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읽는 세상 비올리스트 최승용씨 이장직



Q: 바이올린을 도난당하지 않는 방법은? A: 비올라 케이스에 넣어둔다.

Q: 비올라가 연주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 A: 비올리스트의 활이 움직이는지 확인한다.

비올라에 관한 악기 조크의 몇 대목이다. 사실 비올라는 바이올린에 비해 열등한 악기 취급을 받았었다. 음악대학에서 비올라 전공이 생긴 것도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바이올린을 배운 사람이면 비올라는 누구나 연주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비올라는 현악4중주나 오케스트라에서 다른 악기의 그늘에 가려져 존재가 거의 미미했던 악기였다. 최근에서야 독주 악기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비올리스트로 독주회 무대를 누비고 있는 외국 연주자도 러시아 출신의 유리 바슈메트 정도가 떠오를 뿐이다.

비올리스트 최승용 씨(55)는 국내에서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비올라의 음악세계를 개척한 선구자다. 원래 바이올린을 전공했지만 78년 서울시향에 입단해 비올라로 전공을 바꿨다. 우울하면서도 개성 있는 비올라의 음색에 흠뻑 매료된 데다 앞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악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79년 국립교향악단이 피아니스트 백건우,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과 함께 미국 순회공연을 떠날 때 비올라 수석주자가 없어 ‘대타’로 나서기도 했다. 국립교향악단이 보스턴에 들렀을 때 그는 뉴잉글랜드 음악원 교수를 만나 즉석에서 오디션을 치러 입학 허가를 받아냈다. 미국 교향악단 수석 주자로 가기로 예약되어 있었지만 당시 이강숙 KBS 교향악단 총감독의 권유로 귀국행을 결심했다.

최승용 씨는 젊었을 때부터 안경을 끼고 다녔다. 시력은 좋은 편이었지만 눈매가 매섭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바꿔 말하자면 눈빛이 살아있다는 얘기다. 맺고 끊는 게 분명한 성격인 데다 눈매까지 보통이 아니어서 ‘잘난 척 한다’‘독불장군이다’라는 오해도 많이 받았다.

집과 연습실, 학교, 공연장만 오가는 그에게 유일한 취미는 권투다. 중학교 시절 학비가 없어 휴학하고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찾아다닐 때 권투를 배웠다. 프로 권투선수가 되어 돈을 벌어보려고 했는데 체육관 관장 집에 가보니 살림살이가 형편없어 권투를 그만뒀다고 한다. 권투를 하려면 눈이 빨라야 한다는 것도 그때 배웠다. 요즘도 틈 나면 평창동 자택에서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치는 연습을 한다. 내년쯤 프로 선수와 시합할 거란다. 식구들과 제자들 보는 앞에서 왕년의 실력을 발휘하고 싶단다. “그동안 제가 최고 잘난 줄 알았어요. 사교적인 성격이 아닌데다 눈매까지 매서우니 별별 오해를 많이 받았습니다. 앙상블 활동을 하면서 많은 것을 터득했지요. 나이가 들수록 모든 게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2년 전 늦깎이 교수까지 되어 더 열심히 살고 있어요.”

서울예고에 다닐 때 레슨비가 없어 레슨을 빼먹기가 일쑤였다. 입시 때도 남의 악기를 빌려서 연주했다. 그래도 서울대 음대 바이올린 전공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집안 경제사정이 넉넉할 때는 열렬한 음악애호가인 부친 덕분에 집에 전축과 음반도 있었다. 6남 2녀 중 아들 셋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칠 정도였다. 그때 느낀 클래식 음악의 감동이 지금까지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있다.

비올라는 다른 악기의 도움 없이도 합주가 가능한 악기다. 20~30명의 비올라 주자가 고음과 저음을 커버하면서 풍부한 화음을 빚어낼 수 있다. 최씨는 국내 비올라 주자들의 친목도 다질 겸 비올라 오케스트라도 만들어 지휘하고 있다. 현악 앙상블 ‘서울 이무지치’도 매년 한 차례 이상 정기 연주회를 한다. 최씨는 피아니스트인 아내와 함께 단란한 음악 가족을 이끌어간다. 아들 지웅(바이올린), 지호(첼로)는 독일 쾰른에서 유학 중이다. 여자 제자들에게도 음악가와 결혼하라고 권한다.

최씨는 미국 유학 시절을 빼놓고는 줄곧 제자들을 가르쳤다.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평범한 진리를 매일 몸소 깨닫고 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평생 가르치고 싶다고 한다. 다른 음악가의 연주회에 가서도 많은 것을 보고 배운다고 했다. 활짝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풍부하게 살찌워가는 그에게서 청년 음악가의 모습을 발견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글·이장직 (중앙일보 음악전문기자) 사진·이영균

최승용 씨는 1950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서울예고와 서울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1978년 서울시향 바이올린 주자로 입단해 얼마 후 비올라 파트로 옮겨 수석 주자로 활동했다. 보스턴 뉴잉글랜드 음악원을 졸업했으며 국립교향악단과 KBS 교향악단의 비올라 수석을 지냈다. 현재 홍콩 팬 아시아 오케스트라 수석 객원 지휘자, 서울 이무지치 합주단 음악감독, 한세대 교수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