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하루 그대가 되어 어느 청각장애인 디자이너의 하루 윤성희



찰칵, 하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찍는 사람도 찍히는 사람도 숨을 멈춘다. 1초도 안 되는 순간이지만, 시간은 참으로 길게 느껴진다.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주변 모든 풍경들은 참으로 고요하게 느껴진다. 코지라이프라는 회사에서 웹 디자이너로 일을 하고 있는 김대빈 씨는 출근을 하다가, 퇴근을 하다가, 혹은 일을 하다가도 종종 하늘을 올려다본다. 눈으로만 담아두기에 벅찰 정도로 아름다운 하늘이 보이면 어김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그의 컴퓨터에는 그가 찍은 사진들이 날짜별로 정리되어 있다. 그는 일기를 쓰듯 그렇게 매일 사진을 찍는다. 그가 남겨놓는 기록들을 엿보면 온통 하늘 사진이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그 하늘 사진들만 보아도 알 수 있을 듯하다. 그는 구름 사이로 살며시 펴져 나오는 햇살을 좋아한다. 그는 회사 옥상에 올라가 아파트 단지 너머로 해가 지는 것을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본다. 그리고 잠시 숨을 가다듬은 뒤, 찰칵 하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노을이 그의 몸으로 옮겨진다.

사진에 빠져든 것은 4년 전이다. 그가 일을 하고 있는 코지라이프는 장애인과 노인들의 복지용품을 파는 곳이다. 웹 디자인을 하면서 상품들을 그가 직접 찍게 되었는데, 그 후 그는 사진에 푹 빠져 지내게 되었다. 처음 그의 손에 쥐어진 카메라는 소형 디지털카메라였다. 그는 보이는 모든 것들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단순히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찍는 것이었다. 세상을 찍는다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뜻이었다. 사진을 찍다 보니 조금씩 욕심이 생겼다. 사진기도 바꾸고 사진 동호회에 가입해서 사람들과 어울려 출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웹 디자인 일은 그에게 새로운 인생을 살게 했다. 사진기도 만나게 해주었지만, 그보다 그를 아주 수다스러운 사람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그는 어려서 열병을 앓아 청각장애를 갖게 되었다. 그 후, 독학으로 공부를 마쳤다. 학교 친구가 없었기에 그는 외톨이였다. 세상 사람들과 대화하는 대신 자기 자신의 내면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성년이 되자 그는 디자인이라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복지관을 찾았고 거기서 직업훈련을 받았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성격이 바뀌어갔다. 그 후로, 웃는 모습이 참 아름다운 청년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었다.

자신이 만든 디자인을 고객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때 가장 속상하다고 그는 말한다. 이제 웹 디자인 일이 자신의 삶이 되어버렸다는 뜻이다. 장애인 신문인 에이블뉴스를 디자인하다가 우연히 ‘김대빈의 작은 사진첩’이라는 칼럼을 싣기도 했다. 지금은 일이 많아서 연재를 중단하고 있지만 조만간 자신이 찍은 노을 사진들을 사람들에게 소개할 생각이다. 회사에서 운영하는 장애인용품 쇼핑몰과 장애인을 위한 LPG자동차 사이트 등 그가 담당하고 있는 홈페이지는 여러 개가 된다. 회사에 웹 디자인을 담당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힘들 때도 있지만, 모든 것이 자신의 손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책임감을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충만하게 만들 줄 아는 청년이 된 것이다. 청각 장애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시각적인 감각이 더 뛰어날 수 있었다고, 그래서 자신이 하는 일에 큰 도움이 된다고 그는 말한다. 디자인을 할 때도, 사진을 찍을 때도, 그는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고 또 발견한다.



작년, 그는 사랑에 빠졌다. 보청기 회사에서 운영하는 정기모임이 있었는데 그 모임에 참석했다가 자신의 이상형과 꼭 맞는 여자친구를 만났다. 주말마다 여자친구와 데이트하느라고 요즘에는 출사도 자주 다니지 못했다. 홈페이지 관리도 조금 소홀해졌다. 그러면 어떠랴! 여자친구와 손을 잡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행복을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 그는 ‘대갈마치’라는 닉네임으로 사진 동호회 활동을 한다. 그의 홈페이지 이름도 대갈마치다. 사전을 살펴보면 온갖 어려움을 겪어 아주 야무지게 보이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지난 상처들이 그를 단단한 청년으로 만들어주었다. 이제 그의 미래에는 그 단단해진 청년이 가야 할 길만 올곧게 펼쳐지기를. 그는 누구에게도 실력으로 뒤지지 않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훗날, 자신을 닮은 아들과 딸을 카메라로 담고도 싶다.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매일 매일 사진으로 찍어두고 싶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미리 상상해보면서 그는 스스로를 야무지게 만들려고 한다. 해야 할 공부도 많고, 가야 할 길도 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대갈마치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가 찍는 풍경들은 그가 닮고 싶은 풍경일 것이다. 맑은 하늘에 떠 있는 아이스크림 모양을 한 구름 한 점.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그는 그런 하늘이 되어줄 것이다. 24가지 색 크레용으로도 그릴 수 없는 노을.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힘든 사람에게 그는 그런 하늘이 되어줄 것이다.

글·윤성희(소설가) 사진·하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