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광릉수목원 주진순,송성자씨와 서울맹학교 아이들 박현숙



차에 오른 아이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재잘거리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열 살 무렵의 아이들이란 에너지의 화수분이어서 차가 서울 도심을 벗어나 경기도 포천에 자리 잡은 광릉수목원에 이르는 두 시간여 동안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드디어 광릉수목원에 이르렀을 때 아이들은 귀를 기울이고 손을 내젓고 숨을 깊이 쉬며 숲을 느끼기 시작했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의 초대를 받은 국립서울맹학교 3학년 1, 2반 친구들 일곱 명. 이 아이들에게 세상은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선생님, 오늘 날씨 참 좋네요. 바람이 달콤하고 시원해요. 풀냄새도 좋고요.” 이삭이 말에 담임 김진희 선생님(50)은 “맞아, 좋은 가을 날씨네!”라고 답했다. 선생님은 굳이 청명한 하늘과 흰 뭉게구름, 반짝이는 초록 나뭇잎을 말하지 않았다. 대부분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볼 수 없었던 아이들에게 그것은 알 수 없는 말이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세상을 가르쳐준다. 2반 인솔교사 이인희 선생님(50)은 시각에 의존하지 않음으로써 섬세한 촉각, 후각, 청각으로 세상을 만나는 이 특별한 아이들이 날마다 경이로움을 선물하는 천사들이라고 한다.

수목원 정문에는 산림환경 교육교사인 송성자 선생님(50)이 벌써부터 마중 나와 계셨다. 숲이 좋아 늘 숲을 찾아다녔다는 송 선생님은 3년 전 산림청의 산림환경교육과정을 밟고 본격적으로 산림환경 교육교사가 되었다고 한다. 아이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고 인사를 나눈 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멋진 슬로건을 외친다. ‘코는 벌름벌름, 귀는 쫑긋쫑긋!’“숲은 오감으로 자연을 만나는 곳이죠. 식물은 꼭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감각이 예민한 우리 친구들은 자연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송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안내한 곳은 계수나무가 있는 오솔길이다. 계수나무 낙엽을 손에 쥔 아이들은 달콤한 내음에 금세 얼굴이 환해진다. “선생님, 왜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요?” “계수나무가 ‘나를 사랑해주세요’하는 말을 향기로 대신하는 거지. 그 향기를 맡고 온갖 새들과 곤충들이 찾아오거든.”



예슬이와 선생님의 대화가 오가는 사이 굵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숲은 온갖 생명들이 가장 놀기 좋은 멋진 놀이터란다”라며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수목원의 연구원 주진순 선생님(54)이다. 25년 동안 국립수목원 연구원으로 일해 온 주 선생님의 연구 분야는 포레스트 레크리에이션, 곧 숲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잘 놀 수 있느냐를 공부하는 것이다. 숲에서는 굳이 어떻게 놀까 궁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숲길을 조금만 걷다보면 저절로 재미난 놀이를 찾게 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은 멀리서 들려오는 새 소리를 휘파람으로 흉내 내고, 발밑에 굴러다니는 도토리를 주워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낸다. 진원이의 휘파람소리는 호랑지바뀌 소리와 닮았고 동진이가 부는 휘파람은 파랑새 소리 그대로다.

손에 손을 잡고 오솔길을 걸어 도착한 곳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시각장애인을 위한 ‘손으로 보는 식물원’이다. 0.1ha의 4개 구획에 심어진 164종류의 식물은 손으로 만져보든가 냄새를 맡아서 알아볼 수 있도록 점자 표시판에 그 특성이 적혀 있다. 주진순 선생님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은 표시판을 읽느라 여념이 없다. “와, 생강나무 잎을 비비면 생강 냄새 나고 누리장나무에서는 누린내가 난데요! 하하!” 재희는 점자판을 읽고 그 옆에 있는 나무를 한아름 안아보다가 나뭇잎을 비비며 환하게 웃었다. 가시가 있는 음나무와 초피나무, 질감이 부드러운 둥근향나무도 소년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호기심 풍부한 진원이는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니다가 제법 숲 깊이 들어갔다. 소년은 한껏 나무를 끌어안고서 볼을 부비고 냄새를 맡는다.



저렇게 내밀하게 자연과 교감할 줄 아는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오늘 만난 나무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아메리카 로키산맥 일대에 살던 인디언들의 성인식은 지혜로웠다. 성년의 나이에 이른 소년들은 마을 지도자의 안내로 두 눈을 가린 채 깊은 숲에 들어가 자신의 나무를 정하고 그 나무와 하룻밤을 지내며 교감한 뒤 눈을 가린 채 숲을 나와 다시 그 숲에 들어가서 자신의 나무를 찾아내는 시험을 치러야 했다. 그 시험에 통과해야만 진정한 성인으로 인정받았다. 이삭이, 예슬이, 진원이, 재희, 동진이, 신이, 효진이 이 아이들은 커서도 이 곳에서 만난 자신의 나무를 찾을 수 있으리라. 어린왕자의 지혜로운 친구 숲 속의 여우가 말한 것처럼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마음으로 보아야 하므로.

소나무와 비슷한 뾰족 잎을 가진 개비자 나뭇잎의 감촉을 느끼고 전나무 숲에 이르자 종달새처럼 즐겁게 설명하던 송광자 선생님의 목소리가 조금 상기됐다. “얘들아, 도시에서는 전나무를 보기 힘들단다. 왜일까? 바로 자동차 매연 때문이란다. 전나무는 자동차 매연에 아주 약하거든. 우리 몸을 이롭게 해주는 피톤치드라는 것을 뿜어내주는데 도시에서 만날 수 없다는 건 슬픈 일이지. 너희들이 전나무를 기쁘게 해주었으면 한단다.”

송 선생님은 가방에서 솔방울을 꺼내 아이들에게 만져보도록 하고 잣을 맛보여준다. “저 이거 먹어본 적 있어요. 이게 나무 열매네요!” 아이들은 마냥 신기해한다. “식물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들의 좋은 친구란다. 식물도 사랑을 주면 건강하게 자라요. 사랑은 눈에 보일까, 보이지 않을까?” “안보여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일까? “아니요, 분명히 있어요!” 숲을 나오며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의 목소리에서는 가슴 뻐근한 자랑이 뿜어져 나왔다. 그 에너지는 나무의 그것처럼 푸르고 싱그러웠다.

글·박현숙(자유기고가) 사진·안홍범

* 임업연구관 주진순 선생은 25년 동안 국립수목원에서 일하며 어떻게 하면 숲에서 사람들이 잘 놀 수 있을지를 연구하고 있다.
* 산림환경교육교사인 송성자 선생은 신비한 보물창고인 숲을 공부하고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 산림환경교육교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