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과 비움 참꽃나라 꿈꾸는 칠순의 동심, 이오덕 반칠환


무너미 마을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없이 가뿐하다. 국수쟁이, 별금자리, 나신개, 밥보재, 꽃다지, 냉이…. 오래도록 잊었던 초등학교 동창을 떠올리듯 가슴 설레게 하는 봄나물들의 이름을 불러보며 작은 등성이 하나를 넘고 있다. 화창한 봄볕 대신 매미오줌만큼 흩뿌리는 봄비가 살갗에 차갑게 달라붙는다. 봄나물의 안부가 궁금하다. 아니 실은 봄나물보다도 향그러운 입말을 듬뿍 안고 사는 한 사람이 이곳에 살고 있다. 그이를 만나러 가보자.

사라진 할미꽃
이오덕. 1925년생. 아동문학가이자 시인. 평생 우리말 살리기에 앞장서 온 그이는 마을 아늑한 산자락에 자리잡은 돌집에서 살고 있었다. 남으로 창을 낸 서재에서 그이와 마주앉았다. 겨릅대처럼 마른 체구지만 꼿꼿한 선비의 기품이 배어난다. 사진에서 본 날카로운 눈매는 한결 부드러워 보인다.
“무너미 마을의 자연과 선생님의 사색이 담긴 산문집 ‘나무처럼 산처럼’ 잘 읽었습니다. 미처 책에 담지 못한 시골살이의 즐거움을 말씀해 주십시오.”
“시골살이의 즐거움이라…,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며 새소리, 벌레소리… 모두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산에 올라 묏등에 올라앉은 이름 없는 풀 한 포기만 들여다봐도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아파트 베란다에 쭈그리고 앉아 화분 하나를 한두 시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던 나는 그이의 이야기에 절로 신명이 나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런데 요즘은 할미꽃을 못 봐요. 내가 처음 글로 배운 게 ‘보리밭에 종달새, 봄이 왔다’는 구절이었는데 이제 종달새가 없어요. 농약 때문인지 제비도 오지 않습니다.” 서울에서도 간혹 눈에 띄던 할미꽃과 제비가 이 시골에 오지 않는다는 말에 놀랐다. 농촌 마을의 생태 파괴가 생각보다도 심각한 것 같았다.

나무처럼 산처럼
어느 시인은 ‘삼백 년 세월은 이 산의 깃을 흔들며 지나갔지만 / 기슭의 명아주 잎새 하나도 바꿔놓지 않았다’고 노래한 적 있지만 그것은 인간이 개입하기 이전의 산이다. 오늘날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개입과 파괴는 얼마나 심각한가? 산을 송두리째 없애고 아파트를 짓기도 하니 저 아름다운 시구가 무색할 지경이다. 인간은 과연 문명이 주는 편의와 생태 환경 보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문명과 인간의 욕망에 대한 그이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 그러고 보니 저이는 ‘생명사랑실천 협의기구’나 ‘생명사랑 2000 서울선언’ 등에도 참여한 적이 있었다.
“지금과 같은 도시 문명에는 앞날이 없습니다. 물, 하늘, 대지, 오염되지 않은 곳이 있습니까? 도시 사는 사람 치고 자연을 해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까? 누구나 쓰레기를 만들어 냅니다. 쓰레기들은 어디로 갑니까? 모두 강으로 바다로 흘러들어갑니다. 우리가 살아갈 길은 자연을 죽이고 사는 게 아니고 자연을 살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욕망에 바탕을 둔 도시 문명의 틀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 가난하게 살아야 합니다.”
지구는 조금 가난하게 살면 모든 생명이 조화롭게 살 수 있지만, 단 한 사람 욕심쟁이의 욕망도 채워줄 수 없다고 했던가.
저이는 모두가 농촌을 떠나던 때, 장남에게 농사를 지으라고 종용했다. 아들은 그 말을 받아들여 이 마을에서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손수 농기계들을 수리하고 만들기까지 한다는 장남은 손끝 맵고 야무진 농군처럼 보였다. 유기농 농산물을 거둬 자급하고 나머지로는 국도변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된장찌개 맛이 일품이다. 그이의 손자 또한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를 졸업하여 유기농으로 과수를 가꾸고 있단다.

노랫말 속에는 있지요
“선생님 글을 읽다 보면 으레 사용하는 말 가운데도 우리 말법을 벗어난 것들이 한둘이 아니어서 겁이 더럭 나곤 합니다.”
“우리말의 원형은 배운 사람들보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의 삶 속에 남아 있습니다. 내가 어릴 적 시골 사람들은 참 노래하길 즐겨했습니다. 산엘 가면 나뭇짐 받쳐놓고 노랠 부르고, 들엘 가면 모내기를 하면서 노랠 부르곤 했습니다. 그 노랫말 속에는 우리의 삶과 문화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글이 아닌 중국 글을 배운 사람들이 지배 계층이 되면서 우리말이 오염되어 왔습니다. 일본말 오염 또한 심각합니다. 일제 36년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우리말로 화제가 옮아오자 이야기가 봇물처럼 이어진다.
“한자와 유교 문화의 병폐를 하나 지적해 볼까요? 삼강오륜 중에 ‘부위자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의 모범이라는 말이지요. 또 ‘장유유서’라는 말이 있습니다. 뭐든 어른이 먼저라는 말입니다. 이건 좋은 점도 있지만 좋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뭐든 어른 중심이다 보니 아이들의 문화가 생길 수 없었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근대 아동문학에 백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명치천황 때부터 ‘일본이 살려면 아이들이 살아야 한다’며 아동문학을 장려하여 이름난 소설가들이 동화를 썼습니다. 우리 나라는 아동문학을 천시했습니다. 지금도 소설 쓰다 못 쓰는 사람이 하는 것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플라타너스와 방울나무
“선생님께서 일관되게 강조해 온 우리 말글의 중요성은 어디에 있습니까?”
“말과 글이란 한 나라 문화의 뿌리입니다. 사람은 말로 생각하고, 말을 주고받으면서 마음을 주고받습니다. 말로써 같은 민족이 되고 형제가 되니 말이란 그 민족의 피입니다. 말을 잃으면 다 잃는 겁니다. 말이 병들었다면 그 말을 쓰는 민족은 병든 겁니다. 병든 말을 가지고는 문화고 학문이고 제대로 할 수 없는 거지요.”
“아름다운 말글이란 어떤 것입니까?”
“아름다운 말글이 따로 있나요. 말하기 좋고 들어서 금방 알 수 있으면 좋은 말글이지요. 재미있는 예가 하나 있습니다. 아이들한테 플라타너스라는 나무 이름을 가르쳐 주고 이걸 소재로 글을 쓰라 하니 가지각색이었습니다. ‘프라나스’라고 쓴 아이가 있는가 하면 ‘뿌라타스’라고 쓴 아이가 있었습니다. 헤아려보니 서로 다른 표기가 무려 열여덟 가지나 됐습니다. 그 뒤 어느 선생님도 똑같은 말을 하길래 ‘방울나무’라는 우리말 이름을 가르쳐 주라 했더니 아이들이 아주 좋아하면서 금방 기억하더랍니다. 아이들한테 우리말을 가르치는 데 밖에서 들어온 말이 얼마나 방해가 되는가를 정확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계획을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 아이들에게 깨끗한 우리말을 이어줄 수 있도록 살아 있는 우리말로 교과서를 만들고 싶습니다. 아동문학 쪽으로도 참 할 일이 많고, 내가 살아온 이야기도 쓰고 싶은데 몸이 건강치 않으니 참 답답합니다.”

잊혀진 들꽃에 이름표 달아주며
그이의 산문집에는 ‘참꽃나라’라는 글이 나온다. 우리 나라가 통일되면 나라 이름을 ‘참꽃나라’로 했으면 좋겠다는 어린애 같은 생각을 해보았단다. 나는 저 ‘칠순의 어린애 같은 생각’에 대찬성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묵직한 이름 대신 ‘참꽃나라’가 되면 사람들이 얼마나 밝고 아름다운 생각을 할까. 참꽃나라의 백성이라면 누구나 생명을 소중히 여길 것 같고, 우리말을 사랑할 것 같고, 전쟁을 싫어할 것 같고, 욕심주머니를 채우기보다는 콩 한 쪽도 나눌 것 같다.
이른 봄 헐벗고 주린 아이들의 허기를 달래주던 참꽃. 그 참꽃나라로 가는 길섶에서 잊혀진 들꽃들 가슴마다 하나씩 우리말 이름표를 달아주는 저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선생님께서 일관되게 강조해 온 우리 말글의 중요성은 어디에 있습니까?” “말과 글이란 한 나라 문화의 뿌리입니다. 사람은 말로 생각하고, 말을 주고받으면서 마음을 주고받습니다. 말로써 같은 민족이 되고 형제가 되니 말이란 그 민족의 피입니다. 말을 잃으면 다 잃는 겁니다. 말이 병들었다면 그 말을 쓰는 민족은 병든 겁니다. 병든 말을 가지고는 문화고 학문이고 제대로 할 수 없는 거지요.”

글쓴이 반칠환은 시인이다.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대산문화재단에서 시부문 창작지원 수혜를 받았고, 서라벌 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이 있다.