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둣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안도현



그는 길을 떠났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것을 찾지 못하면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작정으로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아주 추운 겨울날, 그는 거지를 만났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고 물었더니, 거지는 배불리 먹고 따뜻한 방에서 잠자는 거라고 애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는 거지가 한심스러웠다. 당신은 일을 하지 않고 게으르기 때문에 평생 구걸이나 하며 살아가겠군. 그는 거지의 몸에서 나는 역한 냄새 때문에 코를 싸쥐고 다시 길을 떠났다.
어느 마을 정자나무 밑에서 그는 병든 노인을 만났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고 물었더니, 노인은 아프지 않고 오래 사는 거라고 천천히 말했다. 그는 노인이 욕심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늙고 병들면 당연히 죽어야 하는 것 아니오? 그는 노인의 구부러진 허리를 외면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왁자지껄한 시장 복판에서 그는 장사꾼을 만났다. 역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고 물었더니, 장사꾼은 돈을 많이 버는 거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그는 웃고 말았다. 당신은 속물이군. 그는 손가락에다 퉤퉤 침을 발라 돈을 헤아리는 장사꾼을 비웃으며 다시 길을 떠났다.
거지도, 병든 노인도, 장사꾼도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구나. 그는 답답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물어 보았으나 결론은 뻔했다. 대체로 인간들이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 그러니까 먹고, 마시고, 입고, 잠자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과 욕망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하루는 어느 마을에서 집을 짓고 있는 광경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때마침 상량 고사를 지내는 날이어서 거기에는 이런저런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그는 술이나 한 잔 얻어먹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이 사람들에게 물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을 짓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뭐니뭐니 해도 집터를 잘 고르는 일이 중요하지요.”
먼저 풍수쟁이가 이렇게 말하자, 그 다음에는 목수가 말했다.
“집터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집을 부실하게 지으면 사상누각이 되고 맙니다. 설계와 시공이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이 말을 이어 미장이가 말했다.
“내가 벽을 단단하게 바르지 않으면 바람이 들락거리는 집이 되고 말지요. 벽 공사를 잘 마무리하는 게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너도나도 한 마디씩 거드는 통에 경건해야 할 상량 고사가 점점 난장판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는 뒤늦게서야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어서 자리를 뜨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서로 뒤엉킨 사람들 사이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다. 그 동안 팔짱을 끼고 소란을 지켜보고 있던 집주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시오?”
“그게 뭡니까?”
그는 눈이 번쩍 뜨였다. 집주인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한시바삐 그 대답을 듣고 싶어 그는 집주인에게 바싹 다가갔다.
“어서 빨리 저 쪽으로 사라지는 것이오.”
그는 집주인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그가 또 다시 걸어가야 할 길이 가물가물 보였다.

글쓴이 안도현은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