까? 수업 시간, 쉬는 시간을 막론하고 옆에 친구와 마주앉아 짜 대던 여드름이 웬말이겠는가, 뽀송뽀송 솜털 같고 촉촉하게 물기 젖은 뽀얀 피부에 앵두 같은 입술, 거기에 금상첨화로 쌍꺼풀 엷게 진 눈으로 눈웃음 살짝 치면 나라고 남자친구 안 생기겠어?

또 친구 녀석들과 500원씩 걷어서 먹으러 다니던 포장마차 떡볶이 집에 들러서 자랑스럽게 1만 원짜리 내고 배불리 먹어 봐야겠다. 봄이면 산뜻한 남방에 고운 색 치마 걸치고 한 손에는 정숙해 보이도록 명작 소설 한 권 끼워들고 캠퍼스를 누벼 볼테야, 바람이 찰랑거리는 내 머릿결을 건드리고 지나갈 때의 기분은 과연 어떨까?

써 내려가자면 한이 없을 것만 같은 꿈 많고 하고 싶은 것 많던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이다. 지금 나는 이 글을 써 내려가면서 이렇게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섭섭함보다는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아니, 혼자서 크게 웃어 버렸다. 현재 나의 위치가 캠퍼스를 누비고 있는 대학생이 아닌 직장인의 자리이지만, 후회하거나 누군가를 원망하진 않으니까.

명품 구두에 쭉 빠진 다리 선을 걱정할 필요 없는 예쁜 유니폼을 입고 있는 내 모습. 거기에 쌍꺼풀 엷게 진 이쁜 눈은 아니지만 아픈 이들과 눈을 마주쳤을 때 편안하게 다가가 환하게 치아를 드러내며 웃을 수 있는 환한 미소를 가진 지금의 내 모습이 나는 더 맘에 든다.

글쓴이 이지훈은 보령아산병원 간호과 한방간호조무사이다.

보석을 발견하는 기쁨

아침 7시 30분! 아카데미에 들어서면서 이곳 저곳에 불을 밝힌다. 밤새 안녕한지? 별일은 없었는지? 한바퀴 둘러보고는 사무실 문을 연다. 바로 이곳-아산인재개발아카데미의 꿈터와 마음터, 샘터와 나눔터에서 우리 병원 식구들을 만나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그들이 보석임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나의 일이다.

그 중에 잊을 수 없는 만남 하나! 아카데미는 금년 7월에 탄생하였으니, 1998년은 동관 6층에서 교육을 하던 시절이었다. 9월 1일에 20명의 간호사가 우리 병원의 새 식구가 되었다. 여느 때와는 달리 Class Size가 작다 보니, 나는 그들과 훨씬 더 가깝게 만날 수 있었고,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 속에서 신입 직원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교육을 마치던 날! 그들은 내게 분홍빛 봉투를 하나 내밀었고, 그 안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스무 명 모두가 적어 놓은 사연들이 곱게 펼쳐져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그 작은 봉투를 간직하고 있었음은 너무도 당연한 일!

얼마 전부터 나는 우리 병원의 핵심 가치 공유를 위하여 운영하는 ‘잼터’(재미있는 일터의 줄임말) 가꾸기 과정의 강사로서 새로운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는데, 어느 날 참석자 명단에서 어떤 이름 하나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봤을까?

혹시나 하며 그 작은 봉투를 여니, 첫번째 사연의 주인공이 바로 그 이름이다. 꿈터에서 만난 그 간호사는 보기만 해도 병동에서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그런 모습- 우리 병원의 보석이었다.

보석을 발견하는 기쁨! 새로운 보석과의 빛나는 만남을 기대하며, 오늘도 나는 어김없이 어제와 같은 시각에 아카데미로 들어서고 있다.

글쓴이 현명준은 서울아산병원 인재개발지원팀장이다.

추억 많은 보성아산병원

나는 보성아산병원과 인연이 많다. 병원 옆에 있는 초등학교는 나의 모교다. 그리고 10년 가까이 이 병원에 근무하며 환자들과 기쁨과 슬픔을 같이 나누었다. 근무하면서 지금의 신랑을 만나 결혼도 했고, 아이도 병원에서 출산했다. 지금도 신랑이 병원에서 근무를 하고 있으니 그 인연은 뗄래야 뗄 수가 없을 것 같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다닐 때 보성아산병원이 개원했다. 어느새 세월이 지나 나는 두 자녀를 둔 학부형이 되었고, 보성아산병원은 24살이란 나이를 먹으면서 나이에 못지 않게 좋은 일을 많이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병원에 근무하던 그때 그 시절이 참으로 좋았던 것 같다. 등산회에 가입하여 등반도 했고, 영화도 보고, 지금의 남편을 따라 낚시도 다니고…. 그 중에 인상깊게 남는 것은 소나무 길을 걸으면서 사색을 하였던 것인데, 지금도 종종 가을에 떨어진 잎을 사뿐히 밟으며 그 길을 다닌다. 떨어진 소나무 잎을 밟으면서 걸을 때에는 마음이 편안함을 느낄 수가 있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기숙사에서 동료들과 라면에 먹지 못하는 술을 몇 잔 마시고는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렸던 일, 비가 오면 김치전을 만들어 먹었던 일들도 생각난다.

1989년 봄의 일도 생각난다. 휴가를 받고 후배 직원들과 함께 기분좋게 기차를 타고 배낭 여행을 떠났다. 1차 목적지인 진주에 도착하니 비가 억수로 내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고 있었다. 후배가 들어가자고 하는 방향을 바라보니 모텔이었다. 망설임 끝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배가 고파 우선 밥을 짓고 나서 김장용 김치로 찌개를 하는데 문쪽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주인 아주머니께서 우리 방에 들어오면서 누구 망하는 꼴을 보려고 이런 짓을 하냐며 다짜고짜 야단을 치면서 빨리 나가라고 하였다.
결국 나는 밥, 후배는 국 코펠을 들고 밖으로 나와 먹었던 일이 새삼스럽게 생각난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그 후배도 어떻게 지내는지 정말로 궁금하다.

글쓴이 송남숙은 보성아산병원 총무과 양동택 관리계장의 아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