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둣돌 댓잎 뱀장어 정호승



그는 어릴 때부터 남을 탓하기를 좋아했다. 잘 되는 일은 자기 탓이고 못 되는 일은 조상 탓이라더니, 그는 무슨 일이든 잘못되는 일이 있으면 꼭 다른 데에다 그 원인을 돌렸다.
처음 대학 입학시험에 떨어졌을 때에는 집안이 가난해서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 흔한 과외 한번 제대로 못해 봤기 때문에 재수생이 되었다고 가난한 부모를 원망했다. 대학에 들어가서 첫사랑에 실패했을 때에는 가난이 원수라고 생각했다. 시골 농투성이의 장남이라는 사실을 알고 여자가 자기를 떠나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후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중소기업에 취직했을 때에도, 승진에서 번번이 누락되었을 때에도, 아이들이 지지리 공부를 못할 때에도, 친구의 빚 보증을 섰다가 아파트까지 날려 버렸을 때에도, 그 모든 원인을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데에다 두었다.
그는 갈수록 고향과 부모형제를 싫어했으며, 자신의 환경과 처지를 한탄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불행한 일들만 연이어 일어났다. 아내가 자궁암으로 일찍이 세상을 떠났으며, 재혼한 여자마저도 남의 자식을 키우는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면서 그를 떠났다.
그는 세상에 자기만큼 불행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고 허구한날 술로 세월을 보냈다. 마치 인생을 포기한 사람 같았다.
그런 어느 날, 그는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민물고기에 관한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어린 뱀장어에 관한 것이었다. 그때 그는 어린 뱀장어에 관해 설명하는 어느 어류학자의 말을 듣고 자신을 크게 뉘우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아무리 불우한 환경에 처해 있다고 해도 그 환경이나 처지를 탓할 것이 못 됩니다. 이 어린 뱀장어를 한번 보십시오. 심해에서 갓 태어난 이 어린 뱀장어는 태어나자마자 부모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산란을 마치면 어미 뱀장어가 곧 죽어버리기 때문에, 어린 뱀장어만 살아서 난류를 따라 대륙 연안으로 2~3년에 걸쳐 긴 여행을 떠납니다. 이때 어린 뱀장어는 백색의 반 투명체로, 물의 중압에 눌려 모양이 댓잎과 같아지기 때문에 이를 댓잎뱀장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댓잎뱀장어는 깊은 바다 속에서 태어난 자신의 환경을 결코 탓하지 않습니다. 그 못 견딜 괴로움을 참아내면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찾아나갑니다. 온갖 고통을 다 견디고 차차 강어귀로 찾아들면서 몸이 볼록해지고 본격적인 뱀장어가 됩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어린 댓잎뱀장어처럼 꾸준히 스스로의 삶을 참고 견디고 전진하는 데에서 삶이 꽃피고 본격적인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글쓴이 정호승은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