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를 찾아서 생체간이식수술분야의 세계적인 대가, 이승규 교수 권미혜



세계 간이식 역사에 새 장을 개척한 이가 있다. 서울아산병원 외과 이승규 교수. 고난도 교환 간이식 수술의 세계 첫 성공 등으로 세계 의학계의 ‘Big surgeon’으로 주목받는 그에게는 도규계의 거장답게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생체 간이식 수술 분야의 세계적 대가로 독보적인 권위와 명성을 자랑하는 그는 국내 이식 역사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인터뷰어는 그런 그를 ‘마에스트로’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손끝은 이같은 진부한 언어 성찬들을 거부한 채 오로지 학문적 통찰력과 집념, 도전정신으로 온갖 ‘기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내 안의 누군가가 나를 쓰시는 것
새해 서설이 강바람을 타고 내리던 날, 그를 만났다. 녹색의 수술복 차림으로 외래 오전 진료를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온 시각은 낮 2시를 한참 넘긴 시간이었다. 때를 놓친 그에게 바로 비서가 준비한 점심 한 상이 건네졌다. 누가 믿을까. 라면에 김치 한 접시, 생수 한 컵이 ‘성찬’의 전부였다. 수술장에서 카리스마를 내품는 국내 최고의 외과의사는 라면으로 때늦은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그 ‘성찬’과 함께 인터뷰는 시작됐다. 그 도중에 수술장 긴급 전화, 환자 보호자의 기습 방문, 중환자실 전화가 끊임없이 인터뷰를 방해했다. ‘위기’ 국면에서도 그는 다행히 인터뷰의 맥을 놓치지 않고 성실하고도 진지한 자세로 일관된 철학과 비전을 털어놓았다.
간이식 수술의 새 역사를 연 눈부신 활동을 놓고 그는 “그저 운이 좋았다”며 자기폄하로 일관한다. “내가 한 일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누군가가 나를 돕고 쓰시는 것”이라고 자신을 낮추며 겸양해 했다. 신실한 믿음 덕일까. 그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쳐도 헤쳐나갈 자신이 있다고 장담한다.

세계가 배운다
‘현대의학의 꽃’이라고 일컬어지는 간이식 분야에서 그가 걸어온 행보는 가히 눈부셨다. 이승규 교수는 지난 1992년 8월 뇌사자를 이용한 사체 간이식에 첫 성공한 이래 1994년 국내 최초의 생체 간이식 성공, 1997년 성인대 성인간의 생체 부분 간이식 성공 등 현재까지 700례 이상의 간이식 수술을 시행했다. 간이식 수술 성공률도 95%이상을 기록, 간이식 수술로 유명한 미국 피츠버그 병원, UCLA 병원, 독일 하노버 병원, 일본 동경의대 수술 성공률을 앞지르며 세계 최고의 성적을 보유하고 있다. 그의 끊임없는 도전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말기 간경화 환자 2명에게 2명의 기증자 간을 상대편 가족 환자에게 동시 이식하는 초고난도 ‘교환 간이식’ 수술을 세계 첫 성공하는 개가를 올렸다.
“이식팀의 수준높은 기술력과 축적된 간이식 수술 경험, 철저한 수술 지원 체계 등이 갖추어져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간이식 수준이 명실공히 세계 간이식 수술을 선도하는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는 의미로 평가받아 무척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는 이 과정에서 ‘팀워크’를 가장 중시한다.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보석’과도 같은 후진들을 각별히 아끼는 이유다. 이 교수는 요즈음 일주일에 4일을 간이식 수술에 매달린다. 수술 대기환자가 너무 많아 지난해까지 주 3회 시행하던 간이식 수술을 올해부터는 주 4회로 늘여 하루에 2명씩 동시 이식수술을 시행하고 있다.
“성인대 성인간 생체 부분 간이식의 활성화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생체 간이식은 무엇보다도 뇌사자 공여장기 부족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만, 기증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때 기증할 수 있는 간의 용적이 제한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승규 교수는 이 제한적 이식간 용적이 결국 기증자의 안전성 문제와 더불어 성인대 성인간 간이식 활성화의 최대 걸림돌이었다고 말했다. 1998년, 그는 이 같은 제한적 이식간 용적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획기적인 새로운 성인대 성인간 간이식 방법인 변형 우엽 이식술을 세계 최초로 고안, 임상에 적용했다. 이어 2000년 3월, 두 사람의 간을 한 사람에게 이식하는 ‘2대1’(듀얼) 간이식 수술을 세계 처음으로 성공, 로마학회에 발표하면서 더 유명세를 탔다. 당시는 외과의사로서 가슴 벅찬 감동과 환희를 접한 순간이었다. ‘서울아산병원’이란 국내 의료기관이 세계 무대에 알려지기 시작한 때이기도 했다.
생체간이식 수술 실적은 드디어 재작년부터 세계 1위를 고수하던 일본 교토의대를 앞질렀다. 서울아산병원은 이같은 성과에 힘입어 아시아권에서는 유일하게 유럽 의료진이 2~3개월간 단체연수를 받는 곳으로 성장, 이식 분야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다.

도전 없이는 발전도 없다
이식 후일담 하나. 1999년 2월 대한이식학회가 마련한 생체 간이식의 창시자인 크로스토퍼 브롤시 교수(獨, 함부르크大)의 초청 특강 당시, 이승규 교수가 변형 우엽 이식술을 발표하자 브롤시 교수는 “깜짝 놀랄 만한 일”이라고 경탄했다는 후문이다.
이어 7개월 뒤 브롤시 교수는 이승규 교수에게 급전을 보내 “에센대 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변형 우엽 이식술을 시행하려 하니 윤리위원회에서 반대한다. 이 교수가 이 수술의 안전을 증명하는 문서를 보내주기 바란다”고 요청했다는 것.
말기 간암환자에게 새 희망을 안겨준 이 모든 업적은 이 교수의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열정으로 가능했다. 그는 “우리나라 외과의사들의 큰 병폐는 너무 빨리 ‘칼’을 내려놓는다는 점”이라며 “이 같은 단명은 국가적 손실”이라고 후진들에 대한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는다. “도전 없이는 발전도 없다”고 강조하는 그는 후진들에게 강한 ‘도전정신’과 ‘경륜’(좋은 수술 데이터), ‘신뢰’를 외과의사의 세 가지 덕목으로 내세웠다.
한국 의학수준을 세계 무대로 도약, 발전시킨 주역, 이승규 교수. 그는 올 한 해의 빗장을 여는 새해 새날에도 세계적인 빅스타답게 실력과 인품을 갖추고 세계 무대를 배경으로 끊임없는 도전과 무한질주를 계속해 나가고 있다.

글쓴이 권미혜는 의사신문 취재부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