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과 나 도전과 신기록의 연속 … 감동의 날들 이춘림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은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아시아의 영웅 65인’으로 선정했다. 타임은 정 회장 선정 이유에 대해 “‘강철 같은 의지’와 ‘하면 된다 정신’으로 한국의 번영을 촉진했다. 전쟁과 빈곤으로 어려움을 겪은 한국에 새로운 희망과 강력한 의지를 불어넣고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이끌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타임은 “60년 만에 아시아는 빈곤국에서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모방자에서 개척자로 변신에 성공했다”고 덧붙였다.

정주영 회장은 창의력과 확고한 신념, 그리고 강력한 추진력으로 건설, 자동차, 중공업, 철강, 전자 분야를 개척하여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어냈다. 우리나라 경제발전과 산업 선진화를 주도한 경제계의 지도자로, 또 국민적 영웅으로 많은 공적을 남겼다.

나는 1950년 10월 한국 전쟁 시 현대건설과 인연을 맺어 정 회장을 모시고 일하게 되었다. 국내외의 크고 작은 여러 공사 현장에서 시작하여 굵직굵직한 대형 공사에도 많이 참여했다. 정 회장은 나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분이었다. 여러 가지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고 큰 은혜를 받았다. 정 회장은 항상 진취적인 사고와 일하는 자세, 공기 단축과 생산성 향상, 그리고 경쟁력 강화를 강조했다. 좁은 국내보다는 넓은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수출을 증대할 것을 모든 경영자에게 강력히 호령하며 실천했다.

1966년 건설 상무로 재직 시 해외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동경에 들렀다. 때마침 정 회장이 태국, 월남에 가는 길에 동경에 왔다. 정 회장은 “바쁜 약속 없으면 내일 나하고 일본 조선소 시찰을 가보자”고 했다. 다음날 아침, 일본 모 종합상사 간부의 안내로 이시가와지마 하리마중공업의 요코하마조선소를 견학했다. 생전 처음 보는 대형 조선소는 무척 광대했고 큰 독크에서는 선박이 바쁘게 건조되고 있었다. 기계 공장에서 직경 1.5m가 넘는 기어와 길이 6m가 넘는 대형 샤프트를 깎고 있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그 다음날 아침은 가와사키중공업의 고베조선소에 갔다. 역사가 오래된 조선소라서 그런지 대·중·소의 여러 독크마다 배가 차있고 용접불똥을 튀기며 다양한 배를 열심히 건조하고 있어 깊은 감명을 받았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정 회장은 “요즘 해외 여러 나라에서 건설공사를 해보니 기후, 풍토, 언어, 습관이 다 다르고, 공사를 원활히 추진하는데 어려운 점이 많다. 때가 되면 국내에 조선소를 세워 외국에서 큰 배를 주문받아 배를 만들면 큰 일도 할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지 않겠는가” 하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조선을 한다 해도 당장 설계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철판을 자르고 용접해 선체를 만들고 그 내부에 보일러와 엔진 발전기 등을 설치하고 프로펠러를 달면 되지 않겠는가”하며 그동안 우리 현대가 건설한 발전소나 정유공장 등의 탱크 제작이나 기계설치 공사에 비유하면서 열변을 토했다. 이것이 내가 듣고 느낀 정 회장의 원대한 조선소 건설에 대한 꿈의 첫 구상이었다고 생각된다.

그 후 정 회장은 용의주도한 준비와 강한 집념으로 웅대한 꿈을 키워 나갔으며 오랜 기간 우여곡절 끝에 1972년 3월 울산조선소의 기공식을 올렸다. 일생일대의 대 승부를 건 대형 조선소 건설이 시작되었다. 초인적인 노력으로 단시일에 최대의 조선소를 1974년 6월에 완성했고, 동시에 ‘26만톤급 대형 유조선’ 두 척을 진수시켜 명명식을 가짐으로써 세계 경제계를 놀라게 했다.

1973년 현대건설 재직 시 나는 서빙고 현대아파트를 건설하여 성공리에 분양하고 1975년 곧바로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인 압구정동 아파트 건설에 착수했다. 그 당시만 해도 압구정동은 지하철이 없고 학교도 없고 교통도 불편했지만 한강을 끼고 있는 조망권과 장래성에 대한 기대, 그리고 현대건설에 대한 신뢰 등으로 분양이 순조로웠다. 나는 앞으로 아파트 사업을 확대하는 데는 개발 예정지를 미리미리 확보하는 것이 필수요건임을 확신하고 현대에서 매립한 잠실지구의 풍납동 땅 5만여 평을 다음 후보지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루는 정 회장을 찾아뵙고 아파트 사업의 현황과 전망에 대해 설명했다. 압구정동 다음으로 풍납동 매립지에 아파트를 건설하고 싶다고 “그 땅을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라고 말씀드리고 간청했다. 정 회장은 한참 생각하고는 “그 땅은 내가 긴요하게 쓸 데가 있어. 그러니 다른 곳을 알아봐” 하였다. 그 후 1977년 정 회장은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하고 ‘우리 사회의 가장 불우한 이웃을 돕는다’는 설립 이념에 따라 의료사업, 사회복지사업, 가난한 학생을 위한 장학사업, 학자들을 위한 연구비 지급 등 다양한 사업을 위해 많은 돈을 썼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나라 최대 최고의 종합병원인 서울아산병원이 풍납동에 개원됐다. 정 회장은 사회복지사업도 치밀하고도 오랜 구상과 집념으로 추진해 나갔다.

1972년 오일쇼크가 터지자 온 세상이 곤경에 빠졌다. 우리나라는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터라 나라 경제가 급격히 나빠지고 대외 결재도 어려워져 나라 살림이 부도 직전의 위기를 맞았다. 그 반면 중동 산유국은 막대한 오일 달러를 벌여 들여, 급속하게 근대화와 경제 건설이 시작되었다.

1975년 정 회장은 기름과 부를 가진 중동에 진출할 것을 결심하고 중동공사를 직접 총지휘하고 나섰다. 1975년 바레인 ‘아랍수리조선소 건설공사’를 수주했고, 1976년에는 각고의 노력 끝에 사우디의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수주했다. 곧이어 사우디 주택전용 ‘항만공사’와 해군이 발주한 ‘육상 및 해상 기지공사’를 수주해 가까운 지역 내에 20억 불의 대형 공사를 동시에 추진하게 됐다.

정 회장은 바레인 공사를 수주하자 즉시 중동공사 전반에 걸친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중동회의’를 설치 운영했다. 매일 아침 7시에 회의를 주최하여 인원의 선정, 동원, 송출, 그리고 자재·장비의 구매, 운반, 식량의 보급 등 전반에 걸쳐 이 회의에서 의논해 결정을 내렸으며, 곧 실천하고 확인하는 강력한 체제를 수립했다. 한편으로는 울산조선소에 ‘중동지원본부’를 두어 후방 보급기지로 활용하는 등 마치 사막의 대작전을 방불케 하는 큰 역사가 추진됐다.

중동에 근무할 때인 1977년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고가 회장이 우리 중동본부에 내방했다. 나는 주베일 산업항 현장을 안내하였다. 육상에는 각종 대형 중장비와 수백 대의 대형 트럭이 동원되어 공사가 급속도로 진행됐고, 해상에는 대형 해상크레인과 준설선 등 많은 선단들이 넓은 바다를 메울 듯 바삐 작업하고 있었다. 한참동안 작업광경을 보고난 고가 회장은 “내 80평생에 이러한 최대 규모의 공사는 전대미문이며 이러한 큰 공사를 목격한 일도 처음이다. 이것은 20세기 최대의 대역사다” 라고 감탄하며 정 회장의 담대함과 치밀한 계획력, 민첩한 행동력과 현대의 엄청난 동원능력을 극찬했다.

현대는 이 공사에서 위대한 조직력과 시공능력을 과시했고, 우수한 시공으로 일약 세계적 건설회사로 평가되고 각광을 받게 되었다.

1978년 현대건설 사장에서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전보되어 1987년까지 10년 가까이 울산에서 일했다. 정 회장이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건설한 울산조선소는 정말로 대단했다. 기술도 자본도 경험도 없는 조선 불모의 땅에 ‘세계 제일의 조선소’를 단시일 내에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미래에 대한 혜안을 가지고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조직과 인화로 뭉치게 하고 각자가 맡은 일에 전력을 다할 수 있게 한, 지도자의 힘과 역할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는 결정체였다.

나는 부임 후 정 회장의 신임과 지도로 인사를 개편했다. 영업력 강화와 고객에 대한 신용을 경영방침으로 하고 공기 단축과 납기 엄수, 품질향상을 강조했다. 또한 철저한 예산제도의 시행과 과학적 관리로 낭비와 무리를 없애고 생산성 향상과 경비 절감을 강력히 추진했고 국제경쟁력 강화에 힘썼다. 1983년 현대중공업은 드디어 조선 수주와 생산실적에서 세계 1위가 되어 조선소 설립 10년 만에 세계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정 회장은 거대한 산업시설을 건설하였을 뿐 아니라 종업원들의 ‘삶의 질’에 기본이 되는 주택을 비롯한 학교, 병원, 도서관, 백화점, 체육시설 등에도 큰 투자를 하였다. 종업원들은 잘 건설된 자기주택에서 행복하게 생활하고, 각종 교육시설에서 자녀들은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있다.

그간 현대의 여러 회사를 경영하면서 회사의 발전과 더불어 자기발전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과 성취 그리고 새 기록을 세우는 일에 큰 감동과 감격의 날을 보낼 수 있었다. 이것은 오로지 정 회장의 지도와 배려, 그리고 신뢰 속에서 소신껏 활동할 수 있었던 결과라고 고맙게 생각한다.

일 하는 가운데 삶의 보람을 느꼈고 또한 보람 있는 직장생활을 ‘현대’라는 한 곳에서 보낸 것을 나의 자랑으로 여긴다. 나는 살아가는 동안 아산 정주영 회장과 같은 위대한 한국의 영웅, 아시아의 영웅을 모시고 평생을 일했던 것을 큰 행운으로 생각하며 그 은혜에 감사할 뿐이다.

※ 이춘림 전 회장은 현대건설 사장, 현대중공업 회장, 현대종합상사 회장, 한·미경제협의회 부회장, 한국·인도 경제협력위원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아산재단 이사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