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편지 마음의 언어 장영희


“이렇게요, 선생님. 아니, 그렇게 말고 이렇게요.” “이렇게?” “아니요, 이렇게요.”

내가 어떤 공식적인 자리에서 수화로 “사랑합니다”라는 표현을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학교에 ‘손짓사랑’이라는 수화동아리 멤버인 민수에게 수화로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손으로 내 가슴을 가리키고, “당신을”--상대방을 가리키고, “사랑합니다”--왼손의 엄지쪽을 위로해서 주먹을 쥐고, 오른쪽 손을 쫙 펴서 왼쪽 주먹 위로 시계방향으로 돌려준다. 원래 손재주가 없는데다가 뭐든지 금방 배우지 못하는 나는 열심히 민수가 하는 대로 따라서 흉내 내는데,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선생님!” 나름대로 이젠 틀리지 않고 꽤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민수가 또 제동을 걸었다. “왜? 이번엔 뭐가 틀렸는데?” “선생님 얼굴 표정이요. 선생님, 누구를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이마를 찌푸리고 무뚝뚝한 얼굴을 하지 않잖아요.” 내가 열중해서 집중하는 얼굴이 골난 표정 같다는 불평이었다.

““아무리 손으로 ‘사랑합니다’를 말해도 눈빛이 아니면 그건 ‘사랑합니다’가 아니니까요. 손으로 그리고 말로 안 해도, ‘사랑합니다’는 마음으로 알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마음을 보여주는 눈빛, 표정이 더 중요해요. 이 세상에서 마음이 제일 중요한 언어잖아요.”

민수가 영어를 못하는 편이라 숙제를 낼 때마다 내가 야단을 치는 입장이다가 거꾸로 민수에게 야단맞는 꼴이 되었지만, 나는 민수의 말에 마땅하게 반박할 말이 없었다. 아니, 상대방에게 자기의 생각을 전달할 때 어설픈 말이나 손짓보다 마음이 더욱 중요하다는 민수의 말이, 요새 젊은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 효율만 따지고 눈에 보이는 것에만 가치를 둔다고 선입관을 가지고 있는 내게 조금은 재미있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영문학 과목을 가르치면서 가끔 나는 많은 사람들이 영어에 대해 무언가 오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세계화의 추세에 맞춰서 요새는 대학생들은 물론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영어를 배우는 것이 유행이고 영어만이 성공의 열쇠인 듯, 모든 사람이 영어 열풍에 휩쓸려 있다. 이번 달 어느 시사 잡지에도 “지구상의 일곱 명중 한 명이 영어를 말하며 세계에서 출판되는 책의 반 이상이 영어로 씌어졌으며 과학 잡지의 80% 이상이 영어다.

그러므로 이제 지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영어는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되었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렇지만, 영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매우 비외교적이고 시대착오인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무조건 유창하게 영어만 잘하면 만사 해결이고,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영어만 잘 하면 된다는 생각은 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한다. 영어는 단지 많은 의사소통 방법 중의 하나일 뿐,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 아무리 영어를 잘 한다 해도 머리나 마음이 텅 빈 사람은 아예 할 말이 없다. 아무리 훌륭한 발음으로 영어를 잘 한다 해도 마음이 없고 생각이 모자라는 사람의 말은 아무도 들어주지도 않는 것이다.

오래 전 KAL 801편이 괌에서 추락했을 때의 일이다. 사망한 사람들의 가족들이 낯선 이국땅으로 가서 제각기 파편더미 속에서 사랑하는 가족의 시신이라도 찾으려고 통곡하며 헤매고 있었다. 그때 외국인 관광객들이 자원봉사자가 되어 한국인 사망자들의 가족들을 돌봐 주고 있었다. 기자가 그 중 중년 아주머니에게 국적을 묻자 이탈리아에서 왔다고 했다. 한국말을 못해서 의사소통이 안 되어 가족들을 돕는 게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부인이 통역을 통해 대답했다.

“아니요, 어렵지 않아요. 한국말을 전혀 모르고 영어도 겨우 단어 몇 개 아는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이 가족들을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들의 눈빛을 보고 그들의 아픈 마음을 이해합니다. 한국말도, 영어도 못하지만, 저는 마음의 언어(language of the heart)를 말할 줄 아니까요.”

‘마음의 언어’-- 나는 그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바로 그게 민수가 말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마음의 언어’다. 마음의 언어는 이 세상 사람들이 따로 배울 필요 없이 모두 할 줄 아는 언어이다. 아프리카의 피그미족도, 알래스카의 에스키모도, 그리고 물론 한국 사람도, 국적도, 성별도, 나이도 무관하게 누구든 말과 손짓이 없어도 통하는 언어이며,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고 이 세상을 조금 더 좋게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의사소통 방법이다. 하느님은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인간들이 제각기 다 다른 말을 하게 하셨지만 대신 마음의 언어, 지구 어디에서나 통하는 만국 공통어를 우리에게 주셨다.

그래서 누가 뭐래도 “마음이 중요하잖아요!”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젊은이가 있는 한 이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살다 갈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