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태평양 전선(戰線)에서(1) 이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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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반(半) 고기 반입니다. 낚시바늘을 담그자마자 들어올려야 할 정도지요. 보세요 여기. 그저 손바닥으로 떠올리기만 해도 잡힐 것 같지 않습니까?”

모터 보트를 운전하며 럭키 김은 연신 자랑이었다. 경치가 좋아서 자랑, 공기가 맑아서 자랑, 그리고 또 고기가 많아서 자랑…. 제 흥에 겨워 떠드는 그의 말이 내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들릴 수가 없었다.
연출가라는 직업을 가진 나는 일단 몰입해 있는 그 화두(話頭)가 풀리기 전에는 어떤 자극에도 반응되지 않는 사람이다. 정말 바다 위에 가미가제 비행기는 떠 있을 것인가, 그 원주민 노인은 아직도 아리랑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신사산(神社山)에는 그 기관총이 정말 보존되어 있을 것인가? 불과 닷새 동안의 답사 기간에 나는 할 일이 너무 많았고 섬,섬,섬을 돌아다니며 확인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았다.
애타는 내 속은 아랑곳없이 안내인은 저 사는 곳 자랑에만 열을 올렸다. 그런 내 기분을 알아차렸는지 그는 속력을 높여 분재 같은 섬과 섬 사이를 질주하며 신사산이 있는 그 섬 펠렐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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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일본군 태평양함대 사령부가 있던 팔라우에서는 일본군과 연합군 쌍방간에 엄청난 물량을 쏟아 붓는 대혈전이 전개되었다. 밀고 밀리는 사투 끝에 연합군은 일본군을 궤멸시키고 남양군도(南洋群島)의 섬나라 팔라우를 점령했다. 이 나라 300여 개의 섬 중에 끝에서 두번째의 섬 펠렐류-.
이 섬에서 일본군이 무릎을 꿇던 날, 섬 중앙의 자그마한 신사산 봉우리에서 통곡 소리가 들렸다. 일본군 병사였다. 짐승의 울음인지 사람의 울부짖음인지 모를 절규를 토하며 병사는 전방위(全方位)로 아무데나 기관총을 쏘아댔다. 모두들 몸을 피하며 병사를 바라보았다. 연합군 저격수가 날뛰는 일본군 병사를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정확히 병사를 맞췄다. 병사는 깡충 솟구치는가 하다가 나뭇잎처럼 쓰러져 죽었다.
연합군이 산에 올라 시신을 확인했다.
여자였다. 일본군 옷을 입은 한국 여자였다. 그녀는 종군 위안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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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나는 순간 만신창이가 돼 버린 몸, 잃어버린 자아, 찢어지고 헤쳐진 정신, 그리고 영원히 되찾을 수 없는 정조, 그런 혼돈에 사로잡혀서 여자는 미쳤다. 그리고 그 여자는 조국이 어느 방향에 있는지도 알 수 없는 남양군도 산 위에서 자신의 이름 석자 남기지도 못하고 들짐승처럼 죽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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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다니… 그렇게 죽다니!
꾸며낸 이야기라 해도 비분(悲憤)으로 몸이 떨리는 이야기일진대 손에 잡힐 듯한, 불과 40여 년 전의 실화를 여기 와서 처음으로 듣게 된 연출가에게 그것은 정말 기가 막히는 이야기였다. 아니 피가 끓어오르는 이야기였으며 누워 있는 역사를 일으켜 세우는 일이었다. 그 산 위에 그녀가 잡았던 기관총이 아직 남아 있다면 나는 세상에 이 사실을 알릴 수 있는 명백한 증거 하나를 붙잡게 되는 것이다. 그런 뒤에야 바다에 물이 반 고기가 반인지, 아니 고기가 물보다 더 많다고 야합을 해 줘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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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잠깐 내려서 한 사람 태우고 들어가야 합니다. 정글이 무성해서 잘못 들어가면 길을 잃습니다. 도마뱀도 조심스럽구요.”

펠렐류 섬 한 켠에 보트를 대었다. 저쪽 얕은 바다에서 원주민 대여섯이 고기를 잡고 있었다. 그 모습이 가관이었다. 한 사람이 눈 위에 두 손을 올려 햇빛을 가리고 바다를 관찰했다. 관찰이 끝나자 그는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무엇인가를 말했고,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일행은 그 방향으로 기다란 그물을 쳤다.
한참 뒤 그가 다시 수신호를 보냈다. 순간 일행은 잽싼 동작으로 물을 걷어차며 고기를 그물 쪽으로 몰았다. 그 광경은 마치 어린 시절 우리가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던 그 모습이었다. 그물을 들어올리자 팔뚝만한 열대어들이 그물에 목이 걸린 채 버둥대었고, 일행은 한 마리씩 한 마리씩 고기를 들어올려 모가지를 깨물었다 놓는 것이었다.

“거길 물어뜯어야 고기가 힘을 못씁니다. 그냥 두면 그물을 뚫고 빠져나갈 수가 있거든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저기 저 사람 곧 옵니다. 신호를 보냈으니까요.”

얼마후 그가 왔다. 나는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는 가벼운 미소로 손을 내밀었다.

“어서 오십시오. 어떻게 이 먼 섬까지 들어오셨습니까?”
나는 어리둥절했다. 완벽한 한국말이었다. 옆에서 럭키 김이 껄껄 웃었다.

“나한테 속으셨습니다. 이 사람 한국사람이에요. 원주민하고 똑같죠?”
“아니 정말입니까? 김형, 이렇게 속일 수 있습니까? 어쩌면 기다리는 동안에 한 마디도 없었습니까?”
“이 PD가 알아보나 두고 본 거지요. 자, 얘기는 차츰 나누시고 어서 떠납시다. 다들 보트에 오르세요.”

김정곤 씨를 그렇게 만났다. 그때가 1991년이었고, 그가 원주민으로 산 지 14년째였다. 우리는 서둘러서 보트에 올랐다. 서둘러야 할 이유를 김정곤 씨는 설명했다.

“여긴 만조 때가 되면 모기가 억수로 많습니다. 한국 같은 그런 모기가 아니라 하루살이 있죠? 그만한 놈들인데 물리면 잠을 못 잡니다. 그동안 어디인가 숨어 있다가 만조 가까워지면 점점 모여들어서 바닷가나 늪지대 같은 곳을 새까맣게 덮습니다. 저녁에 더 심하죠. 그 산에 빨리 올라갔다 오는 게 좋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자료에서 남양군도의 일본군이 양봉업자들이 쓰는 것과 같은 방충망을 쓰고 전투에 나서는 필름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은 연합군이 미세한 모기를 배양하여 일본군 주둔지역에 살포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곁들여 있었다.
그것이 맞다면 김씨가 설명한 모기가 바로 그 모기일 수도 있다 싶었다. 여기선 아직까지 포염이 식지 않은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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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섬을 오른쪽으로 돌아 이 섬 유일한 선착장에 배를 대었다. 선착장에는 김씨의 트럭이 있었다. 낡고 작은 짐차였다. 김씨의 차는 무성한 잎을 스치며 좁다란 길을 따라 정글 속으로 들어갔다.
정글 속에 활주로가 있었다. 모래 대신 산호를 찧고 다져서 만든 이 활주로는 일본군이 그들의 전투기가 뜨고 내릴 수 있도록 설계한 활주로였다. 김씨의 차는 활주로 위로 올라섰다.
활주로 저 끝에 작은 산이 보였다. 신사산이었다.
일본의 신사(神社)가 있었다 해서 신사산!
그녀가 죽었다는 산이었다.
그 기관총이 있다는 산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글쓴이 이동석은 다큐멘터리 연출가로, 전문프로덕션 리스프로의 대표이다. KBS 및 MBC 우수프로그램상 및 보도금상을 다수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