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과 나 정주영 선배님 전상서 한운사



아산 선생님! 86세의 고개 위에 계세요? 거기 그냥 쭉 계셨어요? 더는 못가시게 돼 있지요? 제가 85세 고개 위에 와 있거든요, 여기에서 선생님 모습 아주 가까이 잘 보입니다. 선배님이라 부르고 싶어요!

선배님! 그동안 세상 변하는 거 다 보셨죠? 문제없는 날이 없었지요. 금방 나라가 결단 나는 것처럼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아침 해는 여전히 떠오르고 깨끗한 것 더러운 것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저질러 놓은 모든 사연들, 사고들, 지구의 회전 따라 생기는 일들 몽땅! 그야말로 몽몽땅! 두루루 깔고 말아 굴려버리면 역사의 수레바퀴 잘도 가네. 선배님 거기서 다 보셨죠?

사람들의 견해가 다릅니다. 권위주의는 물러가라 진보적으로 우리는 간다. 우리는 혁명을 하고 있다. 앞으로 앞으로 나갈 뿐이다. 보라 하나하나 돼 가잖느냐. 세상이 달라진 거 뵈지 않느냐. 남북문제 어렵지만 선배들이 깔아 놓은 기초가 있어 그 위에 우리 꿈을 지어간다. 제법 용감합니다. 30대, 40대의 패기인가요 미국을 하늘처럼 떠받들던 어제의 역사를 무시하고 제법 민족자존 앞세우면서 밀고 가는 그 세는 무섭습니다. 거기서 다 보셨지요?

소 천 한 마리 끌고 간 용기, 세계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퍼포먼스’ 펼치신 선배님! 철벽 같던 38선 뚫고 우리 핏줄의 따스함을 보여준 그리하여 북쪽 사람들에게 우리 같이 살아보자 외치신 애절한 호소. 요지부동으로 굳어있던 사회주의가 다 망가졌는데도 끝까지 버티려던 저들 가슴에 다시 피가 흐르게 한 선배님.

선배님! 그러면서도 빠져나오는 탈북자들 대열을 막지 못하고, 어린이가 굶어 죽고 참담한 현상이 늘비하다는 평양에 큰 홀 정주영체육관을 지어주고, 금강산 공동개발로 이끌어 개성에 공단 짓자는 꿈을 키워 지금 이렇게 세상 바꿔 놓은 것은 선배님, 바로 당신께서 저질러 놓은 세기의 드라마 아닙니까?

가만히 보니 한민족은 정의 민족입니다. 아무리 싸움질 하다가도 어느 순간 정이 통하면 만사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풀리는 사람들. 선배님은 그 점을 놓치지 않으시고 불가능하다는 일을 가능케 한 분입니다.

지금 세상은 날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핵개발이다, 그거 안 된다, 벌써 10년가량 시비하고 아직도 불안한 요소가 걷혀지지 않고 있지만 선배님, 저들이 핵 쓰겠습니까? 다 망했는데 끝까지 핵 가지고 버티는 북의 배짱 알아줘야겠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큰 나라들은 가져도 되고 딴 나라는 가져서는 안 된다는, 그거 그렇게 가도 되는 겁니까?

자동차로, 조선으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낸 선배님. 지금 한국은 희한한 나라가 됐습니다. 한류라는 것이 세상을 뻐근하게 자극하고 있습니다. 선배님이 좋아하시던 드라마들이 ‘대장금’이니 ‘겨울연가’니로 동남아 일대 그것도 일본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싹 훑더니 영화까지 한몫 거드니, 장차 이런 것이 어떤 드라마를 엮어 나갈까요. 그리고 이번엔 보셨지요? 토리노의 동계올림픽. 2002년의 월드컵에서 기적같이 4강에 들어 세계 만방에 코리아 여기 있다, 대 -한민국을 외치게 하고, 골프까지 말이죠, 세계 제패의 낭보가 끊이지 않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1988년 올림픽을 서울로 끌어오신 그 기반이 이렇게 튼튼한 것이 될 줄이야.

왕년의 생각을 아니할 수 없습니다. 1960년대 초 4.19로 민주주의 씨를 뿌리고, 5.16으로 깨어나라 회초리 들고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노래하며 땀 흘리며 세끼 밥 먹게 되어 산업입국! 바로 선배님도 그 중심에 서 계셨죠. 세계가 놀란 엄청난 힘! 코리아 여기 있다 가슴을 펴고 세계의 바닷가에 노닐던 계절, HYUNDAI IS KOREA! 쭉쭉 자라던 대 - 한민국!

선배님! 지금 젊은 아이들이 욕 한답니다. 어제 그 자들은 다 썩었었다. 민주주의 죽이고 독재했다. 무슨 큰 소리를 치고 있느냐! 그러나 얘들아,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지 않았다. 엄동설한에 옷 입혀주지 않았다! 1961년! 5.16때 대한민국은 겨우 열세 살. 아침에 자는 놈을 두드려 깨워 길 닦아라 논밭 갈아라 수시로 채찍질하며, 우리도 세끼 밥 먹고 보자,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 외국에서 돈 꿔 와서 공장 짓고, 아이들 일 시켜 돈 벌게 하고, 공장들이 여기 저기 자꾸만 서고, 어허 좋은 물건 만들 줄 아네, 세계를 누비며 판촉하고 ‘이 세상에는 코리아 있다’ 짧은 시간 내에 만방이 놀랄 정도 성장을 하니, 얘들아! 그 세월이 어떤 세월이었는지 아니. 너희들 세끼 밥 먹여주었어. 그래서 너희들이 이렇게 자랐어!

선배님! 그 무렵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꿔 놓은 사람. 선배님을 비롯하여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유능한 여러 어른들! 얼마나 활기 있게 뛰어다녔습니까. 오늘의 대한민국 강남에 펼쳐진 광대한 빌딩 숲, 여의도의 화려한 현대 빌딩 숲, 전국 꿰뚫은 거미줄 도로망, 초특급열차 KTX, 웅대한 부산항, 세계에서 손꼽히는 인천공항, 세계 제일의 반도체, 수주 제일의 조선업, 왜 이렇게 뻐길 일이 많습니까.

선배님! 독재자라 욕해도 좋고 친일했다 친미했다 욕하는 거 겁나지 않습니다. 나는 선배님이 미소를 머금고 그 세상에서 이 세상 내려다 보시면서 “그래, 잘 들 해봐, 잘 들 해라, 너희들 장래가 괜찮다. 대한민국 괜찮은 나라이니라”그러시는 것 같습니다.

거리를 가다보면 무수한 젊은이들이 오갑니다. 왜 그렇게 모두 예쁩니까. 어떻게 해서 저렇게 모두 잘 생겼습니까. 2002년 월드컵 때 운동장에서 광화문에서 시청 앞에서 모든 도시의 광장에서 새빨간 붉은 악마들이 외치던 대-한민국! 보셨지요?

그 엄청난 에너지! 그 에너지를 어디다 쓰느냐, 어디로 방향을 잡아주느냐, 위대한 지혜를 가진 리더가 나타나서 그것을 멋진 방향으로 이끌고 가면 그야말로 세계가 놀랄, 아니 우리 자신도 깜짝 놀랄 거대한 꿈같은 현상이 벌어질 겁니다. 조심할 것은 그 방향!

선배님이 한반도를 내려다보시는 시각, 그때 살아계셨다면 거기 어떠한 일이 벌어지기를 원하셨을까요….

사상문제는 20세기의 고질. 이젠 그런 것은 벗어나라고 더불어 사는 세상 만들자고 하는 인자하신 선배님의 눈초리가 느껴집니다.

선배님! 85세의 고개에서 우리 세상을 돌아다보는 이 아우의 눈초리도 인자합니다. 얘들아, 예쁘게 자라서 쭉쭉 전진하되 방향만은 제대로 잡아라.

남북이 더불어 잘 살려면 앞으로 10년, 20년! 참고 격려하고 쓰다듬어 주는 세상을 만들어봐라.

선배님! 선배님은 노동도 해보시고 큰 일도 많이 해보시고 돈도 많이 벌어보시고 무수한 사람들 먹고 사는데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이제 저는 단언합니다. 선배님은 대통령 이상의 일을 해내셨습니다. 거창하게 비문에 업적 새겨 뭘 합니까. 선배님은 한 인간으로 태어나 많은 사람 위하여 그만치 일 많이 하셨습니다. 이윽고 사람들은 선배님 이름 석자도 잊어버릴 겁니다. 서운히 생각지 마세요. 절대로!

저도 이윽고 86세의 고개에 올라가겠습니다. 참 그때 일이 생각납니다. 1980년대던가요. 한국의 노총들이 조석으로 나라를 뒤흔들던 시절 선배님 뒤를 이어 전경련 회장이 된 구자경 씨가 “저 데모 대열에 무어라 얘기해야 되느냐”고 한 자 써달라는 청을 해온 적이 있습니다.

‘더불어 살자!’‘우리는 그대들을 착취하며 돈 벌 생각 없다. 더불어 사는 시대를 열자. 대한민국이 자라는 과정이다. 말로 서로 해결해보자’그렇게 써 주었지요. 정주영 회장님이 기다리고 계신다고 충무로 어느 음식점에 갔더니 거기 선배님이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쓴 것을 읽어 드렸지요.

“응, 더불어 살자는 얘기 괜찮다. 과정이란 말도 좋아. 이건 내가 가져갈게.” 호주머니에 원고를 접어 넣으시던 모습.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선배님 가슴의 따스함을 그때처럼 강렬하게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통일국민당 때 계동의 회장실에서 서류 한 뭉치를 주시면서 “강령이야. 좀 고쳐줘요”하셨지요. 내 마음대로 써 드렸지요. 그것을 반영시키셨는지 안 시키셨는지…. 이젠 다 초월하셨지요?

선배님이 가셨어도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이라는 열차는 끄떡없이 줄기차게 달려갈 겁니다. 선배님과 박대통령이 직접 노동하시면서 깔아놓으신 철로이니까요. 저는‘잘 살아보세’라는 노래 하나로 부축해 드린 것을 영광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선배님! 편안히 편안히 쉬십시오. 저도 어느 날 선배님 앞에 가서 큰 절을 올리겠습니다. 우리 동료들과 자식들이 사는 한반도를 내려다 보며 한 번 외쳐보자고 하겠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절대로 희망을 잃지 말아라!”
2006.3.10


* 작가 한운사(韓雲史) 선생은 1922년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 일본 중앙대학과 서울대 불문과 중퇴 후 한국 최고의 드라마 작가로 수많은 수작을 발표했으며 한국일보 문화부장, 한국펜클럽 대표를 역임했다. ‘현해탄은 알고 있다’‘남과 북’‘빨간 마후라’등 전쟁이나 정치 소재의 사회 현실을 적극적으로 다룬 남성적 작품들을 많이 썼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잘 살아보세’등의 유명한 곡도 작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