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과 나 거인을 추억하며 이인호



내가 아산을 가까이 뵙게 된 것은 러시아 덕분이었다. 한러 수교를 앞두고 KBS의 러시아 집중조명 프로그램에 같이 출연했을 때, 그분께서는 러시아 진출 가능성에 대해 매우 큰 기대를 가지고 여러가지 사업을 의욕적으로 구상하고 계셨다. 나는 지금의 소련은 옛날 같지 않고 붕괴 직전에 있으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경고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꿈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내 말에 그 분은 “지식인들은 정신의 힘을 모른다”며 불편한 심기를 청중 앞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내셨고, 나는 ‘무식에서 용기가 나오는구나’ 하고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그후 얼마 안 가서 아산은 러시아 동포들을 위해 베푸는 연회에 나를 초청하셨고, 내가 러시아 말을 하는 것을 보더니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연구소 소장 자격이 있구먼” 하셨다. TV 토론 후 미국에 가서 소련 전문가 팀을 만나고 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후 현실로 나타난 소련의 붕괴 등을 보며 ‘그 여자 교수가 헛말을 한 것은 아니었구나’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그 다음부터는 러시아 관련 행사에 자주 초대를 받았다. 덕분에 아산이 매우 좋아하던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 내외분과 두 번이나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는 영광도 누렸다.
한번은 고르바초프가 “정 회장님께서는 러시아 음악을 좋아하십니까” 하고 묻기에 아산이 러시아 음악을 아시는지 자신이 없던 내가 “음악을 좋아 하실 뿐 아니라 노래도 잘 부르십니다” 했더니 고르바초프는 “나도 기분이 좋을 때면 간혹 노래를 하지요”라고 말을 이었다.
그 말에 귀가 번쩍 하신 아산이 수저를 놓자마자 일어나서 옛 노래를 한 곡 뽑으시니 고르바초프는 화답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나는 사실 진한 보드카 몇 잔은 들어가야 소리가 나오는데.” 하며 계면쩍은 듯이 일어섰지만 어찌도 고운 목소리로 서정적인 노래를 부르던지…. 세계 사회주의 진영의 총수 고르바초프는 아름다운 러시아 노래를 다섯 곡이나 연속 부른 뒤에야 한국 자본주의의 총수 아산의 손님들을 충족시키고 자리에 앉을 수가 있었다.
소비에트 진영이 공산주의를 청산하고 사장경제를 받아들이는 어려운 전환을 유혈극 없이 이루어내는 데 대한 고르바초프의 결정적 역할을 높이 평가하는 아산은 그가 실각한 후에도 그의 재정적 후원자 역할을 하셨다.

아산이 재산의 사회적 환원을 말씀하실 때 정치적으로 아둔한 나는 가까이 뵐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가가 하지 못할 수준의 좋은 내용을 갖춘 도서관이나 박물관을 만들어 주시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말씀만 드렸다. 하루는 나를 따로 부르시더니 정치에 나서기로 한 배경 설명을 하시며 같이 정치를 할 만한 참신하고 유능한 지식인들을 몇 추천하라는 부탁의 말씀을 하셨다. 나는 “자격있는 좋은 사람은 아마 나서지를 않을 것입니다”라고 또 실망스런 답변밖에 드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 분은 그 후로도 나를 대화 상대로 버리질 않으셨다.
언젠가는 롯테 벤케이에서 혼자 기다리셨는데 그날이 백화점 세일 마감날인 줄을 모르고 차를 가지고 갔던 나는 주차를 하지 못해 50분이나 약속에 늦었다. 그때까지 가지 않고 기다리시다가 화를 내는 대신 “나는 옛날 정일권 총리로부터 늦지 않는 방법을 배웠지.” 하고 조용히 말씀하실 때의 고마움은 내가 생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후 나는 안식년으로 미국으로 떠났고 1년 후 돌아와 찾아뵐 때는 이미 패장의 모습을 하고 계셨다. 대통령 출마 전까지는 동갑이셨던 우리 친정 아버님보다 훨씬 더 기운이 왕성하셨는데 상황이 정반대가 되어 있었다. 아산이 전보다 한가로워진 덕분에 나는 가끔 가까이 뵙고 옛날 지내오신 이야기도 듣고 박경리 선생님을 찾아 뵙기 위해 같이 자동차 여행을 하는 등의 특전을 누렸다.
얼마 안가 대사로 나가야 했지만 공관장 회의차 들를 때는 꼭 점심을 사 주시곤 하셨다. 하지만 2000년 완전 귀국했을 때는 이미 외부인의 방문이 차단된 상태라 귀국 인사조차 못 드린 것이 몹시 마음에 걸린다.
가까이 뵈면 뵐수록 존경과 사랑이 저절로 샘솟게 하시던 소박한 모습의 거인을 이제는 묘소에나 가야 뵐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슬픈 일이다.

글쓴이 이인호은 명지대 석좌교수이며, 주 러시아 대사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