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둣돌 여행 안도현


어느 깊은 산골짜기에 옹달샘이 하나 있습니다. 옹달샘은 산골짜기에서 모인 물방울들이 쉬었다가 가는 정거장 같은 곳입니다. 여기서 며칠 동안 쉬고 나서 물방울들은 또 먼 길을 떠나야 합니다.
"나는 이곳이 맑고 시원해서 좋은데..."
그 중에는 떠나기 싫어하는 물방울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오래 머무를 순 없단다."
옹달샘이 하는 일 중의 하나는 그런 물방울을 달래는 일이었습니다.
"옹달샘의 물은 언제나 맑고 시원하지. 그것은 누군가 고여 있지 않고 자꾸 떠나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나도 곧 떠나야 한다는 말인가요?"
"이 세상의 모든 물은 서로 손을 잡고 있단다. 물은 이 세상을 돌고 돌지. 우리는 틀림없이 또 만날 때가 있을 거야."
옹달샘은 물방울이 미처 이해하지 못할 말을 하며 물방울의 등을 가만히 밀었습니다. 그리하여 물방울은 옹달샘을 빠져나왔습니다.
물방울은 산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물에 몸을 맡겼습니다. 다른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만나 몸집도 꽤 불어났습니다. 산 중턱쯤에 이르렀을까. 물방울은 전에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소리가 앞을 가로막는것을 느꼈습니다. 온 산을 다 집어삼킬 듯 그르렁대는 그 소리는 폭포가 벼랑 아래로 떨어지며 내는 소리였습니다.
"나는 저 폭포를 뛰어내려 본 적이 있어. 저 소리는 폭포가 내는 소리가 아니야."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물방울에게 다가와 누군가 말했습니다.
"저건 물방울들이 내는 소리야."
"우리 같은 물방울이 어떻게 저런 큰 소리를 내는지 믿을 수 없는걸."
"지금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돼. 우리는 폭포를 뛰어내려야 하거든. 아니, 우리가 폭포가 되는거야."
"아니야! 나는 절대 못해!"
물방울은 갑자기 소리를 꽥 질렀습니다.
언제인가 폭포를 뛰어내려 본 적이 있다는 물방울이 말했습니다.
"우리 스스로 몸을 터뜨리지 않으면 물소리가 나지 않아. 부딪치고 깨질 줄 알아야 우리는 물소리를 내는 물방울이 될 수 있어. 그건 혼자서 되는 일도 아니지."
물방울은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물방울은 자신의 존재를 터뜨리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하여 세찬 물소리를 내려는 것입니다.

벌써 이야기가 끝났느냐구요? 아닙니다. 지금부터 물방울의 새로운 여행은 시작됩니다.

글쓴이 안도현은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