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를 찾아서 서울아산병원 부정맥팀 김유호 교수 이주익



오후 2시, 김유호 교수의 연구실 앞. 한 손에 컵을 든, 초췌한 얼굴의 김 교수와 얼떨결에 대면하게 됐다. 오전 진료 후 잠시 휴식 중이었나 보다. 진료 후 녹초가 된 의사를 보는 건 기자에겐 흔한 일이다. 입술 움직일 힘조차 없어 말도 못하고 손사래를 하는 의사도 있다. 말을 건네지 않고 있었더니, 먼저 몇 마디 질문을 던지며 시작하자는 신호를 보내왔다. 인터뷰 타이틀이 ‘명의를 찾아서’인데, 처음부터 국내 최고 시술 실적 등 낯간지러운 부분은 쓰지 말아 달라는 당부부터 한다.

숨겨진 명의 김유호 교수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겸손한 돌연사 파수꾼이다. 정확히 말하면, 심장전기생리학을 전공한 의사다. 심장전기생리학은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거나 느리거나, 가슴떨림을 호소하거나 실신하는 부정맥 환자를 치료하는 분야다.

김 교수는 말하는 내내 ‘나’가 아닌 ‘우리 팀’ 또는 ‘우리 병원’으로 표현했다. 의료계에는 세간에 소문난 명의들도 있지만, 묵묵히 드러내지 않고 자기 일에만 미쳐 있는 숨겨진 명의들이 더 많다. 그는 후자의 명의 같다.

에피소드 중에서 그의 면모를 들여다보자. 그의 말대로, ‘그’만이 아닌 서울아산병원 부정맥팀이 1996년도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심제세동기 시술을 시도했다. 심제세동기 시술이란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움직여 돌연사할 위험이 있을 때 하는 시술이다. ‘대충 그런 거구나’로만 이해했으면 한다. ‘후자의 명의’들은 정확히 표현하지 않은 의료 정보의 전달을 아기들 경기하듯 무지 무지하게 싫어한다.

시술받은 환자는 두 형을 부정맥 돌연사로 잃은 청년이다. 청년의 어머니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아들을 심제세동기 시술 1호 환자로 만들 수 없어 완강히 시술을 거절했단다.
“난 외국에서 수련하는 동안 많이 했던 시술이라 자신이 있었는데….”
믿음을 갖지 못한 환자 보호자에게 서운했던, 아니 답답했던 감정이 되살아 나나 보다. 결국 모정은 한 달여의 설득으로 제 길을 찾았고, 청년은 건강을 되찾아 결혼도 하고, 잘 살고 있단다.
“그때 일은 잊혀지지 않지. 보람을 느끼지….”

“우리 병원이 Top” 필(feel)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핑계로 싫어하는 건 알지만, ‘내가 Top이다’라고 자신할 수 있는 걸 꼭 집어 달라 했다. 잠시 망설이다 “돌연사”라는 짧은 대답이 나왔다. 역시 ‘우리 병원’이란 타이틀로 설명이 이어진다. “우리 병원이 돌연사 위험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건 제일 잘 하는 것 같습니다. 경험이 많기 때문에….”

의사들은 환자 진료 외에도 교육과 연구하는 일을 해야 한다. 진료·교육·연구 세 분야는 모두 대등한 수준으로 의사를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 김 교수는 프랑스에서 유학한 최기준 교수와 아직까지 정립되지 않은 ‘심방세동 전기적 치료법’을 연구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치료법을 정립하면 세계적인 의학저널에 게재되는 등 국내 의학계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일이 된다. 그는 부정맥 치료기기에 대한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지만 연구과정이 비밀이라 자세히 말할 수 없다 했다.

“교수님은 고교 시절부터 의대를 목표로 했죠?” 거의 99% 그랬을 거란 느낌으로 “예”라는 대답을 단정하고 던진 질문이다.
“아니예요.” 정색을 한다. “고등학교 때까지 공군사관학교에 가기 위해 공부 외에 체력단련도 하고 그랬습니다.” 김 교수는 어린 시절 꿈을 접은 이유를 안경을 가리키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는 치대를 다니던 형이 “한번 해볼 만하다”며 권유해 의대로 진학했다.
그는 캐나다와 미국에서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수련 생활을 했다. “고통스러웠어요. 일과 중에는 버거울 정도로 많은 시술로 지쳤고, 저녁에는 생활비에 보탤 목적으로 몸으로 때우는 일을 해야 했어요.” 그는 야간 당직을 ‘몸으로 때우는 일’로 표현한다.
“서울의대 재학 시절, 지금 춘천성심병원에서 원장을 하고 있는 이광학 교수의 명쾌한 부정맥 강의를 듣고 부정맥 분야에 매력을 느꼈어요. 외국서 수련할 시절, 외국 의사들도 어렵고 지겨운 걸 왜 택하냐 했지만, 난 재미있었어요. 요즘에는 테크놀로지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보다 더 흥미로워지고 있지요.”

산도 좋고 물도 좋다 인자요산(仁者樂山)이면 지자요수(智者樂水)라 하던데, 그는 산도 좋고 물도 좋단다. 연구실 책상 한켠에 가운데가 파여 있는 기다란 수석에 물이 담겨 있는데, 마치 작은 계곡 같다. 벽면엔 하얀 뭉게구름이 능선을 넘고 있는 지리산 풍경 사진이 걸려 있다. 화초인지 분재인지 작은 나무(?) 두 그루도 책상 위에서 때깔 곱게 자라고 있다.

“당장 오늘도 산에 가고 싶지…, 환자로 만난 사진작가와 5년 전 처음으로 지리산에 올랐는데 너무 매료돼 매년 가고 있어요. 섬진강도 좋죠. 우리나라에 그토록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 있는 줄 몰랐어요.”
의사가 안됐다면, 또는 의사 외에 하고 싶은 일이 있냐고 물었더니 대뜸 나온 특유의 짧은 대답은 “농사”다.
“전통적인 논밭농사는 아니고요. 농원을 해 보고 싶어요. 봉평에 가면 큰 허브 농장이 있어요. 너무 좋아요. 자연을 벗 삼아 살 수 있는 그런 일을 하고 싶지요.”
심장 건강을 위한 조언 한 마디를 구했다.
“많이 걸으세요. 들도 좋고, 산도 좋고, 강가도 좋고, 도심이라도 좋습니다. 앞으로 나가려는 데에만 익숙해 있는데, 가끔 많이 걸으면서 생각하세요. 차분히 인생을 돌아보면 심장 건강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좋습니다.”

글쓴이 이주익은 의학신문 기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