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둣돌 민들레처럼 안도현


길가에 납작하게 엎드린 민들레는 풀이 죽어 있었다. 몇 송이 노랗게 피워 올렸던 민들레꽃이 점점 시들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들레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럴수록 온몸에 열이 나고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맨 처음에 꽃을 피워올리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 민들레는 까무러칠 듯해서 몇 차례나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었는지 모른다. 그런 고통이 또 민들레를 휘감으며 지나가고 있었다.
‘설마 다시 꽃을 피우는 건 아니겠지. 그래, 나는 이렇게 그냥 죽어 가는 거야.’
기운이 빠질 대로 빠진 민들레가 고개를 한껏 수그리고 있을 때였다. 꽃이 진 뒤에 축 늘어져 있던 꽃대가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다. 꽃대는 순식간에 몸을 가누고 저 혼자 허공으로 쑥쑥 키를 키워가고 있었다.
“꽃대야, 넌 왜 그렇게 자꾸 위로 올라가니?”
“응, 바람이 잘 부는 곳으로 가려는 거야.”
민들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꽃대가 왜 바람 부는 곳으로 간다고 했는지 그 말을 이해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꽃대는 머리 위에 꽃씨를 달고 있었던 것이다. 솜털처럼 생긴 그 꽃씨를 바람에 날리기 위해, 더 먼 곳으로 꽃씨를 퍼뜨리기 위해 꽃대는 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키를 키우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 민들레는 꽃대와 꽃씨가 속삭이는 말을 들었다. 꽃대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꽃씨야, 어서 떠나야 한단다.”
“싫어요, 무서워요. 뿔뿔이 흩어지는 게 무엇보다 두려운 걸요.”
꽃대는 머리끝에 동그랗게 매달려 있는 꽃씨가 안쓰러웠다.
“하지만 떠나야 할 때 떠날 줄 아는 게 아름다운 거란다.”
꽃씨가 울먹이며 말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잖아요.”
그 말을 듣고 한참 생각에 잠겼던 꽃대가 입을 열었다.
“이 세상은 생각보다 살 만한 곳이야. 발을 내리면, 어디든지 살아갈 수 있는 게 민들레란다. 꽃씨야, 너는 내년 봄에 민들레꽃을 꼭 피워야 한단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바람은 좀처럼 불지 않았다. 민들레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꽃대를 흔들어야겠어. 불지도 않는 바람을 하릴없이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 꽃씨를 먼 곳으로 떠나보내려면 그 방법밖에 없어.’
그리하여 어느 날, 민들레는 스스로 가만히 꽃대를 흔들었다. 그러자 꽃대 끝에 달려 있던 꽃씨들이 점, 점, 점, 점, 점, 점, 점, 점…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쳇, 민들레가 어떻게 꽃대를 흔드나? 때마침 바람이 불어 꽃씨를 날렸겠지.”
당신은 제발 이렇게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랑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흔들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당신은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글쓴이 안도현은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