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과 나 아산과 스텔라 김순용



고인(故人)이 되신 아산 정주영 회장님을 회고케 되는 것은 필자에게는 종종 있는 일이다.
그분을 좋아했던 것은 한마디로 그분이 비범(非凡)한 위인이면서도 평범하기를 즐기시던 꾸밈없고 소탈한 신사였기 때문이다. 그분은 지나치게 겸손을 떨지도 않았으며 어색하게 위세를 부리지도 않았다. 언제나 상대가 편안하고 가깝게 느낄 수 있는 분이었다.

세간에는 정주영 회장님을 두고 그의 말년의 공과(功過)를 여러 갈래로 논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분과의 대화에서 그가 왜 대통령에 출마했던가를 들었다.
아산재단에 행사가 있던 날이었다. 귀빈실에 들어섰더니 정 회장님이 혼자 계셨다. 뜻밖이었다. 보통은 회의 시간 바로 전에 오시는데 그날은 딴 모임에서 시간이 어중간하게 끝나서 바로 오시느라고 좀 일찍 오셨다는 것이었다. 다음 사람이 들어올 때까지 약 10분을 나는 회장님과 독대해야 했다.

좀 어색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정 회장님을 위하는 마음에서 용기를 내서 “회장님, 괜찮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차마 대통령 출마는 부당합니다 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랬더니 내 말을 알아차리신 회장님은 “김 박사, 질 줄 알면서 싸움을 거는 사람도 있어요?” 하고 반문하셨다. 꼭 이긴다는 생각이셨다. 그가 대통령이 되려는 것은 너무도 많은 규제를 풀고 기업을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한국을 발전시킬 수 있는 요제라는 것이었다.
그가 후일에 국회 청문회에서 기업의 후일을 위해서 돈을 바쳤다고 토로한 것도 그 한 대목이다. 필자가 직접 들은 일은 아니지만 모든 여건으로 볼 때 아산재단 의과대학 인가가 벌써 났어야 했는데 인가를 받지 않고 있는 것은 항간의 소문처럼 인가에 많은 돈이 들기 때문이라는 관계자의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그분을 독선적이고 저돌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내가 관여한 아산재단 의료 분야, 특히 서울중앙병원(서울아산병원) 건립에서 보여 주신 정 회장님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합리적이고 타협적인 분이었다. 예를 들자면 병원의 높이를 18층으로 하고 복도의 넓이를 4~5미터를 하도록 말씀하셨다. 그러나 WHO가 권장하는 병원 높이가 12층이라는 우리의 건의를 받아 주신 것은 그분의 합리적 타협성의 일면이다.(나중에 동관을 증축할 때 18층으로 하신 것을 보면 18층 높이에 무척 마음을 두셨던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님은 유교적 윤리관에 투철하셨던 분인 것 같다. 들리는 가족들의 관리와 단결의 모습도 그러려니와 우리가 접했던 많은 일에서도 그랬다.
1978년 아산재단 보령병원의 기공식을 마치고 귀경하는 길에 도고호텔에서 일박케 되었다. 많은 수행 직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장님이 직접 프론트에 가서 동행한 자문위원들의 방을 일일이 배정받아 주시던 모습은 그분이 손님에 대한 예의를 지킨다는 도덕 관념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 회장님이 공과 사를 가리신 원칙도 이런 소탈하면서도 유교적인 습성이었을 듯하다.

어느날 M박사의 출판 기념식에서 나올 때였다. 정 회장님과 같은 엘리베이터로 내려오게 된 필자는 수행원이 없는 것을 알았다.(퇴근 시간 후에는 수행원이 없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내 차도 호출할 겸 회장님 차 번호를 물었더니 “내가 부르지요” 하고 사양한 채 수위에게로 갔다. 7~8분을 기다려서 내 차가 먼저 나왔다. 이왕 기다린 김에 회장님이 떠나신 후에 떠날 셈으로 몇 분을 기다렸으나 차가 나오지 않았다. 다시 한번 차를 불러드리려고 차 번호를 물었으나 역시 “내가 하지요” 하고 수위에게로 갔다.

3~4분 후에 나온 차는 현관에 밀착해서 세웠다. 정 회장님이 “왜 그렇게 늦었나” 하시면서 차에 오르자 수위가 운전기사에게 많은 손님이 나오시는데 차를 현관 코앞에 세웠다고 시비다. 그때서야 필자는 시비의 원인이 고급 외제 승용차가 아니고 스텔라이기 때문임을 직감했다. 왜냐 하면 현관 앞 좁은 공터에 주차했던 외제 차들은 C회장이나 K회장이 나오기 무섭게 현관에 차를 세우고 모셔가도 아무 말썽이 없는 것을 보고 있던 참이었다. 스텔라 정도는 감히 현관 앞에 주차할 엄두도 못 내게 하고 지하 차고 깊숙히 몰아 넣었던 것이다.

수위에게 달려간 필자는 “이것봐요. 차 안의 손님이 누군지 몰라요? 현대의 정주영 회장님을 몰라요? 손님을 봐야지 차를 보고 차별하면 되겠어요?” 하자 놀란 기색의 수위는 시비를 멈췄고 차는 떠났다. 이 일이 마음에 걸려서 다음날 회장님 측근 한 사람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 영감, 밤낮 당하시면서도 그러십니다”라는 대답이었다.

그분이 아산재단을 창설하신 것은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단순논리가 아니고 1) 벽지 농어민에게 현대 의학의 혜택을 줌으로써 국가 경제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인 인력자원을 향상 발전시키고, 2) 지역 의사들과의 우수한 기술 협력으로 지역의 의료 수준을 향상시키고, 3) 지역민에게 위생 교육을 시킴으로써 질병을 예방하고, 4) 지역의 고용 증대를 도모함이 목적이었다.

이런 신념은 현대 주식의 공개를 거부하신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정 회장님은 “주식을 공개하면 주식을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돈을 벌 수 있고 그보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못된다. 그보다는 아산재단의 모체인 현대건설이 좀더 이윤을 남겨서 벽지 농어민의 복지에 기여토록 하는 것이 양심적이고 실리적이다”라고 하셨다.

글쓴이 김순용은 아산재단 의료자문위원, 경희대학병원장, 한양대학의료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대한병원협회 명예회장, 성애병원 명예원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